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를 읽고
첫 번째 이유는 돈가스 가게 이름이 ‘달과 6펜스’인 곳을 몇 번 봤는데 돈가스집 이름치고는 뭔가 의미가 있어 보였다. 찾아봤더니 어떤 블로그에서 말하길 사장님이 그렇게 이름 지은 건 소설을 읽고 좋아서였고 다른 의미는 없다고 했다 한다.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카페들도 꽤 있던데 뭔가 감수성 있는 느낌이라 인기가 있나 싶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제목을 ‘달과 “식스” 펜스’라고 읽었는데 예전에 독서 모임에서 어떤 언니가 자기 남편도 그렇게 읽었다며 이걸 ‘달과 육 펜스’라고 읽는 사람과 ‘달과 식스 펜스’라고 읽는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시답지 않은(?) 이유로 오랜만의 독서다운 독서를 이 책으로 선택했다.
이 책은 <면도날>과 <인간의 굴레에서>등을 쓴 프랑스 작가 서머셋 몸의 작품으로 화가 ‘폴 고갱’을 모델인 소설이다. 모티브를 따긴 했으나 실제 고갱의 이야기와는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대략의 줄거리는 평범하게 살던 가장이자 런던의 증권 브로커가 어느 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모든 것을 버린 채 떠난 얘기다. 가난하게 생활하며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다 타히티에서 생을 마감하는데 우여곡절 많은 여정 중에 특히 파리에서의 막장(!) 스토리가 하이라이트다. 1800-1900년대 서구 배경의 소설들은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부분들에서 나도 마치 그 시대 유럽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어 즐거움을 주는 포인트들이 있는데 화로가 있는 집안 내부에서 대화하는 장면도 그렇지만 여기선 특히 파리 뒷골목 카페에서 식사하고 커피 마시는 장면이 대리만족감을 주기도 했다. 주인공인 화가 ‘스트릭랜드’는 술집에서 ‘압생트’를 자주 마시는데 나도 그 술을 한번 마셔봐야겠다 싶었다.
나는 그림에 문외한인 데다 관심이 많지 않지만 고갱을 좋아한다면 책을 읽으며 그의 삶을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중학교 3학년 때였나 잘난 척을 많이 하던 미술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분에게서 아름다우니 가볼 만하다며 ‘타히티’라는 섬의 이름을 그때 처음 들었었다. 아마도 미술 하는 사람들에게는 고갱 등의 이유로 가보고 싶은 섬인 듯하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 보자면 <달과 6펜스>에서 ‘달’은 ‘이상향’의 세계를 상징한다면 ‘6펜스’는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던 은화로 돈과 물질의 ‘세속적 가치’라고 한다. 달과 6펜스 둘 다 둥근 모양에 은빛으로 빛나지만 다른 속성을 내포하여 대조적인 면을 보여준다고.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라고 작품 해설은 말한다. 6펜스가 뭔지 알았다 하더라도 책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제목과 매치시키려면 곰곰이 생각을 좀 들여야 할 듯싶었다. 작가가 제목을 지은 의도는 해설을 다 듣고선 이해했으나 ‘고갱’으로 대변되는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달을 보며 본인의 결심을 굳히는 장면이나 6펜스에 대한 작가의 의도가 담긴 에피소드가 들어있으면 상징적 비유적으로 제목의 의미도 자연스럽게 이해되지 않았을까. 관찰자적인 시점으로 거리를 두는 전개 방식을 고려하면 의도적으로 비유를 생략하고 추상적인 느낌을 남겨두려 한 것같기도 하지만서도.
소설은 읽기 어렵지 않은데 제목과 연결시키기에는 한번 더 추가적인 프로세싱이 필요하다고 느낀 문학 문외한은 제목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해 제목에 대한 아쉬움으로 책을 덮었다고 한다.
#달과6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