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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Nov 21. 2022

스릴만점 주말 육아

그럭저럭 해내기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로 네 번의 주말이 지났다. 산후도우미 선생님 없이 보내는 이틀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에너지는 넘치지만 아직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손이 많이 가는 20개월 첫째, 그리고 하루에 열 번 이상 젖을 먹고 혼자서는 트림도 할 수 없는 신생아 둘째. 육아 난이도의 설명은 생략한다.


  둘째를 낳기 전에는 둘을 한꺼번에 돌보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싶었다. 아무리 부부가 함께 달라붙어도 아기들이 받아야 할 보살핌의 양에 비해 제공 가능한 노동력과 시간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육아 열차는 어떻게든 굴러가더라. 비록 적재량을 초과한 화물차가 외다리를 건너듯 아슬아슬한 모양새이지만…

스릴만점 주말 육아 아찔해…!

  어째서 이게 가능할까? 비결은 내려놓음이다. 멋들어지게 “내려놓음”이라 쓰고 “포기”라 읽는다. 그렇다. 나는 잘하기를 포기했다. 아니, 포기되었다. 성격상 그게 어려운 사람이지만 어쩔 수 없으니 내려놓아지더라. 엄마라고 별 수 있나? 일단 내가 살아야 애들도 살지.


  잘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땐 무엇 하나 놓치기가 싫어서 우선순위를 정하기가 어려웠는데, 오히려 포기를 하니 저절로 우선순위가 매겨진다. 뭣이 중헌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나 보다. 침몰하려는 보트를 살리기 위해 하찮은 것부터 버리기 시작했다. 예컨대 몰골. ‘그래 첫째 머리 스타일이 좀 야인 같으면 어때 눈만 보이면 됐지. 나도 못 씻으면 어때 어차피 겨울이라 냄새 안 나. 둘째는? 그래 월요일까지 참았다가 선생님 오시면 씻기자.’ 나는야 합리화의 귀재. 그래도 나름 근거가 있는 합리화이다.


  육아에 내공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할 수 있는 능력이 많아졌다기보다는, 그만큼 버리는 능력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에 가깝다. 어떨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일종의 체념이 아니라 버릴 건 버리더라도 사실 아이가 성장하고 발달하는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것이다.

  아이가 하나일 때에는 힘들어도 이론대로 키우려고 노력하다가, 둘이 되면 내려놓는 엄마들이 많다. 하지만 내려놓아서 아이를 잘 못 키웠다고 회상하는 엄마는 별로 없다. 오히려 엄마로서 꼭 해야 할 최소한의 것들만 하고 나머지는 아이에게 맡기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엄마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하게 아이를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정우열, <엄마니까 느끼는 감정> 중 발췌.


  양손 가득 움켜쥐느라 바짝 긴장한 채 살아왔다. 두 손이 얼얼해지도록 힘을 주어야 겨우 성취할 수 있었고, 뒤따른 통증도 열심히 살았음에 대한 훈장처럼 자랑스레 여겼었다. 하지만 육아는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아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말 안 듣고 예측을 벗어나고 서투른 게 존재의 이유인 애들이다. 이렇게 팔딱거리는 활어를 손에 쥐는 일은 어려울뿐더러, 손아귀에 넣는다 해도 물고기는 이내 생명력을 잃고 만다. 육아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오늘도 난 내려놓는 훈련을 하고 있다. “잘”, “훌륭히” 따위의 말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그럭저럭”에 초점을 맞춘다. 힘을 빼자. 눈을 낮추자. 너무 애쓰지 말자. 그럭저럭 아이들은 자랄 것이므로.



* 표지 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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