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은 어려워서 남는 게 많다
1년에 한번이라도 캠핑을 떠나는 이유
트레블 트레일러 창문에 달린 블라인드를 살짝 들춰본다. 우선 창문안으로 빗살이 햇빛을 머금고 퍼져들어온다. 눈에 들어오는 호숫가 다른 캠퍼들도 하나둘 눈을 뜨고 있는 시각이다. 앞쪽 텐트 열린 문으로 머리를 빗어넘기며 포니테일을 하는 사람이 눈에 띄인다. 밖에선 커피를 만드는지, 피크닉 테이블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남자. 세명의 아가씨들은 건강한 뜀박질로 우리 트레일러 앞을 지나간다. 한 아주머니는 강아지와 슬렁슬렁 산책을 하고 있다. 저멀리 낚시를 하는 아저씨도 보인다. 엊저녁 꼬마들이 타던 자전거가 나무둥치에 세워져 있다.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 트레일러 밖에서 커피를 끓이는 남편의 달그락거리며 커피머신에 물붓는 소리, 트레일러 한편에서 자고 일어난 딸과 사위가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소리... 밖으로 나오니 어젯밤 밤새 떠들며(캐나다 캠핑사이트에서 보기 드문 시끄러운 캠퍼들이었다) 늦게까지 자지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한무리의 아가씨들이 모두 음악에 맞춰 운동을 하고 있다. 몸이 유연하고 아름답다. 늦게까지 놀던 것으로 미뤄보면, 늦잠 타입의 아가씨들일 것 같은데, 상큼하고 발랄하게 아침을 맞고 있어, 보는 사람의 활력을 자극한다.
캠핑장의 아침은 보고싶은 광경만 담겨있는 자연에 있는 사이드 디시(반찬 한가지)같다. 우리는 거의 매년 이곳에서 캠핑을 한다. 새롬을 추구하는 병이 있는 나는 이번에는 다른 곳을 갈까 하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이곳으로 다시 왔다. 더 좋은 곳이 많을 것을 알지만, 이곳에서 나쁜 점을 찾지 못해, 매년 다시 오게 된다.
우선 사설이 아니라, 시가 운영하는 공원이라 자유로움이 있다. 사설은 너무 빡빡하다. 성인2인 기준으로 미성년 자녀만 동반으로 인정되고, 나머지 성인은 값을 다 치뤄야 하는데, 이곳은 한가족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돈도 돈이지만, 성인이라고 같은 사이트를 쓰는데 따로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이 영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면 캐네디언이 다 되었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돈만의 문제는 아니다^^)
코로나로 샤워시설과 야외운동기구 터를 폐쇄하긴 했지만, 다른 것은 예년과 같았다. RV(캠핑카, 트레일러)와 텐트가 함께 있는 이 캠핑장은 Wiaton에 있는 Bluewater Camp Ground 이다. 죠지언 베이중 더 푹 파인 colpoy만에 인접한 곳으로 장기 리스해서 있는 캠핑족도 많고, 여름 한시즌 방문객들로 붐빈다. 규모가 그다지 크진 않지만, 호숫가에서 수영, 낚시, 카누, 카약, 보트 등이 허용되기에 주변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같다.
우리가 특별히 이곳을 선호하는 이유는 집에서 가깝기 때문이다. 집에서 1시간이면 오는 곳이고, 세계적 관광지 Tobermory까지 또 1시간 정도 가면 된다. 토버모리 베이스캠프라 불리는 이유이다. 그쪽 Bruce Peninsula 국립공원은 매년 인기가 높아가는데, 수용인원이 제한적이라 요즘엔 이용하기가 쉽지않다. 우리도 캠핑사이트를 예약하면서 국립공원안에 있는 Grotto를 볼수 있는가 했더니, 8월까지는 거의 예약이 마쳐진 상태였다. 우리야 질리도록 갔으니, 올해 안가도 상관없지만, 공원 수용인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로 수용인원의 숫자가 줄어들어서 더욱 힘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캠핑은 생업을 유지하면서 해야 하니, 절묘하게 계획해야 했다. 오랜동안 우리 가족의 대소사에 가게를 봐주시던 미키 할머니가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더이상 일을 하시지 못하게 됐다. 그리고 또 한분의 헬퍼도 작년 겨울을 끝으로 그만하시게 되어서 가장 아쉬운 것은 가족여행이 힘들어지게 된 점이다.
