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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하지 마. 그냥 가르치면 돼.

따뜻하고도 단호하게

by 누스

훈훈하기만 할 것 같았던 코티지cottage에서의 하루에도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드는 순간이 있었다. 식사 자리가 길어지자 어김없이 아이들의 엉덩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불타는 오징어처럼 몸을 베베 꼬다가 엄마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손님 앞에서 이러는 모양새가 민망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어금니를 살짝 깨문 채 한국어로 경고장을 날렸다. "은돼. 을른 읁으. 아직 식스 증이으. 뜩브르 읁으."


그러나 어금니 경고장이 무색하게도 녀석들의 인내심은 빠르게 동이 났고, 결국엔 의자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뒷덜미가 잡혔다. 오징어들의 탈출보다 더 나를 놀라게 했던 건, 세상 푸근한 모습으로 우리를 대해주던 내니의 어머니(가칭 S)의 단호한 외침이었다. "No! 식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해."


요즘 한국에서는 남의 아이를 혼내는 일이 극히 드물다. 아이들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양육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서는 게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모르는 어른들로부터 한 소리씩 듣는 게 예사였는데, 요즘엔 아무도 남의 아이에게 안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괜히 그랬다가는 오지랖이란 소리를 듣거나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을 깨우는 것도 아동 학대가 되는 마당에 모르는 사람이 자기 아이를 지적하는 게 가당키나 하겠나?


이러한 문화가 심각하게 병리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 역시 그 문화에 속한 사람에 지나지 않기에, 남이 내 아이를 지적하는 소리가 꽤나 생경하게 들렸다. 아이들을 향한 금지의 언어가 마치 부모인 나를 향한 지적처럼 느껴진 걸까? 순간 너무 뜨끔했다. 우리 아이들이 민폐를 끼친 것 같아서 면목이 없었다. 아이 교육 못 시킨다고 욕하진 않을까, 걱정도 됐다. 오죽하면 남이 나서서 안된다고 했으랴? 한국의 육아 정서로는 이런 결론이 났다. 그래서 당연히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는데, 이어지는 S의 반응이 더욱 놀라웠다. 그녀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에 대해서는 전혀 사과할 필요가 없어.

너희 아이들 완전히 정상이야. 애들은 다 그래.

그냥 가르치면 돼.


오랫 세월 교직에 있었던 그녀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만큼 단호하면서도 조금도 노여울 틈이 없게 따뜻했다. 규칙은 간단하고 합리적이고 일관적이었다. 다만, 타협은 없었다. 안 되는 건 계속 안 되는 거다. 상대가 마흔 살이든 네 살이든 가족이든 손님이든,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식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 동시에 아이들의 미숙함은 너무나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기에 아이의 서투름에 인한 결과에도 비난, 망신, 좌절, 분노와 같은 불필요한 감정이 따라붙을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아낀 에너지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서 사용된다. 바로 교육, 아이들에게 규칙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짧은 하루 동안에도 틈나는 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뭔가를 알려주고 있었다. 내니의 아버지(가칭 T)는 아이들이 커다란 거미를 보고 흥분해서 소리치자, "거미가 신기해? 가까이에서 보여줄게. 그런데 소리 지르면 안 돼. 얘가 놀라서 도망갈 거야"라며 몇 번이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미숙했지만, 그렇다고 거미를 관찰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지는 않았다. T는 아이들이 점점 목소리를 낮추면서 거미를 살펴볼 수 있도록 충분한 연습 시간을 주었다. 다음에 똑같은 기회가 생긴다면 아마 우리 아이들은 좀 더 침착하게 거미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과자를 먹다가 소파로 향할 때면 가족 중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안돼. 먼저 손부터 씻어야 해."라며 규칙을 알려줬다. 당연히 한 번에 말을 들을 애들이 아니었으니 어른들은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누구 하나 죄책감을 가지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미숙한 건 당연하고, 어른들은 그저 가르치면 되니까.


그날 집으로 오는 길에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아이들의 미숙함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고 충분히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인내심의 부족으로 그들을 다그치기만 하는가? 부모들은 끈질긴 책임감으로 자녀들을 가르치고 있는가? 우리가 하는 것은 교육인가, 아니면 분풀이인가? 이 사회는 부모가 충분히 자녀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지지와 격려를 보내고 있는가? 부모들은 이 사회가 함께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 주변의 선한 도움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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