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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Nov 23. 2023

내  심장이 도저히 뛰지 않는 일하며 살기

하기 싫은 일을 하는 법

  그런 말을 듣고 자랐다. 네 심장이 뛰는 일을 해라.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 하지만 현실 세계는 좋아하는 일보다 해야 하는 일들로 가득하다. 가끔, 아주 가끔은 해야 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랑 겹치기도 하는데, 그 교집합의 크기가 너무도 작고 하찮아서 개미 눈곱만 했다. 의무로 가득한 일상을 견뎌내는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 비결이라고 해봤자 “첫째, 버틴다”, “둘째, 그냥 한다” 이 정도?


  때로는 그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 자체가 고비가 되곤 한다. 그래서 어른들이 때려치우고 싶단 말을 입에 달고 사나 보다. 다들 가슴에 사표 하나씩은 품고 살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엄마는 못 때려치운다. 그만두지도 못하는 일이 적성에까지 안 맞으면 고통이 배가 된다. 참고로 엄마직의 업무는 나의 취향과 거리가 멀다.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한가?”

 No. 집안일과 육아는 매일 매 순간이 반복의 연속이다. 반복은 모든 걸 싫증 나게 한다. 심지어 애들은 한 번 말해서 듣는 법이 없다. 같은 말을 최소 수 십 번 하고도 효과가 없을 각오를 해야 한다.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는가?”

No. 아이는 예쁘지만 더럽다. 묻히고 흘리고 어지르는 게 일이다. 엄마는 부단히 닦고 씻기고 정리하지만 깨끗함은 우리 곁을 잠시 스쳐갈 뿐이다.


“예측할 수 있는가?”

No. 임테기에서 두 줄을 확인하는 그 순간부터는 매사에 예측을 포기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내가 지닌 변수 곱하기 아이가 지닌 변수 곱하기 남편이 가져오는 변수 곱하기 애가 많으면 애 숫자만큼 곱하기… 수학을 못해서인가 예측이 더 어렵다.


“통제할 수 있는가?”

No. 예측도 못하는데 통제는 무슨.


  이렇게 쓰고 보니 적성에도 안 맞는 일을 하고 사는 나 자신이 새삼 대견하다. 이 말을 하려던 게 아닌데… 그래도 나이를 허투루 먹은 건 아닌지 요즘엔 “안 좋아하는데 해야 하는 일"들을 견디는 노하우가 좀 쌓였다. 엉뚱하게도 핵심은 일을 제대로, 잘해보는 데에 있었다.


  해야만 하는 일들 중 하기 싫은 것들을 살펴보면, 상당수는 내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빨래를 개키는 일이 그랬다. 아기 빨래들은 너무 작고 옷감도 잘 구겨져서 손이 많이 간다. 성질이 급한 사람으로서, 그 뭉치들을 하나하나 정돈된 형태로 만드는 건 꽤나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다 유난히 심심했던 어느 날, 나는 생활의 달인이 된 것 같은 상상을 해보았다. 나는야 빨래 개키기의 달인~ (다시 말하지만, 지독하게도 심심한 날이었다.) 달인이 숙련된 솜씨를 뽐내듯이 옷을 바닥에 탁탁 펼치고, 손바닥으로 휘 쓸어서 주름을 펴고, 각을 맞춰 개킨 후에 튀어나온 곳이 없게 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렇게 빨래 더미들을 모두 해치우자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일을 잘 해냈을 때 오는 성취감, 그리고 자기 실력에 대한 유능감이었다. 결코 지루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여전히 빨래 개키기가 대단히 짜릿하고 설레는 일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싫지가 않고 가끔은 재미도 있다. 그 후로 나는 어떤 일이 하기가 싫을 때, 그런데 때려치울 수도 없을 때에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 일을 한 번 “잘” 해보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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