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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gCaptain Jan 04. 2016

Road to Mind : 마음 속의 존재 "

'나'에게는 본능이 있다. '나'는 본능을 따를 것인가?

[출처 : 종합교양잡지 '투머로우' 2016년 1월호 중 NEW YEAR GREETING]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했다.

"얘야, 사람의 마음속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하나는 검은색의 악한 늑대이고, 하나는 흰색의 선한 늑대인데 둘은 항상 우리 마음 안에서 싸우고 있지.

검은 늑대는 화, 질투, 슬픔, 후회, 욕심, 허세, 우월감 같은 것들이고,

흰 놈은 기쁨, 평화, 사랑, 화평, 겸손, 친절, 진실 같은 것이지."


손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둘이 싸우면 어느 늑대가 이겨요?"


할아버지가 답했다.

"네가 먹이를 주는 쪽이란다."


북미 체로키 인디언들 사이에 전해져오는 이야기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마리 중 흰색의 선한 늑대에게 먹이를 주는 삶을 원한다. 이러한 권선징악 사상은 우리의 오랜 역사는 물론, 문화와 예술 속에도 치밀하고 견고하게 녹아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두 마리 늑대 중 어느 쪽을 지지하든 결국 둘 다 늑대라는 사실이다.

선한 자신을 계발하든 악한 자신을 부추기든 자신의 '본능' 세계를 초월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렇게 자기 마음의 영역 안에서 하는 자기 계발은 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도

"자기", "나"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두 늑대의 싸움처럼 자기 안에서의 싸움은 의미도 깊고 재미도 있어 보이지만,

거기에 몰입하면 외부의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져 치명적인 고립상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를 자신에게서 끌어내 새로운 세계로 연결시켜줄 매체가 필요하다.


우리는 웰빙well-being과 힐링healing의 시대를 거쳐 이제 빌리빙 believing의 시대를 맞고 있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웰빙과 힐링의 필요성이 더 강력해졌지만, 그것들만으로는 우리 마음의 빈 공간까지 채우지는 못한다.

마음은 마음으로 채워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빌리빙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빌리빙의 시대...마음은 마음으로 채워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마음으로 채운다는 뜻이 무엇일까?

사람의 마음은 혼자 스스로 존재한다면 고립무원의 지경에 이르게 되고,

스스로의 생각이 고착화되어 타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게 되고 알려고도 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 마음으로 마음을 채우려고 한다면, 결국 내 마음을 다른 사람의 마음과 교류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것, "나"라는 존재가 때로는 쓸데없이 불필요한 일에 몰입하게 한다.

나는 옳다. 나는 바르다. 나는 정직하다. 나는 어떤 것을 잘한다.

나는 못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안된다.

이런 수많은 생각 속에 빠져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길이 있다. 그리고 한번 만들어진 길은 쉽사리 바뀌기 어렵다.

운전을 하다보면 어떤 목적지를 향해서 갈 때 늘 가던 길, 익숙한 길,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요즘은 네비게이션이 발달해서 목적지를 검색해서 실시간 교통상황을 고려해서 알려준다.

그런데 나는 늘 익숙한 길로 가려는 습관이 있다.

네비게이션을 믿지 못한다. 왜?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마음 속에 있는 "나"를 정확하게 발견하면,

내 모습이 어떤지, 내 상태가 어떤지, 내 생각이 어떤지 알수 있게 된다.

그리하면 나를 부인하게 되고, 나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 조금씩 없어지게 되어 내 마음의 길이 변하게 된다.


혹자는 그런 말을 한다. "너 자신을 믿어라."

난 그 생각에 반대다. 스스로를 믿었을 때 스스로의 능력과 힘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내가 나 스스로를 믿고 어떤 일을 할때마다 내 고집과 아집, 집착, 자만심이 과도하게 증폭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결국에는 내가 속한 조직, 내가 속한 집단, 내가 속한 사회 속에서 나를 내세우려는 마음으로 발전하게 되고 그것은 결국 내가 속한 조직이나 집단, 사회는 물론 나 스스로를 실패하게 만드는 경우가 매우 많다.


마음 속에 존재하는 "나"를 누가 가장 잘 알고 볼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가장 잘 알아."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실상 내가 보는 나는 거울에 비친 반대의 나이다.

나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볼 수 있는 사람은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즉, 나를 인도해 줄 인도자이다.


마음 속의 "나"를 버려라.

나를 믿지 말라.

나를 정확히 보고 싶다면, 나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인도해주는 인도자에게 물어봐라.

그래야 마음 속의 "나"를 정확하게 알게될 것이고, 그래야만 나를 바꿀수 있다.


나를 바꾸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내 마음 속에 존재하는 "나"를 믿는 마음을 내려놓고, 나를 인도해 줄 인도자를 찾아라.


조정이라는 스포츠에서는 COX가 있다.

보트를 젓는 CREW의 편에서 보면, 보트는 뒤를 향해서 간다.

그곳에는 CREW인 나를 인도하는 인도자가 있다. COX.


내 마음속의 '본능'은 내가 나를 보는 '허상'에 불과하다.

내 '허상'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남에게 나를 보여라. 그렇게 마음이 연결되고 마음의 길이 형성되어야 한다.


내 마음속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허상'의 거울을 깨트리면,

내 부족함을 채워줄 인도자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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