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찾다

"자"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그대에게

by mindy

대학때 무슨 일인가로 교수집으로 몇 학생이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 교수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이름을 물어봤다. 내 차례가 되었을때 이름을 말했더니,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아버님이 생각없이 지으셨구먼" 심드렁하게 말하셨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렇잖아도 이름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단지 "이름" 때문에 "생각없는 무지랑이" 아버지를 가진 그렇고 그런 학생으로 취급되어지는 것이 언짢았다. 여자 이름이 "자"로 끝나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 이 이름은 이런식의 일본 여자 이름을 본딴 일제강점기의 잔재라고 알려져 있다. 자식이 많은 아버지는 위로 언니들에게는 돌림자를 지어주시다가, 1960년대에 태어난 나와 언니, 동생에게 "자"로 끝나는 이름을 주셨다.


머리가 커가면서 내 이름이 아름답지 않을뿐 아니라, 부끄러운 역사관이 반영되어 있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초등학교 교사"셨던 아버지는 어떤 이유로 이런 이름을 지으셨는지, 아직도 여쭤보지 못했다. 아버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글을 쓰다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왜 우리 이름을 "자"로 지으셨을까? 아버지가. "

"몰라. 이름은 아버지가 다 지었지. 그때 그런 이름들이 많았어."

"그랬지? 유행이었나봐. 일제 시대도 아닌데, 왜 일본식 이름을 지으셨나 모르겠네. 그냥 궁금해서."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내 이름을 지은 것도 아니니, 우리들은 그냥 살아내는 수밖에. 그런데 그 교수의 말은 마음에 박혀서 가끔씩 나를 건드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문학잡지사에 취직했다. 그때 다른 것보다 내 이름 앞에서 잡지사의 주간은 심각한 문제인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와 함께 선발된 남자기자와 나, 그리고 주간과 주간의 부인이 함께 밥을 먹는 자리였는데, 주간의 부인이 말했다.


"이런 이름으론 안돼. 이렇게 하자"며 내 이름을 뒤집어 새 이름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명함에 그렇게 박았다. 촌스런 내 이름이 사회에 발을 딛자마자 거절당했다. 나는 속절없이 이자민으로 살뻔 했는데, 그나마 그 잡지사에서 몇달 안돼 쫓겨났기 때문에 "이자민"은 단명하고 말았다.


내 이름은 획을 하나만 바꾸든지, 모음을 살짝 비틀든지 하면 꽤 그럴싸한 이름이 된다. 이름을 밝힐 수밖에 없다. 내 이름은 "이민자"이다. 그 잡지사에서 내게 준 이름은 "이자민"이었다. 나는 이민지, 이민주, 이지민 등 내 이름과 비슷하지만, 이지적으로 보이는 그런 이름중 하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쓸데없는 공상을 하기도 했다. 그 뜻은 또 어떤가? "백성민, 아들자, 백성의 아들"이라니. 딸을 너무 여럿 낳다보니, 딸자식에 대한 애정이 식으셨었는지, 아버지의 갈팡질팡함이 이름에서 읽힌다. 자식의 이름이 평생 가는데 왜 그러셨을까?


이름 때문인지, 나는 "immigrant"가 되고야 만다. 친구들은 이름 때문에 "이민가게 됐다"고 나를 놀려댔다. 아버지는 선견지명이 있어서 이민자로 지은 것은 아니었겠으나,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네.


외국에 나오게 되는 사람들은 여권을 만들게 되고, 이름을 영어식으로 표기해야 한다. 북미주에서는 이름이 Last name과 First name이 기본형이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이고, 지루할 수 있는 있는데 확실히 해두기 위해 몇마디 더 보태려고 한다.


여권을 만들때 자신의 이름을 3음절로 이뤄진 한국식으로 표현하여 또박또박 분리해서 적을 경우 이름의 두번째 음절이 middle name 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가령 Min Ja Lee라고 했을때 내 이름은 Min이 되고 성은 Lee가 되며, middle name이 Ja가 된다는 말이다. 자신의 이름이 한국처럼 "민자"로 불리길 원한다면 "Minja"로 적어주는 것이 맞는 표기법이다. 물론 맞고 틀리고 그렇지는 않지만,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조금 더 신경쓰는 것이 좋겠다. 언젠가 병원에 갔을때 간호사가 "Min"하고 부르는데 그것이 나를 찾는 소리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이름 중간에 하이픈"-"으로 두 글자를 연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캐나다 전산시스템에서 하이픈이 잘 작동되지 않는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라스트 네임을 영어로 표현할때 흔히 쓰는 단어로 하면, 나중에 혼란이 온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전씨인데, "John"으로 적어, 성이 이름처럼 불려진다고 해서 웃기도 했다. 유씨같은 경우 "You"보다는 "Yoo"가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어쨋든 영어 이름 표기에 조금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을 외국에 살면서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남편 성을 따를 필요없이 본인의 성을 그대로 써도 된다. 한국처럼. 조금 후에 그 이야기를 덧붙이려고 한다.


