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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네 Oct 20. 2023

망원동 1인 가구의 소중한 밥집

얼큰이왕냉면, 망원동즉석우동, 보물섬김밥


먹을 곳 많은 망원동에 살아도 바쁜 1인 가구의 일상 끼니는 ‘망원동 맛집’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수많은 맛집이 있어도, 친구들과 함께 맛집에서 식사해도, 혼자되는 시간엔 여전히 ‘밥’이 고프다. 바쁠 땐 혹은 습관적으로 정크 푸드를 가까이하는 탓도 있고, 또 (여자 친구들과 약속을 하거나 또는 30대 여자들이 많은 근무 환경 특성상) 사람들과 아무리 근사한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며 메뉴 이름도 생소한 이국적인 식사를 했다 한들 때가 되면 근본적으로 나물과 두툼한 고기가 들어있는 김치찌개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쌀밥이 그렇게 당길 수가 없다. 마치 해외에 잠시 있다가 한국에 돌아오면 얼큰한 김치찌개를 반드시 첫 끼니로 먹어줘야 하는 것처럼 혼자 있는 주말 점심이나 평일 저녁에는 그동안 못 먹은 백반을 먹지 않으면 방전된 배터리(또는 영혼)를 채울 수 없는 느낌이다. (아, 그래서 소울 푸드라는 말이 있구나?)


평소엔 빵이나 샌드위치를 끼니로 잘도 먹지만 때가 되면 체내의 ‘쌀밥’ 질량 보존의 법칙을 증명이라도 하듯 밥을 찾아 헤매게 된다. 가끔 집에서 햇반에 밑반찬을 곁들여 먹는다 해도 집밥 같은 찌개는 (갖가지 핑계로) 쉽게 먹을 수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집 근처에 있는 밥집은 아주 매우 소중하다.




언젠가 한 번은 합정동의 복합몰 지하의 밥집 체인점을 찾았으나 그곳을 간 나를 심하게 자책했다. 백반으로는 부실했으나 양호한 버전의 학식 같았다. 역시 먹는 거로 ‘모험’하는 건 꽤 무모한 짓이었다. 다년간의 시행착오를 동반하며 정착한 밥집이 있었으니 (지금은 모르겠지만) 계절에 따라 한 달에 두어 번 있는 그곳의 일요일 휴일도 좌절로 다가올 정도였다. 합정동에 살 때부터 가까웠던 망원정 사거리 부근의 ‘얼근이왕냉면’ 집은 망원동으로 이사하고서도 즐겨 찾는 단골 가게였다. (여기도 망원동 쪽으로 한 차례, 바로 옆이긴 하지만 이사를 했다) 기사식당도 겸한 밥집인데 왕돈까스와 왕칼국수, 왕만두에 푸짐한 냉면 등이 주메뉴인 기본적으로 양이 많은 넉넉한 가게다.


나는 주로 김치찌개를 주문하는데 기본 반찬들과 함께 계란후라이와 조미김(!)까지 한 상이 제공되곤 했다. 자취생에게 밥집의 계란후라이는 사랑이 아닌가. 어딘가 푸근한 동네 백반집 정도 되어야 볼 수 있는 반찬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일까. 게다가 김은 말해 뭐하나. 웬만한 밥집에서는 볼 수 없는, 윤기 나는 바삭한 조미김은 손님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줄 수 있는 서비스라고 나는 본다. 지인과 함께 가거나 집에서 포장을 해와 먹을 때면 수제왕돈까스를 주문하기도 하는데 여기 돈까스는 말 그대로 ‘왕’ 돈까스를 지향한다. 손님이 적은 낮에 가면 사장님이 주방과 가까운 테이블 한쪽에서 직접 고기를 탕탕 두드려 ‘수제’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포장해서 집에서 혼자 먹을 땐 두 번에 나누어 먹을 고마운 양이다.




