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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Feb 23. 2024

감정 조절에 실패하는 세 가지 유형

안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감정 이야기 [3]

  건강한 마음을 위한 소식지, 누스레터입니다.


  감정이라고 하면 짝꿍처럼 따라붙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조절”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동의한다고 해서 모두가 감정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오늘은 감정 조절에 실패하는 세 가지 유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눈 가리고 아웅형[감정 회피형]

  사람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고통을 주는 감정들도 피하고 싶지요. 하지만 감정은 절대로 외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잠깐이야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자신을 속일 수 있겠지만, 그 효과는 매우 일시적이며 나중에는 감정을 미룬 만큼 비싼 연체료를 내야 합니다.


  회피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누가 봐도 힘든 순간에 오히려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슬플 때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치밀하게 분석하는 데에만 몰두합니다. 그리고 보고서를 읊듯이 건조하고 덤덤하게 자신의 생각을 요약하지요. 정서의 인지적인 측면만을 강조함으로써 불편한 감정들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주지화(intellectualization) 방어입니다.


  아주 극단적인 회피로는 감정 자체를 부인(denial)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화가 났는데 화가 안 났다고 믿는 것이죠.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이 화가 났다고 느끼지만, 정작 본인만은 자신의 분노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기도 해요.


  어떤 이와 멀어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사람을 무시하는 겁니다. 감정 역시 안 보고, 안 듣고, 없는 척 외면하면 결국 멀어집니다. 감정이 빠진 삶은 무채색의 그림처럼 밋밋합니다. 친한 친구들과 알콩달콩 정을 나누는 즐거움이나, 심미적인 취미를 통해 일상을 채색하는 기쁨이 사라집니다. 감정과 너무 멀어지면 자기의 진짜 욕구를 알아차리는 데에도 어려움이 생깁니다. 고로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해줄 수가 없어요. 대부분의 감정에는 우리의 생존과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고유의 기능들이 있는데, 나중에는 감정의 좋은 기능들까지도 누리지 못하게 되지요.


2. 화병 난 어머니형[감정 억제형]

  옛날 드라마에는 머리에 흰 띠를 둘러멘 채 병상에 누워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현대의 정신의학적 기준을 적용해 본다면, 아마 그들 중 다수는 “화병"으로 진단받을 거예요. 화를 제때 제대로 풀지 못해서 병이 나버린 겁니다.


  감정 조절은 무작정 참는 게 아닙니다. 대인배답게 훌륭히 감정을 참아내리라는 포부와는 달리, 실제 우리 인내심의 용량은 아주 적습니다. 게다가 감정을 과도하게 억누르는 사람치고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나친 억제는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옷장에 마구 쑤셔 넣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마구잡이로 욱여넣어진 감정 뭉텅이들은 얼마 못 가서 빵 터지고 맙니다. 오랫동안 압력을 받아 흉물스럽게 변한 감정의 파편들은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줍니다. 이런 면에서 억제형은 이어서 소개할 분출형과도 많이 닮았습니다.


  참으면 실제로 병이 되기도 합니다. 분노가 적절히 해소되지 못하고 자기 내면으로 향하면 우울해질 수 있습니다. 마음뿐 아니라 몸에도 병이 생겨요. 감정을 억누를 때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온몸의 호르몬과 신경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불안, 분노, 공포 등에 장시간 노출된 사람들은 실제로 소화기관 및 심혈관계의 문제에 취약해집니다. 감정은 우리 몸에 다양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신경생리학적 현상이기도 하니까요.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은 면하겠지만, 고혈압 약은 면할 수 없을 거예요.


3. 고삐 풀린 망아지형[감정 분출형]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세상에 홀로 태어나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감정은 인간이 사회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얼굴 표정과 어조 등으로 감정을 드러내면 타인으로 하여금 적절한 반응을 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슬퍼서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은 위로를 받게 되고, 화가 난 사람은 강하게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지요. 그래서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적절한 감정 표현이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방식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신이 속한 사회 문화적인 맥락과 관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주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령에 기대되는 수준으로 표현해야 난감한 일이 안 생깁니다. 언어 발달이 미숙한 아이들은 보통 울음이나 몸짓으로 감정을 표출하지만, 어른이 되어 인지 기능과 정서 조절 능력이 성숙해지면 자기 감정을 조곤조곤 말로 풀어낼 수 있어요. 그런데 40대 어른이 승진하지 못했다고 바닥에 드러누워 발을 동동 구르며 엉엉 운다고 생각해 보세요. 민망함은 주변 사람들의 몫입니다.


  감정을 지나치게 억누르면 당사자가 병이 나지만, 감정의 고삐를 완전히 놓아버리면 주변 사람들이 다칩니다. 특히 분노와 같이 강렬한 정서들은 파급 효과가 대단해요. 여과하지 않은 폭언과 폭력적인 행동들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끔찍한 상처를 줍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더 이상 다치지 않기 위해 그 사람을 멀리 하겠지요. 점점 혼자가 될지도 몰라요.



  감정은 예리한 칼과 같습니다. 잘 길들이면 많은 유익을 가져다주지만, 잘못 휘두르면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해롭습니다. 다음 주 누스레터에서는 예리한 칼을 길들이는 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 주도 마음-안녕히 계세요.


p.s/ 정신 건강에 대해 궁금하신 점을 댓글로 적어주시면 누스레터로 답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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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us는 그리스어로 정신, 마음의 태도를 뜻합니다.

** 보건복지부 공인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한국심리학회 공인 임상심리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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