외국에 오고 나니, 다른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생긴다. 나는 예전 한국에 있을때 외국인 선교사가 내 이름자에서 딴 "mindy"라는 이름을 지어준 적이 있어서, 그것을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결혼하면서 남편의 성을 따르면 되니, 또한번의 변신의 기회가 있기도 하다.


나는 자주 "mindy"로 불리고 "Mrs. Song"으로 불린다. 그래서 나의 "법률적인 이름"에 대한 인식이 무뎌져갔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학교와의 소통에서도 나는 Mindy Song이라는 나쁘지 않은 이름으로 살게 되었다.


독자 여러분은 내가 내 이름을 싫어한다고 오해하지 마시라. 약간의 불만은 있으나 결국 나의 삶은 내가 "이민자"로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것임으로 엄청 소중하다. 내 법률 이름을 소홀히 해서 생겼던 문제를 털어놓으려 한다.


남편과 결혼하면서 당연히 "last name"을 남편성으로 바꿔야 하는지 알았다. 영어권에서는 결혼하면 "반드시" 남편성을 따르는 것이라고 배웠고, 그래서 결혼하면서 부랴부랴 성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말인즉슨, 한군데를 바꾸면 모두 자동적으로 바뀌는 그런 전산시스템 이전이라, 기록된 모든 성을 바꿔야 하는데, 그만 "소시얼 인슈런스"와 몇가지 변경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어쩌다 보니, 성을 혼용해 쓰게 되었고, 그런 사실조차 처음에는 잘 인지하지 못했었다.


남편성을 쓰다보니, 이것 또한 내가 아닌듯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결혼할 그 당시쯤 캐나다법이 바뀌어, 자신의 본성을 간직해도 되고, 남편 성을 써도 되고, 많은 옵션들이 존재했다. 그래서 다시 내 이름으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두 성을 가지고 있는데 큰 문제는 없었지만, 법적인 문제가 걸리게 된다면 꽤 곤란해질 것 같은 예감은 항상 있었다. 차일피일 그대로 쓰다가 캐나다 국세청(Canada Revenue Agency)과 부딪치는 일이 발생했다. 일단 서비스 캐나다에 가서 쇼시얼 인슈런스 카드에 있는 내 성을 바꾸었으면 한다고 했더니, 내 여권과 운전면허 등을 확인하곤 새 이름이 들어간 쇼시얼번호를 주었다. 이제는 다 되었다 싶었는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국세청에서 내 이름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다.


캐나다국세청은 내가 겪은 정부기관중에서 가장 권위적으로 보이는 기관이다. 영어가 짧은 내가 해결하기 어려워서, 딸이 집에 왔을때 딸은 변호사 사무실과 국세청에 보내는 편지를 만들어주었다. 캐나다 여권, 운전면허, 소시얼 카드 등등, 남편 성이 아니라, 내 성으로 된 것들을 복사하고, 변호사에게 가서 공증받아서 국세청에 보냈다.


예전에 Tax Free Savings Acount라는 것을 만들어서 예금을 해놨는데 이것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세청에 있는 내 이름과, 은행 이름이 일치하지 않아서. 은행에서 연락이 와서 내게 국세청으로 전화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 전화번호까지 준다. 내가 보낸 서류만으로 다 해결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느날 남편이 있는데서 전화를 했다. 스피커폰으로 했는데, 전화를 받는 국세청 직원은 사무적이고 딱딱한 목소리로 바로 스피커폰을 끄라고 요구했다. 영어가 부족해 남편이 도와주려 옆에 서 있다고 했더니, 우선은 꺼야 한다고 말했다. 돈에 관계된 일이라 완벽한 보안과 사기를 막기 위해서 그런 것 같았다. 결국 스피커 폰을 끄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대답하고, 그동안의 경과와 함께 내 법률적 성을 내 본연의 이름으로 갖고오려니 땀이 났다. 어쨋든 그 일 이후로 드디어 예전의 그 이름을 회복했다. 내가 조금은 경원시했던 내 이름 "이민자"로 나를 복구하는데 오랜 세월과 마음졸임이 있었다.



잃어버릴뻔 해야, 그것이 소중한 줄 알게 되는것 같다. 더이상 내 이름이 일본식이라고, 이지적이고 세련되지 않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이름은 나를 대표하긴 하지만, 나를 이루는 여러 요소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나는 일본 냄새가 나는 이름을 갖고 있고, 역사관이 희미한 부모밑에서 태어났으며, 내땅도 아닌 넘의땅의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며, "열가지가 좋을순 없다"를 가르쳐주신 아버지의 유산으로 잘살아가고 있다. 둘째가 태어나던 토론토 세인트 마이클 병원에는 그날 다른 한국인 임신부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도 이민자였던 것 같다. 간호사는 두 엄마의 이름이 같아서 혼란스럽다며 머리를 젓던 모습이 생각난다.


내 이름과 같은 사람들, 또는 이땅에 "자"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내 친구들, 언니들, 동생들(어느 유뷰버가 시청자에게 하는 말투로) 우리 열심히 살아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그 이름이 갖는 부정적인 의미를 극복하고, 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보자. 그러자.

이전 09화캠핑은 어려워서 남는 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