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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캐런 Jul 25. 2016

독일여행 중 T-팬티를 만난 날의 추억

독일 도르트문트 Dortmund 편

여행 제목 : 돈 쓰게 하는 도시에서 T-팬티를 사다

작성 이유 : 독일 여행을 하다 보면 쇼핑을 즐기는 아랍계 여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좌측에 보이는 대형 환전소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어중간하게 남은 지폐에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불안했는데 때 맞추어 환전소가 보이고 있다. 지출을 최소화하면 남은 일정 동안 충분히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그네의 마음은 일단 복대가 두둑해야 마음이 놓이니까.


다른 도시에 비해 이 도시가 더욱 상업적이고 현대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건 복대가 두둑하기 때문일까? 일단 이정표를 따라 구시가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 예외 없이 오래된 교회와 신도시의 산뜻한 건물이 조화롭게 들어서 있다. 트램길을 따라 몇 분 걸어 들어가자 복잡한 트램 전선줄 만큼이나 정신없는 쇼핑센터에 기겁을 한다. 구시가지 골목 입구에서부터 쫙 펼쳐진 쇼핑거리에 막 복대를 채운 나로선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따라 복대도 바람을 쐬고 싶은지 이런저런 물건들을 보며 자꾸 복대로 손이 간다. 윈도우쇼핑에 익숙해진 부족한 여행자지만 오늘따라 유독 쇼핑센터가 눈에 강하게 어필된다. 역사를 생각하고 건축물을 보고 다닐 때는 쇼핑타운도 도시에서는 하나의 영상일 뿐이다. 사실 쇼핑도 여행의 3대 즐거움이라는 살거리 측면에서 유혹적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구시가지 매력보다 신시가지의 무드에 더 끌리고 있다. 아무래도 자꾸 지갑을 만지작 거리며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는 것이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역시 오늘은 평소처럼 지나치지 못하고 쇼핑의 마법에 걸린 듯 가게 안으로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나도 모르겠다. 일단 구경이나 해 보자. 


벤치에 앉아 대낮부터 맥주 나발을 불어도, 정신없이 셔트를 누르며 도시를 헤집고 다녀도, 공원에서 신문을 보고 시간을 죽여도, 모두에게 하루는 24시간인 것을. 쓰는 사람 따로, 버는 사람 따로, 구걸하는 사람 따로, 저축하는 사람 따로인 세상에서 이 도시에서만큼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0.99>


1유로도 안 되는 물건이 한쪽 코너에 잔뜩 쌓여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다. 

궁금한 마음에 다가가 보니 어머나 여성용 속옷들이다. 


‘티팬티?’


대형 박스에 수북이 쌓인 그것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나온다. 


‘어머머~ 저런 걸 어떻게 입어? 넘사시립게시리’



아무리 팬티라지만 가릴 건 가려야지 무슨 티자는 티자? 저런 속옷은 입지도 않거니와 갖고 있기도 쑥스럽지 않은가. 사실 독일 여행 중에 추억할 만한 기념품을 사고는 싶었는데 특별히 정해둔 아이템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여자들 틈에서 웃어 가면서 소쿠리를 뒤지고 있는 이유는? 일단 부피를 차지하는 건 이동이 많은 여행길에 적합하지 않고, 가격이 비싼 것도 보관상 부담스럽다. 가격도 부피도 적당하면서 재미있는 물건이 무엇일꼬? 


내 엉덩이 두 배 사이즈의 아줌마들도 모여들어 심각하게 색상과 디자인을 검토해가며 고르는 모습이 참으로 의외였다. 이런 팬티는 섹시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젊은 언니들한테나 인기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네. 하기야 걸치고 나도 봐줄 남자가 있어야지 싱글보다는 짝이 있는 더블(부부)이 구매하는게 맞겠네. 


그 틈에 끼어 보기가 덜 민망한 디자인과 그나마 얌전한 색상으로 겨우 골라냈다. 소쿠리를 마구 파헤치듯 뒤지고 나서 골라낸 것이라 더욱 값진(?) 것이다. 화려하고 야한 것은 많아도 내 눈에 얌전한 것은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역시 티 팬티는 티자일 뿐. 다른 용도나 의미는 없다. 괜히 소쿠리 앞에 열심히 고르는 여인네들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혼자 쑥스러워하다니~. 



                                                         Cartoon by 구민정


한편으로는 나도 입어서 섹시한 여인이 되어 봐야지 하는 마음과 정말 소화해 낼 수는 있을까라는 의문까지. 잠시 갈등을 느끼면서도 그냥 계산대에 골라놓은 3장을 올려놓았다. 속에 입을 건데 무슨 상관이야 누가 들여다 볼 것도 아니고. 


배낭을 꾸릴 때마다 보이는 이 티자 물건들을 보며 자주 웃을 수 있었던 건 그나마 즐거운 일이다. 비록 옷장 안에서 빛도 못 보고 잠들어 있거나 본전(?)도 못 뽑고 사라질 아이템이지만......


(솔직히 입기를 시도해 보았으나 상당히 불편한 진실을 알게되어 가끔 서랍을 열때마다 나를 웃게 만드는 쇼핑추억으로 간직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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