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고캐런 Jun 15. 2016

불가리아 야간열차에서 만난 행운의 여대생

불가리아 열차여행 애피소드 편

여행 제목 : 흑해를 보려고 올라탄 야간열차칸에서 만난 행운의 여대생

이동 구간 : 소피아~바르나까지 야간열차 여성전용 침대칸 이용 






아무 생각 없이 탄 기차가 이렇게 흑해 해안가까지 조용히 도착한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나마 운 좋게 예약한 야간열차 침대칸에서 어린 불가리아 여학생을 만난 건 그나마 큰 행운의 시작.  



우리가 지금 막 도착한 바르나(varna)는 그녀의 고향이란다. 불가리의 수도인 소피아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수업을 하느라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이렇게 야간열차를 타고 다녀야 한단다. 정말 그래서인지 그녀는 여행자가 아닌 딱 학생다운 복장으로 책가방 하나만 달랑 메고 기차에 탔다. 그에 비해 한국의 음식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객의 가방은 그저 이민 가는 사람처럼 힘들어 보이기만 한다. 



처음에 여성전용 침대칸 문을 열고 들어설 때부터 짐이 너무 간소한 동행자라 일반 배낭여행자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학생이라는 생각 또한 하지 않았다. 혼자서 지친 몸을 추스르느라 기차 안에서 챙겨 먹을 거 다 먹고 2층 침대칸에 우아하게 이부자리를 펴고 책까지 꺼내 편안하게 읽으며 누워있었다.


침대칸 2층이 조용해지자 그녀는 그제야 일어나 부스럭 부스럭 소리를 내며 볼일을 본다. 아마도 내가 아래층 자기 침대는 안 볼 거라고 생각했는지 쑤~욱 하고 바지를 내리더니 그냥 팬티 같은 속옷 차림으로 침대 시트 속으로 쏙~ 들어간다. 



헉~ 저렇게 입고 잔다고? 그럼 이렇게 입고 자는 나는 메야? 검은 레깅스 바지에 양말까지 제대로 챙겨 신고 배에는 복대를 단단하게 두르고 찬바람 들어와서 감기 걸릴까 봐 목도리까지 두른 나는 뭐가 되니? 괜히 호기심이 생긴다. 오늘 밤 장장 10시간이나 같은 열차칸에서 아래위로 동침을 하며 가야 하는데 말이나 걸어볼까? 


크루즈가 입항하는 항구도시 바르나


– 지금 흑해 보러 가는데 거긴 어떤 곳이에요?

– 불가리아 여행을 며칠이나 하시는데요?

– 3박 4일요.


– 와! 이 나라도 볼게 많은데 너무 짧게 머무시네요~ 사실 제가 태어난 곳이라 그런지 저는 수도 소피아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대신에 내 고향 바르나를 무척 좋아해요, 물론 학교 수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한 번은 여기를 와야 하지만… 그래서 가능하면 시내에서 안 자고 수업 끝나면 바로 야간열차 타고 집으로 가는 이유죠.


– 
어머~ 그래요? 너무 피곤하겠네요~
– 사실 저도 이번 여행은 열차 루트를 따라 주요 지역만 스터디 투어를 하는 중이라 한 곳에 오래 머물지는 못하고 주요 도시만 먼저 기차로 둘러보는 중이에요, 나중에 다시 와서 불가리아 구석구석을 봐야지요.   



대학에서 관광과를 전공하고 석사과정으로는 교수가 되기 위해 역사학을 선택했다는 그녀의 학구적인 관심과 유목 여행자의 무관심한 대화는 결국 나로 하여금 그녀의 고향 바르나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너무 자세히 설명해줘서 그냥 1박 2일 코스가 짜진다. 아무래도 그녀의 성의를 봐서라도 그냥 대충 보고 떠나서는 안될 거 같아 열심히 지도에 메모를 하면서 집중해 들었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에도 만족이 안되었는지 아예 바르나 시내투어를 자기가 시켜주겠단다. 

헉~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난 유목 여행자라 가이드 같은 안내는 받기 싫은데….. 



