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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캐런 Oct 24. 2017

독일 남부 알프스 호수에 울려 퍼지는 나팔소리

쾨니히 호수 in Berchtesgaden



바이에른 주에서도 이름난 코스  하나인 알펜 가도.


여행 중에 운전하는 일행이 있었다면 렌터카를 빌려 2천 미터 알프스를 멋지게 드라이브하면서 넘어갔을 텐데, 운전 못하는 나 홀로 여행자라는 이유로 기차를 타고 산 넘고 물 건너 도착한 곳이 바로 ‘베르히테스가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왔다는 생각이 안 드는 이유는 철로가 요동도 없이 평탄하게 오르고 내리니 어느 산맥을 얼마나 높이 오르락내리락했는지 객은 알 수가 없다. 


알프스 산속 마을인 종점에 채 도착하기 전에 철로는 이미 알프스에서 흘러내리는 옥색의 계곡물을 따라 한가로운 전원풍경을 보여주며 마치 초록의 물감 위에 그려진 영화 세트처럼 여행자의 카메라에 이쁜 포커스를 담게 한다.



그렇게 많지 않은 한 무리의 승객들을 움푹 파인 분지 같은 기차역에 내려놓은 열차는 사람들이 내릴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지만 나만 알프스 열차 풍경을 찍기 위해 재빨리 내렸다. 그리고 플랫폼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앞에 줄지어 서있는 많은 버스들을 보니 이 도시가 단순한 도보거리의 작은 도시가 아님을 알겠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로 앞 시냇물이 흐르는 건너 짧은 다리를 사이에 두고 혼자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시선을 끈다. 알프스 만년설의 빙하가 흘러내린 옥색의 냇물을 보니 마치 독일에서 지리산 산자락을 만난 듯 혼자 신난다.



여기서 이 호수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호수라고 해서 특별히 안내판이 강조되어 있지도 않지만 발음조차 쉽지 않은 호수를 어설픈 발음만으로 질문하기도 힘들다그래서 메모에 적은 스펠링을 보며 주며 기차역에서 가는 방향을 확인했다호수가 유명해서일까아니면 이 동네 호수라곤 이것 하나밖에 없어서일까?


사람들은 너무 쉽게 정확하게 버스번호를 알려준다. 다행히도 기차역 근처에 숙소를 잡은지라 체크인을 하면서 짐을 맡기자마자 카메라만 챙겨서 다시 정류장으로 나왔다.



이 도시에서는 투숙하는 모든 손님에게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숙박카드를 제공합니다. 이 카드로 호수도 구경하시고 시내 구경도 하세요


우와~이런 무료 교통권까지!


이런 공짜 교통카드에도 감동하는 난 어쩔 수 없는 여행자인가


버스에 올라타자 버스는 바로 우회전을 하며 다리를 건너가더니 가파른 언덕길을 느린 속도로 굽이굽이 올라간다올라가는 동안 모든 버스 정류장에 정차했음에도 불구하고 출발한 지 이십여 분도 안되어 도착한 종점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모두 호수로 가는 사람이라고 해도 좋겠다막상 사람들에 휩쓸려 내리고 보니 생각했던 호수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여기는 독일이 아니던가굳이 불안해할 필요 없고 확인차 묻지 않아도 내려서  보니 알겠다버스정류장을 따라 모든 길은 한 방향으로 가게가 들어서있고 유명한 관광지 아닐랄까봐 사람들은 모두 한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쾨니히 호수.

가까이 와서 보니 큰 호수가 아니라 아주  호수다.


게다가 유람선 표를 예매하려고 안내문을 보니 단순하게 보트 타고 유람만 하는 것도 아니다.
호수의 어느 지점까지 가느냐에 따라 요금도 다르고 중간중간에 승하차도 가능하다.


내려서는 무엇을 할까 봤더니 알프스 내 유일한 국립공원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추천 트레킹 코스도 있다. 일단 멀리 가고 싶은 호기심에 가장 비싼 표를 구입하고 호숫가에 대기 중인 유람선에 올라탔다.



