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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캐런 Apr 15. 2020

상큼한 봄 향기를 밥상에 차리다

신선한 계절 야채로 나의 봄을 먹다



퇴근시간에 지하철 역을 빠져나오면 노상에서 야채를 팔고 있는 할머니 가게를 일부러 들러서 간다.


카드거래가 안돼서 오랫동안 마트에서만 장을 보다가 어느 날 지갑 없이 외출했다가 먹음직한 과일이 있어 지나다닌 인연으로 토마토랑 사과를 외상으로 산적이 있다.


판매되는 과일이 기본 무게가 얼마이든 나는 한번 먹을 만큼 천 원 이천 원어치만 사기 때문에 - 같은 과일을 보관해서 먹지 않는다 - 외상을 해도 2천 원을 넘긴 적은 없다.


사실 노상에서 야채 과일 파시는 분한테 외상을 요구하는 손님도 없겠지만, 오며 가며 과일 한 개 두 개 사 먹는 사람한테 언제나 외상으로 먹거리를 제공하는 할머니가 무척 고맙다.


그래서 가능하면 현금을 챙겨서 할머니한테 가려고 하고, 양심상 현금이 없을 때는 먹고 싶은 과일도 지나칠 때가 많다.


그 마음을 아셨는지 언제부터인가 쳐다보다가 그냥 가면 이거 사 가지고 가서 먹으라고, 먼저 외상을 제안하기도 한다.



서울 도심에서 아무 때나 외상으로 먹거리를 살 수 있는, 필요할 때마다 예스해 주시는 할머니 덕분에 당장 손에 돈이 없어도 마트에서 적립되는 포인트만 포기하면 길에서 나의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우리 동네가 좋다.


장기화되는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 덕분에 점심에도 저녁에도 사람 만나는 일이 없어지면서 외식비는 확 줄고 자가 요리비가 늘었다. 장보기 지출이 늘었다기보다 나의 요리실력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 현재의 택이라면 혜택이다.


씻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봄 야채가 뭘까요?

냉이는 무쳐서 먹으면 되고 쑥은 국 끓이면 좋지.


삶고 볶고 이런 음식들은 집에서 하기엔 귀찮은 요리들이지만 지금은 밖에서 미팅할 일도 없고 식사할 사람도 없으니 그저 한가한 것이 시간이다. 오래간만에 봄요리 한번 도전해 볼까. 처음으로 봄이라는 계절에 맞게 쑥과 냉이를 기분 좋게 샀다. 쑥은 떡으로 먹거나 반찬가게에 포장해서 파는 쑥국은 먹어 봤는데 내가 만들어 먹겠다고 사 보긴 처음이다.


화창한 봄날에 길에서 만난 봄을 밥상으로 옮겨야겠다.


뿌리가 긴 냉이를 자르고 먹는지 그대로 먹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추운 날씨에 미리 싹을 태우고 봄날을 알리는 냉이의 특성상 뿌리까지 먹어야 봄의 영양이 대지로부터 내 몸으로 전달될 거 같아 듬성듬성 썰어서 그대로 무다.


엄마가 챙겨주신 곰팡이가 듬뿍 핀 된장은 버리지도 못하고 냉장고에서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엄마표 된장을 퍼서 물에 섞고 야들한 쑥을 한 움큼 넣었다.


이렇게 끊여 먹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줄 요리가 아니고 내가 즐겁게 먹으면 되는 식사라 부담 없이 마음 가는 대로 국을 끓였다.


엄마, 냉이를 샀는데 뿌리 자르고 먹는 거야 그냥 먹는 거야


엄마까지 전화를 안 받으니 물어보려던 마음을 접고 뿌리가 먹고 싶은지 잘라내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봄을 담은 게 뿌리일까 줄기일까.


냉이의 봄은 왠지 뿌리에서 시작될 거 같은 기분 좋은 느낌에 뿌리째 잘라 다른 야채와 섞어 무쳤다.


엄마 제조 표 된장은 통의 상태로 보면 곰팡이가 충분히 피었고, 검게 변한 된장의 색깔 보아 버려야 할 거 같지만 두 스푼 찬물에 넣고 고춧가루 좀 풀어 넣었을 뿐인데 -집에는 소금 외 조미료가 없다- 너무 맛있다. 쑥이 들어가서 맛있는 건지 엄마 된장이 맛을 살린 건지. 요리는 대충 해도 맛은 예술이다.


야근할 일이 없이 한가한 저녁. 일찍 퇴근해서 장본 야채로 밥상을 차린다.


차려놓고 보니 풀만 5가지 이상이다. 

오이. 냉이무침. 쑥국. 열무김치. 상추 깻잎쌈.


고기 한점 없는 푸짐한 저녁밥상에 행복이 가득 찬다.

초록의 야채만 가득한  욜로 밥상에 봄날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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