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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May 20. 2021

편견에 대한 도전

교회를 나오고 믿음을 얻다

"목적이 이끄는 삶"과 함께한 40일.


시작은 4월4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로 보이는) 40과를 읽은 건 5월12이었다. 이 기간이 40일 보다 이틀이 빠른 것을 적으면서 알게 됐다. 1주일에 한번씩 줌모임을 했는데, 어떤땐 모임이 앞당겨져 하루에 2과를 읽어야 할때도 있었다. 보너스로 달라붙은 41과, 42과는 개정판에만 있는 것이어서 쉽게 읽고 지나가는 챕터이리라 생각했는데, 어떤 챕터보다도 묵직했다. 아니, 어느 것 하나 묵직하지 않은 내용이 없었다. 40일간, 그야말로 정주행했다.


관계는 소망을 낳는다. 동생 바니가 처음 제안했을 때, 나는 이미 그 책으로 누군가와 이야기가 하고싶어졌었다. 그것이 자매여도 상관없고, 멀리 떨어진 친구여도 되고, 집에 있는 남편이어도 괜찮았다. 단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친자매(교회안에서의 자매가 아니다)들은 한 3-4년전부터 좀 깊은 관계를 갖게 된듯싶다. 내가 생각할 때 그 중심에는 오랜 시간 다른 나라에서의 사역과, 신학공부등으로 멀리 살았던 동생이 오면서 집안팎에 일도 많았고 의논거리가 늘어났다. 그전까지도 사이가 나쁘진 않았지만, 서로의 형편을 모두 드러내며, 소상히 삶을 나누지는 않았다고 본다.  동생은 어릴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왔을뿐더러, 중동지역 아제르바이잔이라는 작은 나라에 가서 성경번역 사역을 하기도 했고, 남편은 목회학을 동생은 상담학을 공부하느라 또 수년간을 미국에서 떨어져 살기도 했기에, 우리들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가족의 일에서 한발 떨어진 삶을 살아야했던 동생이었는지라, 약간 거리가 있기도 했다. 또한 나는 약간 뜨악한 눈으로 동생네를 보기도 했다. 나중에 자세한 이야기가 나올테지만, 잘못된 신앙관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다. 말하자면, "선교면 다야? 뭐.." 이런 마땅치않은 시선이 내게 있었다고 고백한다. 부끄럽지만.


그 동생이 토론토에서 상담일을 하면서 엄마를 지척에서 돌보면서 지내다가 재작년엔 또 미국 메릴랜드에 영어권 사역을 위해 떠났었다. 엄마와 한국서 온 언니와 함께 캐나다 식구들 모두 메릴랜드로 여행했던 것이 코로나 직전 2019년 11월이었다. 메릴랜드에 가서 동생네 교회에도 가보고, 교인들도 만나면서 동생이 사랑을 나누고 섬기는 삶을 남편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동생의 권유로 내가 메릴랜드 교인들과 북클럽도 같이 해서, 조금 더 삶을 나누는 기회가 생겼었다. 어쩌면 그때 북클럽을 하겠다고 용기를 냈을 때부터,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해놓으신 계획이 있었던 게 아닌가싶다. "영포자"라는 말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는데, 어떻게 영어권과 북클럽을 같이 할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두번의 북클럽에서 나는 상당히 "향상된" 영어실력과 함께, 믿음의 성장도 했다고 과감히 자평하는 바이다.


북클럽을 하면서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삶, 다른 사람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는 삶,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목적이 있으신 것 같다는 자각등, 그 모든 것들이 조금씩조금씩 내게로 흘러들고 있었고, 내 신앙생활에 대한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읽게 되기도 했다.


https://brunch.co.kr/@mindyleesong/90


북클럽 가을학기가 끝나고 겨울학기 새책을 논의하는데, 한 참여자가 릭 워렌 목사의 "The purpose Driven Life" -What on earth am I here for-를 후보책으로 추천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사탄이 쓴 책을? 그리곤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목사라 부르던 X 목사는 설교 따로, 삶 따로 그렇게 10여년을 이곳에서 목회하다가, 도망가듯 떠났다. 그후로 다시 새목사가 와서 나는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지만, 달라지지 않았고, 나의 결정은 교회를 나오자,가 되었다.  그러니 그가 말했던 것을 이제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어졌다. 릭 워렌 목사를 그리 폄훼하고, 선교지에 있는 이들을 "사탕이나 나눠주는" 같지않은 신앙쇼를 하는 사람들로 깍아내리던 그 목사가 그리 말했다면, 다른 것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어느날 새벽, (그게 며칠이었는지, 기록해둘 걸 그랬다) 잠이 안와 깨어있을 때 나는 그 목사를 생각해냈다.  "Saddleback Church". 유튜브에 검색했더니, 바로 그 교회 설교사이트로 연결이 됐다. 평퍼짐하게 생긴 목사가 농장 한가운데 책상을 놓고, 인터넷 설교를 하고 있었다. 소소한 바람이 그 정원에 나폴거렸다. 그의 눈빛은 초롱했고, 사랑을 담고있었다.


