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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네 Oct 22. 2023

도쿄빙수와 허브향

망원동에서 친구와 데이트


도쿄를 좋아하는 J를 만나기로 했다. 살포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는 긴 머리에 소매가 살짝 걷힌 여름용 스판 재킷을 입고 있었다. 얼핏 아이보리인가 싶은 아주 연한 빛깔 핑크 재킷이 웃는 얼굴과 잘 어울렸다.

여름이라 도쿄빙수집은 오랜만의 만남 장소로 제격인듯 했다. 맛있는 디저트를 먹자고 해서 고른 그곳 말차빙수는 씁쓸하고도 달지 않은 단맛이 꽤 좋았다. 도쿄에 '도쿄빙수' 가게가 있다면 맛도 가게 내부도 딱 이 모습 그대로일 것 같았다.



자주 못봐도 만날 때마다 반가운 친구는 결혼한 지 꽤 됐지만, 여전히 고민도 관심사도 비슷해서인지 말이 잘 통했다. 가끔 그녀는 격하게 동의하거나 공감하는 부분이 있으면 동화된 만큼의 세기로 내 팔뚝이나 상체 어딘가를 치곤 했는데 오늘도 몇 차례 그런 적이 있었다. 1절, 2절을 빠르게 나눠 부르듯 근황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어느새 출출해졌다.


바로 옆 망원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장 초입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망원시장을 티비에서만 봤었다며 설레했다. 촐싹촐싹 뛰진 않았지만, 기분이 좋아진 마르고 작은 체구의 친구를 보니 왠지 그녀의 갈색 곱슬머리 애완견 푸들이 연상됐다.


떡볶이와 튀김을 먹으며 가격과 맛에 만족한 우리는 그만큼의 만족스러운 대화를 더 이어갔다. 몇 개월 차이로 입사한 같은 첫 직장 이야기를 하다 벌써 그게 10년 전이라는 사실에 새삼스레 또는 예의상 한 번쯤 놀라워해 주며, 역시 똥인지 된장인지는 찍어 먹어볼 수밖에 없었던 10년 전의 우리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렸고 우리는 주절주절 말이 더 많아졌다.




책도 둘러볼 겸 비를 뚫고 합정역의 교보문고로 향했다. 망원역 입구쯤에서 그녀는 교보문고에서 나는 향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광화문 지점에는 그 향이 좀 강한데 한 날은 무척 마음에 들어 직원에게 이게 무슨 향이냐고, 사고싶어서 그러는데 어떤 향인지 알려줄 수 있냐고 문의했단다. 직원은 이건 교보문고에서만 느낄 수 있는 '교보 향'이라는 거고, 구매할 수 없다며 콧대 높은듯 말했단다. 그 향이 마음에 들었다는 친구도, '교보 향'이라고 자신감 있게 말한 듯한 직원도 왠지 웃겨서 나는 박장대소했다.


마침 최근엔 그 '교보 향'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마침 도착한 매장 한 쪽엔 시향 샘플이 있었다.  맡아보니 나무 향이 살짝 가미된 남자 스킨 냄새가 났다. 코를 너무 가까이 댔는지 압도적인 향에 얼굴이 찡그려졌다. 친구는 익숙한듯 향을 킁킁 맡고선 자기는 그 향이 좋다며 발랄하게 말했다. 사람에게도 각자의 향이 난다면 그녀는 아마도 로즈마리 계열의 허브향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순수하고 자연에 가까운 그런 향이 그녀에겐 잘 어울릴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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