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실력은 자신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묘하게 평온한 기운이 배어 나오고 얼굴에 광채가 나는 사람.
마치 몸 안의 시계가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듯,
그 사람의 하루도 고르게 흘러가는 느낌.
나는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아, 저건 타고난 게 아니구나.
저건 어떤 고요한 노력 끝에 얻어진 결실 같은 거구나.
삶이 그 사람의 쾌도(快道) 위에 조용히 올라탄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자신을 지키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지금도 내 안에서 아주 작은 바늘처럼 남아 있다.
때로는 따끔하고, 때로는 일깨움이 된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며 알게 된다.
인생을 잘 살고 못 살고의 기준이
더 이상 스펙이나 성취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는 것을.
진짜의 기준은,
자신의 상태를 얼마나 잘 다스릴 수 있는가에 있다.
좋은 음식, 충분한 잠, 꾸준한 운동,
그리고 지적 성장으로 얻는 작은 기쁨.
이 네 가지가 조용히 균형을 맞출 때,
비로소 삶은 나를 밀어내지 않고 받아준다.
니체는 “너 자신이 되어라”라고 말했다.
그 문장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어디선가 늘 미묘하게 덜 맞는 옷처럼 우리를 따라다닌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자기와 멀어진 채 살아왔는지를 일깨운다.
만약 이 네 박자를 망가뜨리는 무언가가 있다면,
대부분 그것은 관계에서 온다.
말은 예쁘지만 마음이 어두워지는 사람,
가까운 사이인데도 이상하게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사람,
아무 일도 없었는데 하루가 무겁게 가라앉게 만드는 사람들.
그라시안은 이렇게 조언했다.
“너를 소모시키는 사람을 경계하라.”
이 말은 잔인할 만큼 현실적이다.
어떤 관계는
내가 잘못해서 깨지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에서 내가 닳아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서 깨진다.
그걸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조용히 거리를 두는 것.
그것도 실력이다.
인생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중요한 실력.
늘 얼굴이 밝고, 표정이 부드러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비밀은 화장품이 아니다.
삶이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는 신호다.
자기 리듬과 세계가 잠시나마 일치되는 순간,
그 사람의 얼굴에 빛이 스며든다.
그 빛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오래 본 사람은 안다.
아, 저건 단단한 사람에게서만 나는 빛이구나.
정약용은 말한다.
“자기를 잃으면 모두를 잃는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자신을 먼저 돌봐야 한다.
비워진 사람은 누구에게도 빛이 되어줄 수 없다.
이기적으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온전한 나로 서 있어야, 누군가의 삶에 온전히 닿을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구도 똑같은 리듬으로 살지 않는다.
각자만의 속도, 깊이, 온도가 있다.
그것을 찾는 과정이 삶이고,
그 리듬과 어긋나는 순간
문제들은 조용히 시작된다.
남의 주파수에 자신을 끼워 맞추며 사는 삶은
처음엔 그럭저럭 굴러가는 듯 보이지만
언젠가 반드시 틈이 생긴다.
그 틈은 마음의 금으로,
몸의 피로로,
그리고 결국 자기 상실로 이어진다.
자기를 알고
자기를 충만하게 만드는 일.
그것이야말로 어떤 규범, 학벌, 권위도 대신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삶의 질서다.
우리의 목표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그저 자기 안의 작은 리듬을 마지막까지 지켜내는 일.
그 리듬을 찾고, 돌보고, 필요하면 지키는 일.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낸 사람에게
삶은 어느 순간,
조용하고 안정된 궤도에 올라탄다.
누군가의 속도가 아니라,
바로 나의 속도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짜 실력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