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넘쳐나는 망원동
처음으로 망원동 이야기를 책으로 접한 건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였다. 당시엔 망원동에서 한 블록 거리에 있는 옆 동네 합정에 살고 있었지만 망원동에서 늘 사람들을 만나며 들락날락했기에 신기한 마음으로 (가상의) 동네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고 강산이 변한 시간 동안 망원동 일대를 누볐다. 종국에는 서울 생활의 최종 거주지를 망원동으로 졸업하며 더 합당한(?!) 애착을 갖게 됐다.
언젠가는 읽으려고 했던 <아무튼 망원동>을 우연히 읽었고, 나는 큰 실수를 했다 싶었다. 한번 터진 기억의 둑은 막을 수 없는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걷잡을 수 없이 휩쓸려 망원동이라는 떠나온 바다에 풍덩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알고 보면 바다 밑은 잠잠하고 재미난 세상이듯 막상 망원동 바다에 들어간 나는 내 안의 온갖 기억을 스노클링하듯 신나게 헤집고 다녔다. 책을 한 장씩 펼칠 때마다 이 가게와 저 가게를 드나들었고, 20대의 나도, 울던 그날도 만났다.
한번 시작한 망원동 스노클링은 멈출 수가 없었다. 도서관에서 망원동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찾아 한가득 빌려왔다. 더 잘 보이는 고글과 기다란 오리발까지 장착한 듯 바위 틈새로도 못 가본 곳으로도 나아갔다. 파란색의 싱그러운 망원동도 있었고, 노랗고 몽글몽글한 망원동도, 주황빛을 반짝이는 모래알 같은 망원동도 있었다. 내 안의 망원동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였지만 덕분에 미처 알 수 없었던 색색깔로 빛나는 망원동을 보는 즐거움에 흠뻑 빠졌었다.
이렇게 ‘동’ 단위의 구역에 사람들이 애착을 갖고 이야기를 글로 생산해 내는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아무튼 역삼동? 아무튼 종로? 아무래도 망원동이 그 자리엔 가장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이곳만큼 애정으로 동네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많지 않아 보인다. 짧게는 몇 년 된 청년층부터 많게는 몇십 년을 훌쩍 넘는 시장 상인들까지 망원동 이력은 다양했다. 그리고 다른 듯해도 하나같이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 사는 모습을 공통 분모로 품고 있었다.
멜팅팟같은 망원동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샘물처럼 솟아나면 좋겠다. 비록 내가 망원동에 계속 거주했다면 그다음 번 전세 계약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런 고민을 아마 주기적으로 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망원동에는 그런 두려움쯤은 다 물리치고 여전히 망원동에는 보드랍고, 반짝이고, 가끔은 까끌거려도 결국은 따뜻한 그런 다채로운 색이 끊임없이 피어나면 좋겠다. 언젠가는 책을 만날 수 있는 어떤 곳에서는 ‘망원동 코너’라는 망원동 이야기 동산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망원동을 헤집고 다닌 상상의 끝은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