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 달래요.
“이게 다 뭐야?.”
재개발로 반의 반토막이 나버린 산자락 끝에 있는 지훈의 신당.
오늘 이른 아침 기자들이 모여들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 어느 한 사람의 눈도, 손도 놀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 반나절 만에 이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는지 익숙하고 날랜 손으로, 어느새 최고급으로 준비한 과일들과 창호지로 만든 형형색색의 무구(무속용품)들을 실어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동안 넋이 빠지도록 멍하니 보고 있다가 사람들을 제치고 그 안을 들어가려 하자 제각기 제 할 일에 바빴던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 형사를 막아섰다.
“니 뭣이여?.”
“뉘기요?.”
“니 뭔디?.”
“아따 한 발짝만 더 디뎠으면 굿판 엎어질 뻔 해부렀소. 잉?.”
전국 팔도에서 모여든 사람들인지 각자 사투리도 다양한 데다가 막아선 사람들의 연령대와 남녀성비도 다 제각기였으나 차림새만큼은 평범하다 할만하였다.
어리둥절한 이 형사가 그들의 기세에 밀려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마지막 말을 던진 남자가 가리킨 대문에 걸린 것을 보고 두뇌를 풀가동 시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했지만 단지 그것이 자신을 들여보내지 못하는 경계선이라는 것밖에 알 수가 없었다.
금줄, 그것은 평범한 금줄이 아니었다. 농약이 닿지 않은 황금빛 볏짚을 구해 지훈이 시간이 날 때마다 낮이고 밤이고 비비고 또 비벼 정갈한 한지를 또 새끼 꼬듯 꼬아 금줄과 함께 길게 늘어뜨려 대문뿐 아니라 그 큰 신당 처마 밑을 사방으로 둘러놓았다.
현우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느꼈던 위화감은 집 앞에 펼쳐진 보기 드문 광경 때문이 아니었다.
비범한 금줄에서 사방으로 뿌려지는 신성한 기운이 단숨에 그를 압도한 것이었다.
곧 이분이 무녀인가? 싶은 생각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할 만한 독특한 복장의 어르신이 나와 바가지에 소금, 지전(창호지를 찢어 만든 무구)을 들고 나오시더니 아무 말 없이 이 형사의 머리와 어깨 위에 흔들어 대시고 나머지 소금은 그의 발치에 뿌리시고는 다시 문 안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그제야 그를 막던 이들이 자연스레 길을 터주었다.
이 형사의 눈에는 머리에 흰 꽃을 머리띠처럼 두른 무녀가 막대기에 창호지를 풍성하게도 찢어 붙인 먼지떨이 같은 걸로 자기를 몇 번 후려친 것일 뿐이었다.
신당에 발을 들이자, 이 형사의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다. 반나절 사이 어떻게 이걸 다 만들었을까 싶을 만큼 거한 차례상과 용도를 알 수 없는 무구들, 그림인지 글씨인지 알 수도 없는 한문들이 체계적으로 줄을 서 있었고 가운데는 여자의 옷과 신발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많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수련이의 옷이라는 걸.
안채에서도 십수 명의 사람들은 바쁘게도 움직였다. 그중 누군가 멍하니 구경하고 있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말없이 지훈이 있을 신당을 손으로 휙 하고 가리키더니 또 제 갈 길을 가버렸다.
이 형사는 서연주가 풀어 났다는 소식을 전해야 하는 씁쓸함에 또다시 머리를 벅벅 긁으며 헛기침하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이 형사는 이곳은 또 다른 세상인가 싶은 이질감을 느꼈다.
“앉으세요.”
‘이 녀석이 웬일로 존댓말이지?.’
준비된 방석을 끌어당겨 앉으며 약국에서 사 온 자양강장제를 지훈에게 밀어내는 동시에 문을 닫았다.
순간 이 형사는 자기가 갑자기 귀가 먹었나 싶었다. 그만큼 고요해졌다.
‘이 작은 방문이 이토록 방음이 잘된단 말이야?.’
이 형사가 어리둥절해서 지훈이 앉은 신당을 둘러보고 있을 때.
“연주는 집에 잘 들어갔나요?.”
“그 악마 같은 계집 잘 들어갔는지 말았는지 알게.. 엉? 어떻게 알았어?.”
이 형사는 방금 서연주를 풀어준 것을 지훈이 어떻게 알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가 연락했겠다고 짐작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 여자가 또 뽀로로 지 풀려났다고 잘난 척을 해댔구먼, 그러니까 악귀 같은 여자 안부를 왜 묻냐고? 대체 무슨 수를 써서 김 형사까지 구워삶았고 어디쯤에서 수사를 막은 건지 나도 답답해 죽겠어.”
