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남자와 함께 한 30년

나이아가라에서 그를 다시 발견하다

by mindy

우리 늙어서까지 서로 이렇게 사랑하자.

우리 둘을 중앙에 두고, 카메라가 뱅글뱅글 돈다.

움푹 파인 초원에 앉아, 사랑을 고백하며 그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리면, 영화 속 장면처럼, 우리 둘은 가만히 있는데 배경이 마구 돌아가는 기막힌 촬영 현장이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까닭이겠지. 그곳에는 다른 사람들은 없고, 사랑에 빠진 두 남녀만 있다.


그 남녀가 함께한 긴 데이트는 나이아가라였다. 토론토에서 버스를 타고 떠났다. 그 당시 유행하던 스웨터를 어깨에 두르고 앞으로 잡아맨 패션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손을 꼭 잡고 나이아가라 물줄기를 보면서 걸었었다. 정원을 둘러싼 돌담 위를 걸으며 비틀거릴 때 그가 손을 내밀어 중심을 잡아준다. 버스가 끊겨 하룻밤 묵고 가는 드라마는 쓰지 못했다. 토론토와 나이아가라는 그렇게 먼 곳은 아니다.


소개받은 후로 매일같이 만나다시피 했다. 여자집에서 약간의 반대가 있었지만 그들은 슬기롭게 이겨낸다. 그리고 여자는 어느 날 꽃 한 송이를 들고 무릎 꿇은 그 남자의 프러포즈를 받는다.


여자의 엄마는 여자를 걱정했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이 좋아하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여자는 그남자를 처음 보았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게 2초 만에 그가 그여자 안으로 들어왔다. 연애 기간 중에 약속을 어긴 적이 있었다. 연락도 없었다. 그 여자는 이 문제를 심각히 생각한다. 이렇게 연락도 없이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받아줘야 하나, 이래도 되나, 하면서. 그런데 좋아하는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만난 지 겨우 5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지지고 볶은 지 25해째 되는 결혼기념일에 나이아가라를 다시 가기로 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둘만의 여행이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의 선택과 안목의 혜택을 보고 싶다.


그해 여름, 최악의 여행이 되었다. 그날 호기롭게 떠났지만 그 남자와 여자가 머물 곳이 없었다. 호텔의 방들은 모두 동이 났다. 여자는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나이아가라를 빠져나와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라는 마을로 들어섰었다. 여자는 그 마을이 나이아가라만큼이나 인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호텔이 아니더라도 B&B 같은, 곳에서 자면 될 것 같다. 잠시 그런 이야기를 비춰보지만, 그 남자는 "반드시 호텔"이어야 된다.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로 다시 간다. 배는 고파오고, 객실을 찾을 수는 없고. 나중에 격이 떨어지는 한 곳을 예약할 수 있었다.


그 남자는 지금까지도 "호텔 예약 안 한 것"을 여행의 실패 원인으로 본다. 그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 꼭 "호텔"이어야 하는가? 왜 꼭 "나이아가라 도심"이어야 하는가? 그곳을 벗어나서 후진 숙소라도 구할 수 있고, 더 즐거운 일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가 자꾸 그 기대를 깨부수었기 때문에 화가 났었다.


서로의 취향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결혼 권태기였을 수도 있다.


며칠 전 마침내 결혼 30주년을 맞이했다. 그들은 결혼 30주년에는 유럽여행을 가야 하지 않을까, 꿈꿔왔다. 팩캐지여행을 말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자유여행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팩캐지와 자유가 싸우지 않아도 된다. 조금은 특별해야 할 것 같은 30주년 여행은 "그 남자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다시 나이아가라이다.


이번엔 그 남자가 꿈꾸던 나이아가라 여행을 했다. 물론 그 여자는 만족하기로 결정했고, 사실 만족스러웠다. 최고급 호텔, 폭포가 보이는 방을 얻었다. 호텔비도 비쌌지만 주차비도 만만치 않았다. 그 호텔 내에 주차하면 75불(거의 하룻밤 일반 호텔 가격이다), 옆 건물에 주차하면 35불이었다. 우리는 옆 건물에 주차했다. 그리고 또 폭포가 보이는 곳에서 와인과 저녁을 먹었다. 두 사람 음식값이 100달러 정도 나왔다. 그다음 날 아침 전망좋은 호텔 레스토랑이었는데 미리 돈을 지불했다. 관광지의 바가지요금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편한 곳에서 탁 트인 풍경을 보면서 식사하는 데에 대한 댓가라고 생각해야 한다. 계란, 베이컨, 토스트 등의 일반적인 아침식사가 25불 상당이었다. 그리고 그 서비스하는 아주머니는 호텔에 미리 지불한 금액에는 팁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팁을 내놓으라는 말이다.


