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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머무는 사람과, 조용히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

by 시월해담

사람을 오래 만나다 보면,

정말 이상하게도 시간이 더해질수록 빛이 선명해지는 사람이 있다.

처음엔 잘 몰랐던 사람이,

오래 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부류다.


그들은 말보다 행동이 먼저 움직인다.

누군가를 돕는 일도, 약속을 지키는 일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해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과 있으면 마음이 적막하게 가라앉는다.

물이 고요한 곳에서만 깊어지듯,

사람도 고요한 사람에게서 신뢰가 깊어진다.


또 그들은 남의 험담으로 시간을 채우지 않는다.

말을 아끼기 때문에 공기가 덜 탁하고,

함께 있는 공간이 조금 더 투명해진다.

조용한 오후처럼,

그저 곁에 있어도 괜찮다는 기분을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은 나만 모르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나를 배제하는 기류도, 은근한 오해도 만들지 않는다.

관계라는 길 위에서

같은 보폭으로 걸어가 준다는 건

생각보다 큰 안정감이다.


반대로,

이 모든 것의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 행동보다 너무 앞서서 금세 지치게 만들고,

남의 불행을 재미처럼 소비하고,

나만 모르는 불편한 흐름을 슬쩍 만들어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과는 오래 걷기 어렵다.

겉모습은 멀쩡한데 신발 안쪽에 작은 돌멩이가 들어 있는 것처럼

걷는 내내 계속 신경 쓰인다.

문득 발을 멈추게 되고,

다시 가려고 해도 어딘가 마음이 불편해진다.


우리는 그런 순간을 이미 알고 있다.

입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속에서는 조용히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


그럴 때는

억지로 이어 붙이지 말고

그저 서서히 멀어져도 괜찮다고,

이제는 나를 먼저 생각해도 괜찮다고

자기 자신에게 말해줘야 한다.


관계는 많은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지,

그 사람과 걷는 길이 조용히 이어지는지를 보면 된다.


어떤 사람은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 과일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지고 달아진다.


어떤 사람은 오래 두면 금세 상해버리는 마음처럼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제는 안다.

오래 머무는 사람과,

조용히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의 차이를.


그리고 그 구분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대부분은 이미 마음속에서 답이 나와 있다.


우리는 그저

그 대답을 듣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다.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가면 된다.

대부분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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