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네 Oct 13. 2023

망원동 팔남매 (a.k.a. 만나면 실없는 사람들)

무쓸모의 쓸모


‘(그날의) 터질 듯한 웃음만 기억할 수 있게.’

망원동에 사는 저자의 동네 이야기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


망원동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다 이 구절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그런 기억이 있지 않나.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어떤 날이, 장소나 여행지가, 사람들이. 망원동엔 왁자지껄한 어느 날들의 기억이 한 겹 두 겹으로 층층이 어딘가에 머물러있다 내 안의 저 깊은 곳에서 퇴적층같은 문양으로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망원동의 배드민턴 클럽에서 처음 만나 형제애를 다진, 이름하여 망원동 팔남매. (팔남매라는 이름은 2013년에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를 읽고 내가 작명했다는 자부심이 있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기억할 것 같진 않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 중에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누구도 그때만큼 날씬하지도 않고(한 사람도 빼놓지 않아 섭섭지 않다) 수많은 계절을 지낸 얼굴에는 강산이 변한다는 만큼의 세월을 각자 정직하게 받아들인 성실함이 느껴진다.  




때는 바야흐로 2012년. 8명 중에 2명은 3, 5세 아이가 있는 30대 중반의 동갑내기 부부였고, 2명은 막 소개팅으로 만나 함께 운동을 시작한, 둘 다 망원동에 거주하는 30대 중후반 커플이었다. 그리고 1명은 나와 비슷하게 합정동에 거주하여 15분 이상을 걸어서 배드민턴장으로 오는 30대 중반의 언니였고, 나머지 2명은 함께 동거하는 30대 중반의 오빠와 30대 후반의 주말부부 생활을 하는 아저씨였다. (이중 여기서 처음 만나거나 애정을 쌓은 두 커플은 부부가 되었다)


많게는 50~60대까지 다양하게 분포한 클럽 내 연령대 덕분인지 30대 언저리의 우리는 아마도 비슷한 나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한 언니의 제안으로 강원도 스키장에 1박 2일 여행을 한 후로부터 여덟 명은 어느새 공고한 무리가 되었다. 운동이 끝나면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망원동 유수지 근처의 치킨집이나 고깃집, 해물찜 집에서 저녁이나 야식을 먹고, 아쉬울 땐 편의점 앞 평상에서 맥주 한 캔씩만 하거나, 한 캔만 더 하거나.


20대의 마지막 해를 앞둔, 막내를 담당한 나는 그저 막내이기만 하면 서 너무 편하고 좋은 모임이었다. 오히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어색해했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되려 편하게 느낀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아빠는 왜 데이트는 안 하고 맨날 노인네들이랑만 노느냐고 우스갯소리로 나무랐다.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이랑 논다고 하니 40~60대 사람들도 많은 배드민턴장의 일반적인 환경을 생각했으리라) 다들 부부 아니면 커플인데 거기에 끼어서 단양시장에서 마늘 만두를 먹고 단양 8경을 구경했다고 하질 않나, 대천해수욕장에서 짚라인을 타고 펜션 앞에서 대가족 사진을 찍었다고 하질 않나, 겨울이면 스키장, 어느 날엔 제주도라고 하고. 그런 딸을 보는 부모님은 쟤가 어쩌려고 (결혼도 안 하고) 저러나 늘 걱정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 마음이 더 이해가 가기도 한다.


대천의 바닷가에서


그땐 모두 망원동과 합정동, 성산동과 서교동에 살았는데 이제는 남양주로, 김포로, 그리고 가양, 상암, 심지어는 지방으로 각각 흩어졌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우리는 여전하고도 변함이 없다. 주로 망원동 부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누군가의 집에 우르르 몰려가서 기본 새벽 2~3시 쯤은 되야 누군가는 곯아떨어지고,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주로 나다) 그 집에서 자버린다. 다음 날 그 집에서 일어난 사람은 그 집 사람들과 아점을 먹고, 나들이를 나가면서 다시 모이자며 귀가했던 사람들을 소집한다. 그렇게 다음 날 저녁에 또다시 모여 전날처럼 맥주와 소주를 곁들인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이틀을 같이 있어도 다음 날이 월요일이 아니면 3박 4일도, 6박 7일도 가능할 태세다.


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간만 되면 혹은 안되는 시간을 맞춰서라도 만나려들 든다. 만나면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 곰곰히 생각해 봤다. 이들을 모이게 하는 키워드는 아마 실없음과 신남이 아닐까. 실없음의 ‘실(實)’은 한자어로 열매인데 열매가 없다, 그러니까 별다른 성과가 없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요즘같이 모든 것의 ‘쓸모’를 강조하는 시대에 성과도 없는 모임에 돈과 시간을 써가며 기를 쓰고 달려들다니.


뭘 사도 꼭 8개 ㅋ


첫 번째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였다. 돌이 안 지난 아기도, 중학생 자녀도 동행했다. 첫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의 커다란 식탁에 맥주와 안주를 차려두고 한데 모였다. 평소처럼 맥락 없는 대화가 오갔고, (심지어 동시에)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보다 많았지만 늘 그랬듯 카오스(혼돈) 속 코스모스(질서정연함)가 작용했다. 제주도라는 분위기에 같은 술을 마셔도 세 배쯤은 더 들뜨는 기분이었다. 연장자 형제님과 중학생 자녀를 둔 형제님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실없는 중창을 하기 시작했다.


