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정리할지 몰라서

PART 5. (p.216) 결국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나

by 마고캐런

건물에 가려진 햇살은 오후가 되어서야 카페 창가를 비춘다. 따스하다 생각하며 모닝커피를 마시기엔 이미 늦은 오후 1시. 자연광이 들어오는 나의 카페에 음악이 흐른다. 세상은 고요하고 음악은 혼자 소리를 낸다.


“뭐가 이렇게 많아요? 직업이 혹시 여행가? 이렇게 꾸미려면 몇 개국을 여행한 거예요?”


이대역 뒷골목에 숨겨진 나의 사무실 한 칸이 치유와 정화를 위한 여행자의 공간으로 변신중이다. 커피를 팔 때

도, 팔지 않을 때도 이곳은 나의 여행 공간이었다. 밖에서 보면 그냥 커피숍인데 안으로 들어오면 여행테마카페다. 여행 중에 잠깐 들르는 휴게소 같은 라운지다. 카페 여기저기 빼곡히 놓인 장식물들이 이곳 주인의 취

미이자 직업을 말해준다. 한동안 혼자 쓰던 공간을 여행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꾸미고 있는데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여행 가서 옷과 신발은 다 버리고 오지만 여행의 흔적이 담긴 물건은 잘 버리지 못한다. 그렇게 모으고 모은 장식품이 너무 많아서 이제 내보내야 한다.


“어머! 이런 것도 사가지고 오세요?” “여행하기도 바쁜데 이런 건 언제 구입하나요?”


그렇다. 나는 여행하는 수집광이다. 그 지역의 역사는 대충 보아도 물건은 자세히 본다. 수집을 통해 나는 여행을 모은다. 길에서 추억을 줍는다. 어느 것 하나 어느 순간도 버릴 게 없는 여행이다. 꼭 기념품을 간판 걸린 상점에서 사야 할까? 모든 물건에는 그만의 에너지가 있다. 나는 그 에너지를 잘 찾아내는 노련한 여행자다.


물건을 픽한 장소를 생각하면서 여행 지도를 다시 그린다. 어디라도 빈 공간이 있으면 나의 기억을 걸어둔다. 공

간이 없으면 고리에 걸거나 상자에 쌓아둔다. 이제 그 모든 기억을 비우듯 카페 물건들을 정리해야 한다.


“공간에 비해 사진이 너무 많아요. 이쪽 벽에는 두 개만 걸고 저쪽 벽에는 세 개 다 내리고, 중앙 선반엔 한 개만 두면 여백이 생겨서 좋겠어요.”


내 공간에서 이래라저래라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용도 모르고 물건에 대해 언급하는 자체가 나를 향해 공격의 화살을 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그런 말도 편히 받아들인다. 어차피 다 정리하려 마음먹은 것들이다. 지난 여행의 시간을 정리하듯 먼지만 쌓여가는 물건들도 편안히 정리할 때가 되었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 나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로 목젖을 적시고 있다. 순간, 시선이 하얀 벽에 걸린 사진에 꽂힌다. 카페에 걸린 사진의 장소들은 모두 독일이다. 사람들은 사진을 보며 ‘여긴 어디예요? 저긴 어디예요?’ 하고 묻는데 나는 그냥 유럽이라고 답한다.


세계 여행자들을 통해 나도 많이 배웠는데, 특히 독일에서 배운 게 많다. 일할 때는 열정적이고 결과도 늘 만족

스러웠다. 그 아름다운 시간을 담고 있는 사진들까지 이제 흔적 없이 비워내려 한다. 여행 후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곳에 걸린 것은 그냥 사진이 아니라 나의 애틋했던 한 시절이다. 사진을 버린다고 나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추억들이 잊힐 리 만무하다. 카페 공간을 채우기 위해 잔뜩 진열해놓은 장식물들처럼 나는 많이 꾸미고 치장된 삶을 살았다. 액세서리처럼 많은 것을 여기저기 걸치고 다닌 여행자였다. 그렇게 요란하지 않으면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심하게 나를 채워 세상에 밀어 넣고 있었다. 마치 그 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처음 이 공간을 마련했을 때는 내 기록물이 하나라도 보이지 않으면 허전했다. 그래서 해가 들어오는 창문에도

여행 사진을 햇살에 말리는 옷처럼 걸어두었다. 이제 나는 빛바랜 사진 너머로 투명한 유리를 본다. 현재는 유리처럼 불안하고 과거는 먼지처럼 흐릿해졌다.


사진으로 가득 찬 벽이 독일에 대한 기억이라면 기념품으로 채워진 장식장은 나의 세계여행 창고다. 유럽에 처음 갔을 때 구입한 물건과 10년 뒤 가고 또 가면서 사온 물건이 다르다. 여행의 취향이 바뀐 것이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사방에 진열된 물건들로 나는 매일 세계여행을 다시 할 수 있다. 유럽 동서남북을 나침반 없이 여행하고 지구본을 돌리듯 카페를 한 바퀴를 돌면 나의 세계 일주는 끝난다.


그러나 이제 그 모두를 버린다. 드디어 오늘에서야 큰 맘 먹고 벼르던 대청소를 시작한다. 그림 같은 스위스 엽서도 쓰레기봉투로 던지고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도 찢어버린다. 몽고메리 소설의 배경지인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 섬에서 픽한 빨강머리 앤은 아직 포장 리본도 풀지 않은 채로 있다.


아, 저건 내가 모젤강변을 따라 여행하다가 방문한 와이너리에서 구입한 건데.

아, 저건 캘리포니아 와인농장에서 산 오크통인데….


오래 바라볼 뿐, 결국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나. 깨끗한 테이블에 버려도 좋은 여행들이 다시 쌓이고 있다. 편의점에서 50리터 쓰레기봉투를 한 개만 산 이유도 많이 버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봉지는 채우겠지 생

각했는데 입 벌린 쓰레기봉투에 담을 것이 없다. 다시 정리를 시작한다. 미국 뉴욕에서 가져온 자유의 여신상을 버린다. 캐나다 로키의 흔적도 몇 개 구겨 넣는다. 스페인 지평선을 수놓던 노란 해바라기를 연상시키는 조화도 이제 버리자. 하와이를 떠올리게 하는 알로하 꽃다발도 던져버리자. 쓰레기봉투가 차면 내 마음은 비워진다. 아, 버리는 게이렇게 힘들 줄이야.


오후 내내 달콤한 커피를 마시며 카페를 청소하고 있지만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방향만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할 뿐, 물건들이 거의 그대로 있다. ‘어디 사우나라도 가서 내 몸부터 구석구석 씻고 와야 하나. 이 공간을 싹 씻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프리카 사파리투어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사람처럼 머리가 부옇게 어지럽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미국에서 픽한 성냥을 찾았다. 성냥을 보면 초를 켜고 싶다. 유럽의 성당에서 켜는 하

얀 초를 서랍에서 꺼낸다. 초를 켜고 램프 위에 물을 붓는다. 물에 살짝 이집트에서 사온 오일을 떨어뜨린다. 나의 카페에는 이렇게나 많은 세계가 모여 있다. 이집트를 20년 전에 여행했으니까 이 오일은 20년이 지난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오래된 여행을 오일 하나로 다시 불러낸다. 향기나는 연기가 내 몸을 감싼다. 취한다. 술이 아니어도 향기에, 오래된 여행의 기억에 취해버린다. 촛불이 다 타면 오일처럼 나의 시간도 모두 태워질 것이다. 타고 있는 향초처럼 나는 지금 카페에서 시간만 태우고 있다.


‘그래, 청소는 내일 다시 시작해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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