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좋아하는 걸 놓치지 않기
혼자서 몰래 즐긴 망원동의 행복이 있다. 바로 한가한 일요일 아침, 망원한강공원의 계단에 앉아 가장 좋아하는 산딸기프리첼 빵 먹기. 토요일은 보통 약속도 있고, 오전엔 주중의 피로를 풀어주어야 하기에 집에 머물러야 할 것 같지만 일요일 오전은 토요일의 휴식 탄력을 이어받아 여유도 익숙하다. 기상도 다른 날보다 가뿐하다. 아마도 복잡한 도시에선 쉽지 않은, 홀로 자연을 한적하게 누리는 기쁨을 몸은 기억하고 있나 보다.
일요일 아침, 한강공원으로 가는 길엔 공기에서도 사람들의 달콤한 늦잠이 느껴진다. 달리는 차 소리도, 도시 소음도 일주일 중 아마 가장 조용하지 않을까. 지금은 아이파크가 들어선 길을 따라 망원 초록길 입구로 올라가면 높지 않지만, 한강공원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데크로 들어선다. 널따란 한강과 마포대교를 넘어 보이는 여의도, 널찍한 한강공원과 초록으로 덮인 나무 풀들, 그리고 탁 트인 파란 하늘까지. 하나씩 눈에 담기도, 전체적로도 천천히 음미한다. 일주일 중 가장 청명하게 느껴지는 그곳 아침 공기는 후각보다는 온몸이 알아차리는 촉각으로 다가온다.
이어진 오른쪽 길로는 널따란 광장이 내려다보인다. 저 아래 무대 같은 광장은 한강을 뒤로하고 높은 계단이 관객석처럼 반원으로 둘러쌓여 있다. 한강공원 전경이 여전히 한눈에 들어오는 높이에 만족해하며 계단 위쪽에 대충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오는 길에 사온 산딸기프리첼 빵을 설레는 마음으로 꺼낸다. 친절하게 썰어둔 한 조각을 베어 물면 그야말로 풍미 넘치는 오감 대 완성!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프렛즐 질감의 빵과 거기에 어울리는 굵은소금, 적당히 달콤한 산딸기 잼과 씹는 맛이 즐거운 취향 저격 버터까지. 비로소 이 아침이 완벽해진다. 음악의 3요소를 리듬과 멜로디, 하모니라고 하나. 그렇다면 나는 망원동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의 3요소는 (나 한정) 일요일 아침과 한강공원과 산딸기 프리첼이라고 하겠다.
차도 없고 외곽으로 언제고 편하게 나다닐 여건이 안 된 1인 가구에게 도보로 찾을 수 있는 한강공원은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자연이다. 날씨까지 받쳐주는 주말 낮이나 저녁엔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이른 아침은 놓칠 수 없는 여유로운 ‘자연’ 그 자체다. 평일에 야근과 스트레스로 찌들면 찌들수록 더 일요일 아침의 그 즐거움이 간절해진다. 탁 트인 하늘이야 출퇴근 길에도 볼 수 있고, 사무실 창밖으로도 보이긴 하지만 온전하게 감상할 시간과 산뜻한 공기가 함께 하진 않기에 마음 놓고 계단에 앉아 바라보는 드넓은 하늘 멍은 잠깐이지만 일주일의 숨구멍이기도 했다. 창문을 열면 벽 뷰 아니면 앞집 뷰인 덕분에 고개를 75도쯤 위로 들어야 하늘을 볼 수 있는 일상의 아침을 맞고 있기도 해서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머나먼 북쪽 마을을 여행하고서 한강공원에 더 집착했다. 언제든 자연이 가까이 있고, 여유를 어렵게 찾지 않아도 되는 그곳의 삶의 속도에 영혼이 동했다. 어느 작은 마을에선 잔디밭에 누워 자고 있으면 경찰이 와서 멀쩡한지 확인만 하고 떠난다는 말이 웃기기도 부럽기도 했다. 그 후로 낮의 한강 잔디밭에서 종종 누워있었다. 주로 사람들이 잘 없는 시간대였는데 번아웃으로 퇴사했을 때나 계약 만료되어 백수가 됐을 때 가능했다. 이 사회에선 찾기 힘든 여유와 한가로움을 한강공원에서라도 홀로 찾으려 애썼다.
작고도 소박하게 쌓은 조각들은 다행히도 흩어지지 않고 내 안에 쌓여 단단한 모양으로 자리 잡았다. 세상이 자주 괴롭혀도 일터에서 들볶아 대도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 들여다보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마음을 지켜낼 수 있게 했다.
망원한강공원은 이제 일 년에 한번 갈까 말까 한 곳이 됐지만 그때보다는 좀 더 원하는 방식으로 일상을 꾸려나가고 있다. 중심을 들여다 보는 노력은 예전보다는 수월하지만 그래도 애쓰지 않으면 여전히 놓치기가 쉽다.
주말엔 근처에 있는 산의 전망대에 올랐다. 사람도 적고 한적한 이곳에서도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강이 펼쳐졌다. 얼핏 한강 같은 형상에 망원동에서 한강을 보며 혼자 빵을 먹던 그 일요일이 생각났다. 망원한강공원에서 멀어진 거리만큼 아득한 것같으면서도 산딸기프리첼 빵을 먹던 생그레한 행복은 여전히 그날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