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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네 Oct 18. 2023

취향타는 동네 가게

고민을 말끔하게 해소해주는 단골 세탁소


새로운 동네에 정착하면 새로운 점포들을 개척하게 된다. 생활 편의 시설 중에서도 각종 점포를 이용해 보고 나에게 맞는 곳을 하나둘 늘려가면서 비로소 그 지역 주민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은 요즘엔 골목마다 있기도 하고 온라인 주문도 점점 편해지는 덕에 고민 없이 가까운 곳을 이용하는 반면, 미용실, 목욕탕, 베이커리 등은 각자의 취향을 타기도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미용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비교적 까다로운 자신만의 관문을 통과해야 단골로 임명할 수 있는 곳인듯하다. 가격이 좀 비싸도, 단골 원장님이나 스타일리스트가 자리를 옮겨도 자신의 마음에 드는 곳이라면 기꺼이 따라가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미용실엔 비교적 덜 예민한 편이다. 조금 익숙하지 않게 다듬어져도 새로운 스타일로 여기고 즐기는 편이다. 다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가격이다. 긴 머리는 특히 염색과 파마 커트를 하면 몇십만 원은 되는 듯한데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다. 동네를 조금 벗어나도 집에서 삼십 분 거리에 있는 미용실 중에 가장 저렴하면서도 심각하게 이상하게 만들지만 않으면 오케이다. 보통은 주변인들에게 이 가격에 했다고 말했을 때 다들 놀라는 정도여야 하고, 그 놀라운 반응에서 깊은 뿌듯함을 느끼는 편이다.




목욕탕 역시 특히 세신을 즐기는 사람들은 미용실처럼 관리사에 대한 만족도 등의 기준으로 까다롭게 선택하기도 하던데 혼자서는 잘 가지 않는 목욕탕도 아직 세신 맛을 몰라서 그런지 아직은 무던한 편이다. 빵집도 요즘엔 상향 평준화되어 동네마다 맛있는 가게가 한 곳 정도는 있는 곳이 많다. 내가 기준을 굽히지 않는 곳이 있으니 그건 다름 아닌 세탁소다.


합정동에 살 때부터 세탁소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집 부근에 가까운 한 두 곳을 주로 이용하곤 했는데 가끔 어떤 얼룩은 빠지지 않는다며 말끔하지 않은 채로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방황하며 다른 세탁소를 찾고 있었지만, 세탁에 대한 불만족이 적체된 상태였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세탁소가 있었으니, 집에서 멀지 않았는데 점포 이름에서도 얼룩을 빼는 전문점이라고 적혀있었다.  


합정동에 이사 올 땐 신입이었던 직장인에서 망원동으로 옮길 때쯤엔 10년이 넘는 경력자가 되었다. 소소하게 월급이 오르면 누군가는 차를 장만하거나, 고급 술에 눈을 뜨거나, 누군가는 저축을 더 많이 하고, 운이 좋거나 똘똘하면 집에 더 투자했겠지만 나는 애석하게도 더 좋은 옷을 사는 일에 몰두했다. 물론 여행도 다니고 책도 마음껏 샀지만 조금 더 늘어난 급여 덕분에 새롭게 진입할 수 있었던 분야는 바로 ‘쇼핑’이었다. 친구들과 이대며 명동이며 지하철 내 매장에서 지나가다 일 이만 원으로 가볍게 살 수 있는 옷을 주로 사다가 몇 해도 못 입고 또 사기가 일수였는데 질 좋은 옷을 사면 몇 해가 지나도 새 옷처럼 입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부턴 가능하면 돈을 좀 들여도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선호하게 됐다.


언젠가부터는 선호하는 브랜드까지 생겼고 멋모르고 산 실크 소재 블라우스는 집에서 세탁하기에도 민감한 소재라는 걸 알아버렸다. 엄마는 손세탁으로 조물조물 세탁하면 된다고 했는데 나는 아무리 조물조물 신중히 빨아봐도 세탁을 안 한만 못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새로 단골을 맺은 세탁소는 놀라웠다. 오래된 얼룩도 아주 말끔하게 제거해주는 데다 뭔가 기본적으로 맡기는 옷들도 태가 반들반들 윤이 나는 듯했다. 나는 주로 나른한 토요일의 늦은 오전에 방문했는데 사장님은 내가 호의적인 단골이 됐다는 걸 안 시점부터 자신의 전문성과 각종 에피소드를 갈 때마다 들려주기 시작했다.


