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1% 부족하다. 그런데 왜 착각할까? 완벽하다고...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리더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최소한 인간계에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리더적 기질은 어떤 것일까?
그것 또한 애매할수도 있고, 막연할 수도 있다.
리더는 후천적으로 길러지거나 만들어질 수 있다는데에는 동의한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그렇다고 리더의 기준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리더의 기준은 분명히 말하지만 "지혜로운 자",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지혜를 구하는 자" 이다.
리더는 만들어진다.
태생적 환경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후천적 환경에 의해서 생겨나기도 한다.
태어났는데 환경이 이미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구성원이 되버리면 어쩔수없이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리더로서 양육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수성가의 과정에서 스스로의 노력과 인도자의 지혜를 얻어서 양육되고 성장하면서 그렇게 리더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리더를 꿈꾼다.
하지만 리더가 되지는 못한다.
왜?
리더를 꿈꾸는 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며, 인도자의 지혜를 구하게 된다.
사회 경제적으로 성공한 자가 리더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리더로 추앙받거나 대접받기를 원하고, 스스로를 포장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리더를 자처하거나 불리우는 사람들은 스스로 오류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치부가 발견되지 않으려고, 모자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렇게 그들은 리더라는 굴레에 빠져들고, 스스로 마음에서 동굴을 파고 들어가 자신의 진실을 감추는데 연연하게 된다.
리더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말자.
리더라고 하면 우리는 거의 100%,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고 가진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런데 보아라.
내가 바라보고 있는 리더가 완벽한 존재인지를
아니다. 부족하고 모자라며 때로 혐오스럽기도 하다.
리더라는 단어에 "완벽함" "허물없음" "언제나 늘 완전함" 이라고 착각하지는 말자.
이것도 영원한 숙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작금의 이 시대 이 나라의 정치판을 돌아보면 참 웃기는 일들이 많다.
리더로 자처하는 자들의 공통된 모습이 보인다.
"나 아니면 안돼."
"나는 그래도 너 보다는 나아"
"너는 나보다 이런 것이 부족해"
어차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에는 결국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는 나쁜 뜻이 아니다. 인간생활의 기본이다.
정치는 좋은 뜻이다. 친구와도 가족간에도 연인간에도 정치는 존재한다.
정치는 그런 것이다. 상대를 알고 배려하고 논의하고 길을 찾고 같은 곳을 향하는 것.
다만, 정치라는 단어 앞에 어떤 단어가 붙느냐의 문제이다.
이런 단어를 생각해 본다.
"리더 정치"
그렇게 붙이고 나니 들어지는 생각이 있다.
"이 나라 정치판에는 리더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