그러나, 너무 소박한 목재 보트. 이거 무슨 중국산 나무보트도 아니고 명색이 선진국이라는 독일에서 유람선이 뭐 이래?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이 작은 호수 아니 이렇게 긴 호수에서 큰 유람선이 다닐 필요가 없는 이유를 금방 알겠다.


보트가 어느 정도 호수 중앙으로 이동하자 갑자기 엔진이 꺼진다.
독일어와 영어로 짧게 안내방송까지 하는 걸 보니 뭔가 보여줄 모양이다.


일단 여기까지 오면서 특별히 알프스 산맥이라고 해서 화려한 기암절벽을 보았거나 이 유람선이 특별히 멋지다거나 그렇다고 보이는 산꼭대기에서 엄청난 폭포수가 흘러 여행자들을 즐겁게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잠시 중국 북경의 용경협? 내지는 독일의 피요르드를 흉내 낸 것 같은 우스운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여기는 독일의 알프스니까!



보트를 운전하던 아저씨가 엔진을 끄더니 나팔을 들고 유람선 중간으로 성큼성큼 걸어온다.

혼자 나팔 공연이라도 하시려나?


정말 그랬다.


호수 중간에 엔진까지   보트를 세워놓더니 긴 나팔을 하늘로 높이 세우며 소리를 낸다.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산이 호수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어서 메아리가 잘 울린다


생각해보니 알프스 산자락에서도 깊은 산과  중간 2천 미터 지점에 생긴 호수라 피요르드처럼 움푹 파인 계곡 같아서  가운데서 나팔을 불면 산과 산에 부딪힌 메아리가 한 템포 다른 속도로 마주 보면서 메아리를 만들어낸다.


나의 모든 상상력을 깨는 순간적인 연주에 하는 감탄사만 절로 나온다이거였어?
보트가 생각보다 작았던 것도호수 중간에 엔진을 끄고 보트를 세운 것도 바로 이런 이유?






아는 만큼 보인다며 사전에 많은 정보를 준비해서 여행을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예고 없는 감동은 준비 없이 떠났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인 일이다.


그렇게 보트는 알프스 산자락에 아름다운 나팔소리만 남겨놓고 다시 호수를 거슬러 천천히 올라간다이곳 호수 유람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할 수 있는 빨간 돔의 성당도 너무 이쁘고그 앞에 들어선 비어가든에서 맥주 한잔도 너무 시원하다.



이미 초반에 감동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호수 지점까지 가고 싶은 욕심에 다시 보트를 타고  올라갔다지금 이곳까지 호수를 따라 올라가는 풍경도 너무 멋지지만 막상 내리고 보니 조금  멀리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이 든다비가 조금씩 내리긴 했지만 우산을 받쳐 들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 마이 갓! 예고 없이 뜻밖에 펼쳐진 맑은 초록의  다른 알프스 호수.




바로 스위스 호수가 울고 갈 그림 같은 엽서 한 장에 나도 모르게 함성을 질렀다.
와~ 대박이다기분에 취하니 술 생각이 절로 난다.


그래서일까 호수의 끝자락에 유일하게   있는 통나무집은 정말 술과 각종 음료를 여행자들에게 팔고 있다역시 알프스 산에서도 굶어 죽을 일은 없다니까!


독일 맥주 한잔에 기분이 업된 여행자의 노랫소리는 점점 올라가고 너무나 조용하고 적막하기만 산장에선 이방인의 고성 반란이 시작된다. 사실 이렇게라도 여행 추억을 남기지 않으면 두고두고 억울할  같아서그래서일까 목이 터져라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나팔소리보다 못한 객의 허스키 보이스는 알프스의 파라다이스에서 메아리도 없이 사라진다.





우산을 받쳐 들고 호수가를 거닐며 불편하게 포커스를 담긴 했지만  푸르름이라는 이름보다 더 신비로운 옥색의 물빛에 카메라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이 아름다운 대자연의 빛깔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해 억울하지만 그래도 여행의 진짜 맛은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담아두는 것은 아닐는지…


알프스여 언제나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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