그래도 이번엔 그럭저럭 작전이 성공한 듯싶다. 우선 첫날은 막내가 본인이 강력히 원해서 가게문을 닫고 그다음날 열고, 다음날은 오후에 남편과 내가 가게로 돌아가 내가 막내를 데리고 캠핑장으로 오고, 남편은 문을 닫고 합류하고, 그 다음날, 아침 낮 12시에 가게 문을 연다고 써붙이고, 저녁과 아침을 함께 보내고, 부지런히 달려와서 11시 50분에 도착, 12시에 문을 열수 있었다.
캠핑은 사실 쉬워보이면서 어려운 야외활동이다. 트럭으로 끄는 트레블 트레일러를 구입한게 벌써 14년이나 되었는데, 그런데도 트레일러를 끌고 다니는 것이 쉽지않다. 트레일러와 트럭을 이어붙이는 것부터 시작하여, 주차장에서 무사히 나오기, 캠핑 사이트에 가서 그 큰 덩치를 사이트에 안전하게 집어넣기, 전기, 물 사용할 수 있게 시설 확인하기, 밧데리 충전에 관한 것, 캠핑장을 떠나면서 오물 버리기 등등, 나는 옆에서 보기만 해도 복잡한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첫해에 트레일러 안에 있는 프로판 레인지를 사용했다가 불을 낼뻔하여 그 다음부터는 안에서는 불은 사용하지 않는다. 돌아오는 날 아침에는 저녁에 내려놓았던 차양막을 다시 걷어올리는데, 남편이 낑낑대는 소리에 나가서 도와줬다. 제대로 수평이 맞고, 옆 사이드에 잘 맞물려져야 한다. 두어번 교정해야 했고, 그 와중에 남편의 손장갑은 말려올라가는 차양에 물려 손가락이 끊어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장갑이 아니고, 손이 말려 올라갔으면 어떻게 됐으려나.. 물론 손가락이 말릴 염려는 없지만, 어쨋든 다쳤을 것이다. 캠핑카라면, 이보다는 훨씬 쉬울 것이다.
이건 트레일러의 이야기고, 먹는 것은 또 내 담당이니, 2박3일간 먹을 걸 챙겼다. 첫날 저녁 삼겹살과 목살, 새우와 야채로 바베큐를 했고, 곁들인 배추국은 미리 끓여 갖고 갔다. 김치겸 밑반찬 몇가지를 마련했다. 열무김치 냉면은 둘째날 점심으로 해먹고, 저녁으로 김치찌개와 바베큐를 한번 더 하고. 별다른 음식을 하지는 않았지만, 허리띠 풀어놓고, 연기와 기름을 튀겨가며 늘어지게 잘 먹었다. 마지막날 아침은 랩스터 라면을 끓였다. 마침 그날이 Sunday 여서 아이들이 생각해낸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선데이 누들"이다. 아이들 어렸을때 선데이에는 라면을 끓여주었는데,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날이었던 것. 나쁜 음식 매번 줄 수는 없고, 선데이에만 먹는 특별식이 "선데이 누들"이었다. 랩스터와 청양고추, 파를 넣고 끓여먹었던 그날 라면은 아이들에게 옛 향수를 느끼게 해주었던 것같다.
선데이 랩스터 누들첫째날 오전에는 아이들과 부루스 트레일을 걸었다. 아내를 위해 지었다는 무너진 Corran 성까지 올라갔다. 아내는 완공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후 고향 아일렌드에 있는 친구를 초청하여 마무리를 지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500여 그루의 장미꽃밭과 모란꽃이 있는 대규모 화원과, 서재와 파티룸 등 17개의 방이 있는 멘션이었단다. 변호사이자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집주인은 그집에서 큰 파티를 종종 열었고, 재혼했다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후로는 독신이었던 아들이 그 성을 관리했고, 후에는 집을 돌보던 유모에게 넘겨졌는데, 그녀는 감당을 할 수 없어서 떠났다고 한다. 소유권이 다른 데로 넘어갔다가 결국 비어져서 화재로 손실되었고 그후 자연보호관리국이 이 땅을 사들여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제는 돌과 시멘트의 구조물만 남아있다. 인생무상이라고 했던가? 그 성에 얽힌 이야기만도 이곳에 썰을 풀기엔 벅찬 여러 사람들의 삶이 들어가 있었다.
코란성의 일부
오후에 막내를 데리고 와서는 일단 수영부터 했다. 우리가 올때까지 둘째 부부는 두번쯤 수영을 했다고 했다. 나는 오랜만에 수영의욕에 불탔다. 재작년인가, 수영강습을 받은 적 있지만, 다시 완벽하게 잊어버려서 이번에는 구명조끼를 입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가져온 비치 누들을 하나 들고 났더니 무서운 게 없었다. 막내는 잠시 물에 있다가 물이 차다며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엄마가 빠져 죽을까봐서...^^) 정말 열심히 물에서 놀았다. 나는 재롱부리는 애가 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왜 이런 보조 장비라도 갖추고 물에서 놀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물에 들어가려면 수영을 잘해야만 한다는 선입견을 이번에 깨버렸다. 좀 부족하면 무엇인가의 도움을 얻으면 된다.
