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감정 이야기 [4]
건강한 마음을 위한 소식지, 누스레터입니다. 지난주에는 감정 조절에 실패하는 유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는 방법에 대해 알아볼게요. 크게 두 단계, 즉 자각과 상징화의 과정을 거치면 됩니다.
감정이란 일련의 현상입니다. 어떤 일을 경험할 때 발생하는 신체적 각성, 감각, 행동, 인식 등을 포함하지요. 예를 들어 중요한 발표를 앞둔 사람은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손에 땀이 나는 신체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처럼 열감이 생기거나 목소리가 떨리기도 하지요. 동시에 마음에는 온갖 불길한 메아리가 울려 퍼질 거예요. 최악의 시나리오가 빠르게 펼쳐질 수도 있고, “나는 망신을 당할 거야”, “나는 실패하고 말 거야"라는 식의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지도 몰라요. 비슷한 경험들이 반복되면 그 속에서 익숙한 양상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평가를 받는 상황, 불편한 신체적 느낌, 이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예, “나는 못났어, 무능해") 등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집니다.
이러한 과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감정을 자각하는 일입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몸의 변화는 어떠한지, 마음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하는 작업이지요. 감정을 자각한다는 게 모호하게 느껴진다면 좀 더 명백하게 드러나는 신체적 변화에 주의를 기울여 보세요. 마치 유령처럼 여러분 속을 둥둥 떠다니던 감정들이 점점 실체를 드러낼 겁니다.
감정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면, 이제 그 대상에게 좀 더 뚜렷한 윤곽을 만들어줄 차례입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혀야 다룰 수가 있거든요. 도구처럼 말이지요. 그 윤곽을 부여하는 작업을 “상징화(symbolization)"라고 합니다.
상징이란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물 등을 구체적인 대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상징화의 대표적인 결과물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오늘 아침에 “사과를 먹었다"라고 칩시다. 만약 언어라는 상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 경험은 “턱의 움직임, 아삭아삭한 청각 자극, 혀에 닿는 새콤 달콤한 액체와 미각의 각성, 덩어리가 목구멍을 눌러 지나갈 때의 압력” 등으로 여러분을 스쳐 갈 거예요(물론 이마저도 글로 표현할 수밖에 없어서 아쉽네요).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생화학적 작용,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감각 등을 하나의 통합된 경험으로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게다가 자기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요.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징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자기 경험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소화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갑작스러운 심박수 증가, 열감, 홍조, 식은땀 등에 당황해서 압도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발표를 앞두고 “불안"했을 뿐인데 말이죠.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세요. “불안, 공포, 분노"와 같이 아주 간단한 이름도 좋고, 상황과 현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도 좋아요(예, “발표를 앞두고 손에서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긴장되었어"). 출렁이는 감정을 언어라는 안전한 그릇에 담아보세요. 그릇에 담긴 감정은 소화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에도 좋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어쩌면 감정도 다만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p.s/ 정신 건강에 대해 궁금하신 점을 댓글로 적어주시면 누스레터로 답해드립니다.
연관 글 링크
https://brunch.co.kr/@mindwalk-yj/56
https://brunch.co.kr/@mindwalk-yj/58
누스 레터(nous*-letter)는 마음의 전문가** 누스가 보내는 소식지입니다.
정신 건강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매주 브런치 스토리 매거진에 연재하며, 네이버 블로그에 공유합니다.
누스와 함께 건강한 마음의 태도를 만들어보세요.
* Nous는 그리스어로 정신, 마음의 태도를 뜻합니다.
** 보건복지부 공인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한국심리학회 공인 임상심리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Leslie S. G. & Sandra C. P. <심리치료에서 정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