돈까스 하니 생각나는 또 하나의 밥집이 있는데 다름 아닌 ‘망원동 즉석우동’ 집. 여긴 두 명 이상이 가야 (내 기준으로는) 어묵 우동과 함께 돈까스를 먹을 수 있는데 코로나 기간엔 포장을 해와서 집에서 먹기도 했다. 요즘은 줄이 너무 길어 먹지 못하는 유명 맛집이 되었지만 근처에서 포장마차로 시작했을 때부터도 유명했다. 그땐 지나가며 보기만 하다 막 가게를 차렸을 때부터 드나들었는데 여긴 사실 밥집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는 ‘술집’이었다. 특히 주말, 동네에서 언니 오빠들과 배드민턴을 치고 홍대거리를 배회하다 배가 출출해지는 새벽 2-3시쯤 이곳에 와서 소주와 함께 마시는 뜨끈한 우동 국물에 달콤 바삭한 돈까스란!


여전히 주류는 판매하지만, 요즘은 영업시간이 밤 11시까지로 단축되었는데 가끔 TV나 SNS에서 보아도 나는 그 새벽의 소주와 우동 국물이 빈 뱃속에 안착하는 뜨끈한 그 기분이 절로 떠오른다. 망원동을 떠나올 때 꼭 한번 먹고 싶었던 어묵우동도  길고 긴 대기 줄로 결국 먹지 못했다. 단체로 우르르 몰려가 왁자지껄 돈까스에 소주를 까던 야심한 밤의 풍경도 이제 다시 구현할 수가 없다. 뭐든 그때 충분히 즐기고 즐거워하고 사랑해야 하나 보다.  


새벽 2시에 소주와 함께 먹는 돈까스와 어묵 우동의 맛이란


그리고 온 마음 다해 사랑하는 밥집(?!)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보물섬 깁밥’이다. 망원동을 잘 모를 때부터 보물 같은 곳이라고 들었던 곳인데 망원동에 오고부턴 도보 십 분 거리라 더 자주 애용하곤 했다. 특히 코로나 기간에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매일 점심은 잠깐 외출로 보물섬 김밥을 사 와서 먹었다. 그뿐만 아니라 회사로 출근할 때도 바쁜 날이면 점심으로 먹을 요량에 아예 출근길에 보물섬 김밥집을 들른다. 주문은 집을 나서자마자 전화로 땡초김밥 한 줄을 요청하고, 망원 시장을 통과하는 직선거리를 신나게 걷다 보면 약 칠분 만에 보물섬에 당도한다. 아침에도 김밥집 앞엔 사람들이 늘어서 있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 틈을 살짝 비집어 보면 창문 안쪽에 이미 포장된 까만 봉지의 김밥 한 줄이 빼꼼히 기다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앞으로가 봉지를 집어 들고 카드를 건네면 그야말로 드라이브스루급 워킹스루(?!)로 발 빠른 픽업이 가능하다.


절대 김밥, 보물섬


보물섬 김밥은 아주 두툼하고 든든한 한 끼로 손색이 없는데 이 김밥만은 늦은 오후까지도 배고플 일이 없었다. 회사 앞에도 김밥을 살 수 있는 분식집이 있지만 바쁠 땐 나가기도 점심시간에 걸려 포장을 기다리기도 번거롭기도 하고 무엇보다 양과 맛이 성에 차지 않는다! 요즘은 프리미엄 김밥집도 생겼고, 김밥 전문 체인점도 많지만 보물섬 김밥처럼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게다가 풍족하기까지 한 잇(it) 김밥이 잘 없다. 두툼한 계란 지단 때문인지, 아니면 무슨 마법의 소스라도 들어가는지 어떤 김밥을 먹어도 늘 보물섬 김밥이 생각난다. 이런 게 바로 ‘길들여짐’이 아니면 무엇일까. 주말엔 나들이를 갈 때도 꼭 보물섬을 들르곤 했는데 이건 나에게 한정된 ‘국룰’같은 규칙이기도 했다.  


세를 걱정한다는 그곳 사장님 이야기를 건너 들은 적이 있다. 다들 조금씩 가격 인상이 있긴 하지만,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들이다. 몇 년 만에 확확 바뀌는 동네 풍경이 아쉬운 요즘, 특히 혼자 사는 사람들의 배 속부터 영혼까지, 그리고 추억까지도 채워주는 보물 같은 밥집들이 오래도록 머물러 주기를, 사랑담은 바람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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