“밤밥, 밤밥, 밤바밤바. 밤밤, 밤밥, 밤바 밤바.”


대략 미미 레레, 미미 솔미, 미미 레레 미 솔미. 이런 음계의 흥얼거림으로 그 당시 TV에 나왔던 수능 금지곡 같은 대부업 광고의 CM송 노래 라인을 따와 제멋대로 만들어 냈다. 무의식에 자리한 멜로디가 술김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모양이다. 이들의 중창은 쓸데없이 진중했고, 응용을 더 해갔다. 제법 진지하게 2절, 3절을 돌아가며, 또는 합창하며 창조해 내는 모양이 영락없이 엄마한테 등짝 맞기 딱 좋은 중학생 아들 같은 모습이었다.


어이없는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우리는 왜 저러나 싶어 은근히 웃다가 결국 폭소를 하기에 이르렀고, 그중에서도 중학교 남학생이 가장 좋아했다. 자기 아빠가 이렇게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어쩌면 실없는 동네 형아처럼 괴상한 중창에 꽂혀서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배를 잡고 보며 웃는 게 아닌가. 깔깔깔, 숨이 넘어가도록 배를 잡고 웃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날 만큼 행복해 보였다.




후에 들었는데 아이는 그날 아빠에게 굉장한 친밀감을 느꼈다고 했다. 아빠도 친구들이랑 놀 땐 나처럼 실없이 노는구나, 나랑 별반 차이가 없구나 하고 말이다. 그 말이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아마도 집에선 ‘아빠다운’ 아빠만 보지 않았을까. 나보다 늘 어른인, 듬직한 아빠의 모습을. 혼을 내거나 좋은 말만 해주고 친밀하더라도 본받을 만한 모습만 보이려는 아빠를. 아마 아이는 아빠의 순수한 모습에 아빠와 자신의 경계가 허물어졌으리라. 그리고 늘 진지하고 효율만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끔은 바보 같은 모습으로 마음껏 신나하고 일상을 축제처럼 즐기는 순수함을 가져도 된다는 걸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고 느꼈으리라.


아들에겐 새로운 모습일지라도 두 형제님의 그런 모습은 우리에겐 그리 새롭지 않았다. 우리끼리는 늘 그러고 노니까. 여행지에선 여덟 명이 각기 다른 무지개색 티셔츠를 입고, 한명씩 가장 바보스럽게 뛰어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기도 하고, SNS에 뭔가 멍청하고 엽기적인 포즈가 유행이면 만나서 그걸 같이 해보자며 열광하며, 카톡 방에선 실없는 유머와 아무말 대잔치가 난무하고. 누가보면 세상 쓸모없음을 여기서 다 실현하려는 듯하다 할 만하다. 한때 20대 사이에 '쓸모없는 선물하기'가 유행이었던 때가 있다. 30대 여자에게 '여자의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라는 제목의 책을 주거나, 가평의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마포구 주민에게 준다거나, 유럽 여행에서 산 스타벅스 머그잔인데 손잡이가 부러진 걸 선물로 내놓는다거나. 그땐 저런 걸 왜 하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쓸모없음에서 비롯된 어이없음이 주는 해방감과 해소감때문이지 않나 싶다.


2017년을 앞둔 연말 모임에서


세상은 ‘쓸모’ 밖에 모르는 듯하다. 서점가만 해도 ‘OO의 쓸모’, ‘ㅁㅁ의 쓸모’라는 책이 눈에 띄는데 분야마다 그런 제목이 한 권씩은 보인다. 나만해도 실은 평소엔 대단한 쓸모 지향주의라 효용이 없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는 편이다. 나름 늘 피곤하게 사는 타입인데 우리 주변엔 그렇지 않은 사람찾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도 팔남매도 마치 평소엔 쓸모를 위해 전력 질주하다, 모이게 될 때면 아주 마음껏 무쓸모해지겠다 작정하고 모여드는 불나방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쓸모없음이 주는 해방감을 마음껏 느끼기 위해서인냥. 쓸모 따윈 필요 없고 그저 웃고 즐기고 떠들기만 하면 된다고, 그게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한 건 즐거움이라는 듯.


우리는 좀 더 쓸데없이 웃고, 쓸데없이 놀아대며, 쓸데없이 즐거울 필요가 있다. 효율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팔남매는 나에게 숨통을 틔게 하는 한 켠의 우주처럼 존재한다. 쓸모로 하염없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무쓸모의 연료로 채워져야 어딘가의 쓸모로 달릴 수밖에 없는 각자의 일상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게 하는 한없이 너그러운 세계. 우리를 힘 나게 하는 건 '대단한 쓸모'를 품은 무쓸모인지 모른다. 그래서 팔남매는 여전히 서로를 찾아 망원동 어딘가에서 모이는 모양이다. 삶의 영위에 꼭 필요한, 실없어 보이는 시간이라는 필요 충분 조건을 채우기 위해서 말이다. 소중한, 나의 세상 무쓸모한 사람들. 셀 수도 없이 많은, 터질 듯한 웃음이 군데군데 촘촘히 박힌 그 곳은 다름아닌 팔남매의 고향, 망원동이다.


이전 04화 망원동 1인 가구의 소중한 밥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