사장님의 작업대에는 해외에서 연수하며 단체로 찍은 듯한 사진도 있고, 임명장 같은 액자도 걸려있다. 본인이 얼마나 오염을 잘 지우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만족해하는지, 심지어는 어떤 약품을 보여주며 그게 얼마나 좋은지 비싼지 등등에 대해서도. 나는 사장님의 그런 자부심과 장인 정신이 보기 좋았고,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전국에서 택배로 세탁물을 보내오기도 한다는데 한 켠에 쌓인 택배 박스도 자주 보였다. 의도치 않은 나의 홍보 덕에 세탁소에서 한 시간 넘는 거리에 사는 친구의 남친이 친구와 헤어지고도 이곳을 찾는다는 걸 알게 됐을 땐 이곳이 진정한 세탁 맛집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비용이 비교적 비싼 편이었다. 출근용 블라우스나 정장 바지, 자켓 등은 집에서 세탁하기도 어려워 세탁소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달에 세탁비에만 들어가는 돈에 꽤 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가끔 사장님에게 돈 벌에서 다 세탁소에 드리는 것 같다며 푸념하기도 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한 달에 백 만 원대로 세탁비를 지출하는 고객의 얘기도 들려줬는데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면서도 사장님의 끄떡없는 방어에 번번이 고개를 숙였다.  


가끔 손빨래로 손질하다 더 망가진 상태로 옷을 가져가면 물 빨래를 하면 (안되는 옷은) 헌 옷이 된다고 강조했고, 스카프나 머플러는 서비스로 안되냐는 나의 말에 공짜로 산 거라면 공짜로 세탁해 주겠다는 말만 듣곤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만족스러운 세탁 결과물 덕분에 사장님의 고집스러움이 더 우러러보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나름 단골인지라 항상 몇천 원 단위는 깎으려 드는 나를 사장님은 매번 한숨을 푹 쉬면서도 못 이기는 척 깎아 주셨다. 아마 깎아주는 척 하셨던 걸지도 모르지만. 한번은 사장님의 따님이 대기업 화장품 회사에 취직했는데 샘플이 많다며 나에게 주신 날도 있다. 고급 화장품으로 인식되는 브랜드였던 터라 용량이 작은 샘플이라도 고객인 나에게 주시는 마음이 감사했다.




그렇게 든든한 나의 단골 세탁소는 월세 부담으로 바로 옆 가게로 한 번은 옮겼고, 후에는 아예 성산동으로까지 옮겨갔다. 나 역시 망원동으로 이사 가고서도 따릉이 자전거를 타고 성산동까지 몇 번을 세탁물을 맡기러 가곤 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그리고 험난한 길 덕분에 나는 사장님께 픽업 서비스를 요청드렸다. 덕분에 사장님과 나는 다정하게 카톡을 주고받게 됐다. 집 앞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일 층 현관으로 내려가 이미 서 있는 사장님에게 무거운 세탁물 더미를 넘겨받았다. 비록 세탁소에서처럼 이런 저런 긴 얘기는 못해서 아쉬웠지만 배달서비스는 사장님께서 단골에게 주는 혜택이라는 걸 알았기에 따뜻한 인사라도 한마디 더 하려고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코로나의 발발로 세탁소 가는 일이 급격히 줄었다.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일주일 내내 잠옷만 입고 지내는 날도 많았고, 자연스레 외출복은 옷장에서 그대로 머무는 날이 지속됐다. 한편으론 규모 있게 나가던 세탁비가 아예 줄어 좋기도 했지만, 사장님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망원동을 떠나오면서는 회사 출근 시대도 접으며 웬만해선 귀찮음과 비용에 대한 부담이 겹쳐서 드라이가 필요한 옷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손을 대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새로운 동네에 다시 정착했을 땐 역시 가장 중요한 점포가 나에겐 세탁소라는 걸 다시 상기하게 됐다.


새로 정착한 다른 지역에서 찾은 세탁소도 비용이 좀 있지만 나름 오염을 확실하게 제거해주는 곳이다. 혹시라도 그곳에서 못 지우는 오염이 생긴다면 택배로 단골이었던 세탁소 사장님에게 보낼 수 있겠다 싶지만, 최근엔 세탁소 가는 일 자체가 드물긴 하다. 생각해 보면 가게 사장님이 내 이름도 알고, 이런저런 이야기까지 (대부분 사장님의 세탁 에피소드였지만) 나누는 가게는 (다른 동네에 있던 미용실을 제외하고는) 그 세탁소가 유일했던 것 같다. 지금 사는 동네에선 세탁소 사장님과 그런 다정한 대화를 절대로 나눌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수록 얼룩 빼기 전문점 사장님의 다정하고도 고집스러운 모습이 이따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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