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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100만큼 무거워질 때, 운동화를 신는다.

힘든 사람일수록 운동을 계속하는 이유

by 시월해담

운동을 하러 갈 때면 늘 비슷한 생각이 든다.

‘솔직히 귀찮은데.’

그게 시작이다. 운동은 언제나 10 정도의 귀찮음과 고통을 동반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10이 나를 살려준 날들이 있다.


어느 날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삶이 100만큼 무거워진 날이면, 오히려 운동을 하는 그 순간이 휴식처럼 느껴졌다.

땀을 흘리는 동안만큼은 인생이 나를 붙잡지 않았다.

모든 생각이 단순해지고,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어깨에 걸친 짐을 잠시 내려놓게 했다.


하루키는 말했다.

“달리는 동안만큼은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못한다.”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해진 페이스로 움직이는 동안, 마음은 제법 정숙해진다.

삶의 복잡한 문제들이 운동화 끈보다 느슨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삶이 5 정도로 편안할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운동의 10은 그저 피곤한 일일 뿐이다.

나에게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쩌면 건너뛰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럴 때의 운동은 묘하게도 고통스럽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거부한다.


니체가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은 스스로를 이겨낼 때 조금 자유로워진다.”

조금 더 첨언하자면,

스스로를 이겨내는 일은 늘 대단한 결심보다도 작은 반복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인생이 힘든 사람일수록 운동을 오래 붙잡는 이유를.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작은 고통을 일부러 만나러 가면, 더 큰 고통이 잠시 조용해진다는 것을.


운동은 나를 강하게 만드는 작업이라기보다는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균형추였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어두는 작은 의식.

그 의식이 없다면, 하루의 무게가 쉽게 기울어질 수도 있다.


오늘도 운동화 끈을 매면서 생각한다.

이게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괜찮아진다는 기분이 든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문을 나선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10을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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