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이어 일요일까지 집콕을 하는 건 내게 흔한 일이 아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주말이나 공휴일이라도 한
번은 이대역 카페에 나가는데 이번 주말은 하루 세끼 다 집에서 챙겨 먹으며 외출을 안 했다. 내가 지금 멍해지고 있는지 차분해지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아침에 일부러 늦잠을 청해보지만 아무리 자도 10시가 넘으면 정신이 깨고 12시 전에는 기운이 없어도 한 끼 챙
겨먹기 위해 일어난다. 다시 누워도 오후 2시가 넘어가면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내가 이런 공간에서 혼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란 사람은 조용하게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여행도 거의 혼자만 다녔는데 이 기분은 뭐지?
솔직히 한 공간에 가만히 있는 나를 보는 게 힘들다. 나 혼자 노는 게 쉽지 않다. 몇 가지 스트레칭 동작과 치유음악으로 명상을 해보지만 세 시간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 집에는 스마트폰을 제외하면 텔레비전도 없고 컴퓨터도 없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바깥이 궁금하다. 길 건너 영화관에는 오늘 무슨 포스터가 나붙었을지 궁금하다. 오후엔 혼자 영화라도 보러 갈까?
행복은 외부가 아닌 자기 내면에서 찾아야 하고, 여행도 결국 자기 내면의 행복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내 관심은 온통 외부에 쏠려 있다. 안에 있어도 밖이 그립다. 정적인 공간에 혼자 있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이렇게 주말 이틀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데 한곳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고?’
갑자기 나의 모순을 발견한다. 여행 가서도 한곳에서 1박은 짧고 2박은 적당하고 3박은 지루하다고 느끼는 나
다. 생각해보니 내 여행 패턴은 한곳에 오래 머물지를 못했다. ‘여행을 떠나다’와 ‘한곳에 머물다’는 전혀 다르다. 난 그동안 이동하는 여행자였지 체류자는 아니었다. 나의 여행은 항상 길에서 이동중이었고 정적인 여행보
다는 동적인 여행을 즐겼다.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사진 찍는 여행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가본 적이 있는 곳을 다시 가는 건 흥미가 없다. 그랬던 진짜 이유가 장소에 대한 지루함과 사람에 대한 불편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세상에는 많은 여행자가 있지만 나는 언제나 군중의 옷깃만 스치고 다녔다. 여행자로 다닐 때와 달리 거주자로 있는 공간에서는 이유가 없으면 외출조차 안 하는 이런 시간에, 나는 새삼 나에게 숨이 막힌다.
나도 내겐 여행이 된다. 그래서 이런 한 달 살기를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엄마가 있는 시골집에서 해볼까. (화장실과 샤워공간이 불편하다.) 지인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낼까. (아는 사람과 매일 마주치고 싶지 않다.) 정작 하지 못한 더 명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내가 다른 곳에서 한 달 살기를 위해 필요한 준비가 귀찮다.
가짜인 나를 벗고 진짜인 나를 만나려면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행도 가고 글도 쓰는 것이
다. 여행은 떠난다는 의미에서 보면 이동이고, 머문다는 의미에서 보면 공간이다.
오래전부터 한 달 살기가 유행했다. 제주도가 가장 뜨겁게 관심 받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제주도라서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아이슬란드를 가서야 나도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길’이라는 방향과 ‘숙소’라는 공간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일행들과 차를 타고 섬 하나를 일주일 이상 달렸지만 그런 스피디한 여행은 내게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슬란드여행의 장점은 1번국도인 링로드Ring Road를 따라 섬을 한 바퀴 일주하면 지구촌의 거의 모든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동을 하면 할수록 새로운 풍경이 펼쳐져 지루할 새가 없다. 그래서 도로를 따라 달리는 행위 자체가 여행이 된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섬 구석구석에 숨겨진 폭포를 만나고 바다를 보고 호수를 만나는 것이 정말로 큰 감동으로 다
가온다. 우리는 그런 멋진 풍광 속에서 사진 한 컷을 건지고 더 좋은 그림을 찾아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질주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여행과 친구들이 생각하는 여행은 달랐다. 그리고 알았다. 모든 여행은 자기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나는 내내 외부에서만 그 결과를 찾고 있었다.