그녀는 정말 바르나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본인의 하루를 모두 반납하고 나랑 같이 갈 데가 있다면서,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면서 나의 일정을 알아서 짜 준다. 사실 원래 나의 흑해 여행 계획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원한 맥주 좀 마시면서 소리 좀 지르다가, 지치면 햇살이 따스한 공원에 누워 빵이며 아이스크림 먹으며 졸다가, 그래도 먹다 남은 빵 쪼가리가 있으면 주변을 맴도는 비둘기한테 던져 주다가 그래도 할 일이 없으면 그동안 물이 새서 불편했던 운동화를 과감히 버리고 새신을 사볼까 하는 약간의 쇼핑 계획까지 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버스터미널까지 따라와 다음 목적지 버스표 구입까지 친절하게 도와주는 친구,
어~ GOLDEN SANDS?


일단 그녀 덕분에 빠른 시간 안에 다음 목적지 표를 사고 나오다가 눈에 딱 뜨인 영어 간판.
워낙 영어가 안보이던 동네라 이런 단어는 금방 눈에 들어온다.


도심을 벗어나 보이는 해변에는 한가로운 비치 분위기가 물씬... 


우리 오늘 저기나 갈까요?
그녀가 만든 일정을 깨고 결국 내식으로 충동 일정을 시도한다


– 저기는 저도 가본 적이 없는데요
– 오~그거 다행이네요. 공부하느라 저런 해변가는 아직 못 가본 모양인데 그럼 오늘 우리 같이 가요, 

   지금 우리한테는 시간도 많잖아요~



그렇게 시작된 나의 제안은 그녀의 머릿속에 든 빡빡한 일정을 살짝 밀어내고 자연스럽게 바닷가로 향한다. 그녀의 대학이 있다는 멋진 해안가를 지나서 한참을 더 산으로 산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정말 산속에 버스가 멈춘다. 한마디로 종점인 게다. 


흑해바다는 검정색이 아닌 푸른색


와~ 바다다. 


일단 분위기 제일 좋아 보이는 멋스러운 노천 바를 찾아 맥주를 찾는다.



- 여기 맥주 중에 맛있는 걸로 주세요
- 네? 로컬 맥주가 없다고요?


이런 배로 비싼 독일 맥주가 메뉴판에 깔려있고 현지 맥주는 아예 없다. 

- 아니 여기 맥주가 메뉴판에 없다는 게 말이 돼요?


흑해를 가까이 바라보면서 세계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노천 Bar


주인의 설명인즉, 여기 흑해는 독일에서 많은 여행자들이 오는데, 현지 맥주는 잘 안 마시고 자기나라 맥주만 찾으므로 아예 안 갖다 놓는단다. 아니 물론 독일 맥주가 맛있는 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메뉴판에 기본적으로 세팅을 해둬야지… 이건 좀 심하다. 할 수 없네, 독일 맥주 마셔야겠네요. 




물론 어쩔 수 없이 수입맥주를 시켰지만 그녀는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불가리아 맥주 'KEMINTZIA' 가 없다며 반도 안 마시고 그냥 남긴다. 그래도 술이 한잔 들어가니 검은색일 줄 알았던 흑해가 푸른색임을 알게 된다



저 푸르른 흑해 모래사장에는 연인들이 오일을 바르며 선탠을 하고 있다
보는 사람도 즐겁고 노는 사람도 즐거운 흑해 비치.


세상의 남자들이여, 여기 바르나에서 눈과 몸이 즐겁지 않다면 그건 진짜 여행이 아니리다. 


처음부터 흑해에서 수영할 생각까지는 없었던지라 일단 노천 바를 나와 모래를 밟으며 어슬렁 거리다 결국 시내로 돌아갔다. 


도심에서 건물을 따라 끝까지 가면 푸른바다가 바로 펼쳐지는 바르나


‘캐런, 정말 바르나에서 꼭 보여주고 싶은 데가 있는데 거긴 자동차로 가야 해서 아까 남자 친구한테 전화해두었어요, 퇴근하고 바로 데리러 오라고~ what? 남자친구까지 불러냈다구요? 아니 아니 아니 이건…. 



아~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난 여기저기 궁금한 관광객이 아닌데,

난 그저 가고 싶은 대로 흘러가는 유목 여행자인데……


(그녀의 성의가) 미안한 게 아니라 (나의 여행이) 부담스러워서~ 

과연 그녀의 남자 친구 차에 실려 우리가 함께 간 곳은 어디였을까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Cartoon by 구민정)

                                                     

작가의 이전글 여행자의 이름으로 재조명해 보는 아프리카 여행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