남편은 거의 9시쯤 되어 왔다. 저녁은 그보다는 일찍 준비되었지만, 우리가 시작하면서 남편이 도착했다. 큰딸은 매년 캐나다를 방문했었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오지 못했다. 대신 새로운 식구가 된 사위가 함께 해서 우리 가족의 숫자를 채워주었다.
사위는 남편에게 든든한 지원군이다. 밥을 먹고나면 설겆이는 딸과 사위가 맡아서 하고, 모닥불은 완전 담당이고, 캠핑 트레일러를 연결할때, 빠져나갈때, 다시 주차할 때 그 모든 때마다 제대로 남편과 호흡을 맞춰서 이번에는 한결 쉬웠던 것같다. 남편은 어두워지면 이곳저곳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밧데리가 들어있어 땅에 꼽는 조명부터, 식탁을 밝히는 불, 설겆이 할 때면 불을 비춰주고. 우리 가족들은 남편을 "light man"이라 부른다. 어둡기 전에 어두움을 해결하려는 사람이다. 집에서도 나를 쫓아다니며 불을 켜준다. 나는 조금 어두워도 그걸 느끼지 못하는 편인데, 남편이 켜줘 버릇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트럭과 트레일러를 연결하는 중이다일년에 한두번 하는 캠핑을 위해서 트레일러를 가지고 있으니, 어떤땐 좀 미련했다 싶기도 하다. 그래도 캠핑에 가면 얻어오는 것들이 있다. 자연이 만들어준 그늘에 앉았을 때 살풋이 바람이 불어주면, 그건 에어컨 바람이 줄 수 없는 지상 최고의 서늘함이다. 올해는 물 저쪽에서 떠오르는 달을 봤다. 보름을 지나 기울어가는 주황색 달은 솟아오르는 해와 많이 비슷했지만, 점점 밝아지는 해돋이와 달리 어둠이 차올랐던 것이 달랐던 것 같다. "문 롸이스"라는 선물을 받았던 캠핑이다. 마침 코로나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야외로 나와 왁자한 캠핑장이 삶의 활기로 살아난다. 주변인과의 거리두기 때문에 가까운 가족, 혹은 아는 사람들과의 관계쌓기는 더욱 소중해진다.
막내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들은 까닭했으면 캠핑을 엎을뻔 했다. 어떤 문제로 "신뢰에 금이갔다"며 토라져있는 막내 때문에 캠핑준비에 만반을 기해놓은 남편도, "나도 가고싶지 않다"는 말을 입밖에 내기도 했다. 그러나 토론토로부터 캠핑을 위해 올라오는 딸과 사위도 있었고, 화를 가라앉혀야 했다. 막내를 먼저 보내려던 우리의 계획을 수정해서, 본인이 원한 대로 막내가 하루 집에 남아있었다. 약간의 오해로 서로 의기소침했던 우리들이 캠핑으로 조금 더 접합이 되었기를 바란다. 그 덕분에 남편은 하이킹도 하고, 캠퍼의 면목을 세울 수 있었다. 둘째날, 저녁 늦게 합류한 남편은 모닥불이 다 꺼져가는 데도 조금 서운한 무언가가 있는 듯싶었다. 그래서 나와 함께 밖에 남아서 깊어가는 밤을 조금 더 밝혔다. 비가 후두둑 떨어져서 피크닉 의자도 차양막안으로 옮기고 그 의자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당연한 일이 없다는 것을 이번 캠핑을 통해서도 느낀다. 온 가족이 행복하게 하하호호 웃을 수만은 없는 법이다.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나간다. 문제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고 해결책을 도모하면서, 서로 다독이면서 함께 걸어간다. 사위도 이젠 가족의 일원이 되어서, 우리의 불편함에 대해서 함께 의견을 나눈다. 그렇게 매끄럽지 않은 모습까지 공유하는 것이 가족의 모습일 것이다.
어려움 속에 함께 했던 2020년의 캠핑, 내년엔 어떤 모습일까? 막내가 가게 대문에 써붙인 포스터 때문에 동네 사람들에게 캠핑이 어땠냐는 질문을 받는다. 어쩌면 내년에는 아예 문을 닫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말많은 몇사람만 투덜대겠지 뭐. 아니면 둘째 말대로 헬퍼를 속히 구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