그의 설교를 듣기 시작했다. 일단 신기했던 건, 영어설교가 잘들렸다. "영어설교"는 특히나 어려웠었다. 처음 이 동네에 들어와서 아이들과 함께 다녔던 동네 장로교회 목사가 설교할 때, 정말 거의 한마디도 들리지 않아서, 그의 설교 원고를 나중에 얻어서 공부하곤 했다. 물론 그게 벌써 20여년이 흘렀고, 그때 이후로 영어설교 듣는 것을 "포기"하고 살았었다. 그랬는데, 그날 새벽 릭 워렌 목사의 설교가 들렸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그의 설교는 한편한편이 초신자에게 하는 이야기같다.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의 설교를 들으면, 당장 세례를 받고싶어질 것 같은(물론 내 생각이지만) 살아있는 명설교였다.


그렇게 릭 워렌 목사를 새롭게 만났다. 릭 목사를 알지도 못하면서 멀리하게 된 이유를 조금 더 적어보자. X목사는 "목적이 이끄는 삶"은 "인간의 행위를 통해 자기 의를 세우려는 사람들"을 만들어낸다고 했던가? 그는 X목사로부터 대형교회, 인기가 있는 것만으로도 비난의 대상이되어야 했다. 그 목사는 그런 책을 읽고 좋아하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조롱하고 비웃었었다. 나도 저절로 그 X목사 편을 들어, 마땅치않은 비성서적인 책이라고 입력시켜놨었다. 이 책의 한국어판은 20여년전에 우리집에 방문왔던 언니의 친구분이 소중하게 읽은 책이라며, 선물로 주고간 것이었다. 그 책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릭 목사의 설교를 여러편 듣게 되면서 책에 관한 관심을 갖게 됐었다. 영어본(남편이 구입해놨었다)과 한국본 그 두책이 책장 한가운데서 20여년간 잠을 자고 있었다.


나와 함께 교회를 나온 조앤언니와 나, 그리고 최근에 성경공부와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며,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 막내동생, 그리고 한국에 있는 언니, 이 모임을 제안하고, 방향을 잡아줄 동생 바니까지 5명이서 40일간의 항해를 같이 하기로 했다.



릭 워렌 목사에 대해선 많은 비판이 있기도 하다는 걸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됐다. 가까운 사람에게 그를 추천했더니, 흔쾌히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리에 갖혀 "무늬만 교인"의 생활을 한 내게는, 어떤 교리에 충실한 목사보다 복음을 전한다 믿어진다. 어떤 사람은 목사의 아들이 "자살로 마감했다"는 것 때문에 그를 경원시하기도 한다. 나는 오히려 그래서 더욱 신뢰가 간다. 정신적 질환을 앓던 그의 아들이 27세때 죽었다. 목사는 그런 경험들을  아픔을 섞어 설교때에 말하기도 한다.


이번 여정은 나의 편견이 얼마나 지독한지, 그안에서만 살려고 했던 모습을 스스로 보게 됐다. 말하자면, 난 ~~ 한 것은 싫어, 하면 그것은 평생 내가 싫어하는 것이 되고, 더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목적"이라는 말을 싫어해서 그의 책을 읽지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의 한 속성이다. 이제 그런 편견들을 내려놔본다.


"It's not about you. The purpose of your life is far great than your own personal fulfillment, your peace of mind, or even your happiness. if's far greater than your family, your career, or even your wildest dreams and ambitouns. if you want to know why you were placed on this planet, you must begin with God. You were born by his purpose and for his purpose."


"이것은 너에 관한 것이 아니다. 네 삶의 목적은 네 개인의 충만함과, 마음의 평화와 너의 행복에 관한 것보다 훨씬 위대한 것을 담고있다. 이것은 네 가족, 네 직업 혹은 너의 원대한 꿈과 포부보다 더 위대한 무엇이다. 네가 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면 너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너는 그의 목적을 위해 태어났고, 그의 목적을 위해 지음받았다."(나의 해석)


이렇게 첫 과를 시작한다. 삶에 감추인 비밀이 이렇게 벗겨져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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