아이슬란드여행이 끝나갈 무렵, 밀려오는 허전함에 어떤 바다와 멋진 풍광을 보아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렇게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여행을 왔고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에서 세상 멋진 풍경들을 매일 갱신하듯 만나고 있다. 그런데 왜 자꾸 허전해 지는 걸까, 나의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나의 여행이 처음으로 부끄러웠다.
스스로 부끄러운 여행자라는 생각이 들 때 지구별은 새로운 길을 내주었다. 처음 아이슬란드를 여행지로 선택했을 때는 내가 꼭 가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주변에 여행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나라였기에 나도 한 번은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따라나섰다. 그렇게 간 여행이 뜻밖에도 인생에 세 번째 터닝포인트(인도-독일-아이슬란드)가 되어주었다.
아이슬란드는 무엇보다 내 여행의 의미를 알게 해준 나라다. 일주일 동안 섬 한 바퀴를 도는 데 필요한 여행자들
의 센스와 준비는 완벽했다. 그러나 아무리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녀도 준비의 미흡함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서로 불편한 시간들이 있었다. 덕분에 그때의 아쉬움을 간직한채 겨울 오로라를 보기 위해 다시 아이슬란드로 가는 배낭을 꾸렸다. 그리고 유럽의 아름다운 화산섬에서 한국의 화산섬 제주도를 떠올린 것이 내 여행의 끝 장면이 되었다.
지금 나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쾌락과 즐거움을 좇아 떠났던 나의 여행은
이제 끝났다. 세계 일주를 꿈꾸는 많은 여행자가 같은 곳을 두세 번 가기보다 새로운 곳을 자꾸 찾아다니는 이유도 그런 자극에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방문국가 숫자를 세는데 목적을 두고 세상의 많은 길에서 헤매보았다. 그리고 그곳, 아이슬란드에서 내가 그토록 걸어 다니며 눈에 담았던 지구촌의 거의 모든 풍경이 압축적으로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이제 그만 여행을 내려놓기로 했다.
이전까지는 내가 한 달쯤 머물고 싶다고 생각한 도시가 지구에 없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를 일주하면서 지평선에 가만히 올려진 그림 같은 집들을 바라보며 이런 곳이라면 한 달 살기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런 영향일까. 아이슬란드에서 귀국한 나는 시골 조용한 곳으로 혼자 머물 만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여행자의 귀향이다.
아이슬란드에서 제주도를 떠올린 내가 더 이상 남의 바다를 찾아갈 이유가 없다. 바다는 이제 제주 하나로 충분하다. 그리고 나를 위해 더 필요한 풍경은 산과 들이다. 조용히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공간과 자연이 친구처럼 가까운 곳이면 된다.
바깥세상이 궁금할 때 햇살 가득한 창문을 열면 멀리 둥글둥글 부드러운 초록 산이 보이면 좋겠다.
어두운 밤에는 창문 너머로 개구리 소리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바람 소리에 지저귀는 새소리가 함께 들리면 더욱 좋겠다.
너무 멀리 가지 말고 가까이에서 나를 바라보자.
외부로만 향하던 시선을 이제 나의 내면으로 돌려보자.
앞으로 나의 여행은 여권도 필요 없고 캐리어도 필요없는 나의 집으로 가는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내 집은 나를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된다. 냇물이 보이고 산과 들이 가까이 펼쳐진 곳에서 찾아낸 나의 집은 주말 살기도, 한 달 살기도 아닌 그저 나를 위해 살아볼 공간이자 나를 치유하는 힐링 스페이스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