"혼블로워(hornblower)" 배가 말발굽 폭포 아래를 지나고 있다. 그 안쪽으로 가면 모두 젖기 때문에 우비를 입는다.


약간의 에피소드들도 있다. 우리가 묵었던 그날 새벽, 1시 30분경 호텔방의 불이 나갔다. 그날 약간 온도가 쿨한 상태였기 망정이지, 더운 날이었음 어쩔뻔했나? 새벽에 나간 불은 호텔에서 체크 아웃할 때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그 남자는 "어떤 종류의 불"이든 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불"이 나간 "호텔"에서 쩔쩔매는 모습이 귀엽다. 마지막에 체크아웃하면서 프런트 데스크 남자에게 물으니, "시티 문제"라고 말하며, 미안하단다. 이번에 묵은 쉐라톤 호텔은 10여 년 전에 한번 묵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새벽에 잘못된 알람이 울려서 한국서 방문 왔던 가족들과 우리 모두 로비에서 몇 시간 있었던 적도 있었다. 우리의 쉐라톤 호텔 이용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돈 쓰는 여행"도 자주 갖지는 않을 것이다. 한번 당해봤으니 말이다.


미국 쪽 폭포, 이름은 베일(면사포) 폭포라고 부른다
왼쪽 폭포는 미국 폭포, 오른쪽은 캐나다 폭포. 캐나다 쪽 폭포가 훨씬 크고 강력하다. 사진으로 식별이 불가능하지만.
나이아가라는 폭포로도 유명하지만, 전체가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정원도 아름답다. 그리고 도심 쪽으론 많은 탈것, 놀 것, 볼것들이 즐비하다


그 남자와 그여자는 "말을 놓는 사이"이다. 2살 연하인 그 여자는 남자와 평등하려면 "존댓말"이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 짐작했었다. 가끔 남편에게 깍듯한 여자들을 볼 때, 살짝 우러러 보일 때도 있지만, 그 여자는 그 남자와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여자는 그 남자를 다시 발견했다. 30여 년 전 밴프 신혼여행에서 보여줬던 그 남자의 세심함, 온유함, 나름의 유머감각까지. 잊고 살 뻔했었다. 그 여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그남자의 깊은 속을 확인했다.


나이아가라는 매력적인 곳이다. 밤에 물에 색이 입혀져서 다른 모습이 된다. 젊은 커플을 따라다니면서 긴 셀피 스틱에 스마트폰을 걸어놓고 비슷한 포즈로 찍어봤다. "그만 좀 해"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찍자는 대로, 찍어달라는 대로, 잠시 지체하면 기다려주고.


밤에는 조명 때문에 물색이 변한다. 물에 물감을 푼 것 같다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무지개다리이다. 잘 보면 캐나다 국기와 미국 국기가 가운데 있다. 국경이 막혀있어서 이곳에 오가는 차가 한 대도 없다.


말발굽폭포로 물이 떨어지기 직전 모인 물들이다. 제대로 담지 못했지만, 내가 나이아가라에서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떨어지기 위해 몰려온 물들의 숨죽임 그 모습이...


그 여자는 그남자와 있을 때만, 어깨의 짐이 가벼워진다. 그건 그여자의 짐을 그가 온전히 져주기 때문이다. 딸내미들과 있을 때라든지, 엄마, 언니들과 있을 때에는 그 여자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녀가 보호할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에.


30주년 결혼기념일, 하늘의 모습은 정말 다양했다. 푸른 하늘과, 흰구름, 그리고 먹구름과 억센 비까지. 30여 년의 시간들을 하늘에서 파노라마로 펼쳐 보여주는 듯했다. 앞뒤가 턱 막히는 흑색이었던 때를 빼면 그럭저럭 아름다운 나날이었다.


당신,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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