지훈이 고요하고 평온하게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이 형사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저는 그날 병원에서 나온 순간부터 핸드폰을 꺼놨어요. 그리고, 연주도 처음부터 악마였던 건 아니에요. 진짜 악마를 만나서 악마의 수족이 됐거나 악마를 동경해서 악마를 닮아갔거나, 어쨌든 인간으로 태어났어요, 형사님을 보낸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어요. 하나는 제가 수련이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니 연주를 막아달라는 거였는데 완벽하게 해내셨잖아요. 감사드려요. 그리고 나머지, 힘드시겠지만 연주를 풀어준 진짜 악마를 잡아주시는 거. 어디쯤 에서 막은 건지 그쯤에 그 악마도 있겠죠?”
이 형사는 이제쯤 그에게 복채를 꺼내야 하나 싶을 만큼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
“서연주가 진짜악마에게 정보를 받고 병원을 찾아가서 수련 씨를 끝장내려고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신기하긴 하네, 그래 뭐 다 때려 맞췄다 치자, 내가 진짜 궁금한 거는 수련 씨 병원에는 어떻게 제일 먼저 찾아갔어? 아니 그보다 그 정도 능력이면 수련 씨의 사고를 왜 처음부터 막지 못했어?.”
이 형사는 사과하러 왔다가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그의 능력을 믿는 마음이 깔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게요.. 알려주시려면 어디서 어떻게 언제 사고가 날지 알려주시던지. 사실 저는 아는 게 없었어요. 뚜렷한 화경도 보여주시지 않은 신령님께 화가 난 것도 사실이에요. 못 보여주신 건지, 그것마저 뜻이 있는 건지..”
이 형사는 자기 더벅머리를 탈탈 털며 답답한 듯 또 물었다.
“알아듣기 쉽게 좀 설명해 주라고, 어떻게 병원에 간 거냐고! cctv 보니까 지랄 염병하고 헤어졌더구먼, 혹시 너랑 싸우고 수련 씨가 나쁜 맘먹고 그런 건 아니지?”
지훈의 눈이 뾰족하게 현우를 들이받았다.
“수련이 그렇게 나약한 애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뭐라고 저 때문은.. 아니에요.. 아니죠, 저 때문에 그렇게 된 게 맞긴 하죠. 수련이가 술을 자제하지 못하고 마셨으니까요.”
“이거 수련 씨가 깨어나서 들으면 너무 굴욕적일 거 같은데? 그러니까 한 마디로 사고는 수련 씨의 아주 독특한 주사로 인해서 벌어진 거다? 수련 씨는 술이 꼭지가 돌게 마시면 자다 일어나서 몽유병 환자처럼 막 돌아다닌다?.”
기다란 손가락으로 이마의 주름을 펴며 복잡한 생각까지 펴내려는 듯 지훈의 표정은 심란하고 어지러웠다.
“이 형사님은 믿으니까 말씀드릴게요. 맞습니다. 지금 하신 얘기. 수련이 술 많이 마시면 자다 일어나서 자기도 모르는 곳을 헤매기도 해요.”
잠시 이 형사는 턱을 늘어뜨려 놓은 채 멍하니 지훈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수련이도 알고 있는 일이라 본인이 자제하려고 평소에는 노력합니다. 근데 그날은….”
이 형사가 허공에 손을 휘휘 저으며 잡생각을 떨치려는 듯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위험한 상황에 지키고 있었어야지! 그냥 갔어? 사내 새끼가?.”
“그럴 리가요. 가지 않았어요.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문 앞을 지켰어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수련 씨가 유령이라도 돼? 뜬눈으로 지키고 있었는데 왜 사라져?.”
“제가 바보같이 수련이가 들어간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수련이는 어느새 잠들고, 어느새 깨어나서 1층으로 뛰어나간 거예요. 전 그저 불길한 마음이 요동을 쳐서 확인하러 올라갔는데, 역시 없었어요. 그래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요. 운전하며 계속 수련이를 찾아다니다가 사고가 날뻔했어요. 누군가를 칠뻔했어요. 그때 들었던 생각이에요. 수련이도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사고가 날 수 있겠구나. 근처 병원 응급실에 전부 전화했어요. 수련이의 정보를 줬어요. 환자가 들어오면 연락해 달라고도 말했고, 어머님께도 어쩔 수 없이 올라와 달라고 말씀드린 거예요.”
현우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거 이렇게 들으니 그냥 다 때려 맞춘 거네? 너 사기꾼이지? 근데 처음에는 잡아먹을 듯이 반말 찍찍하더니 지금은 고분고분 존댓말이냐? 그건 뭐 내가 워낙 동안이라 반말했을 수도 있지. 너 앞으로 내가 지켜본다. 그 반반한 얼굴로 여자들한테 사기 쳐서.. ”
이 형사가 볼일 다 봤다는 듯 일어나려 한쪽 엉덩이를 들었다.
“그땐 장군 신이 들어오셔서…. 그분은 원래 그러셔요. 그리고 수련이가 형사님께 꼭 전해 달라는 말이 있어요. 그놈은 병원에 누워있는 놈이 아니고 멈추지도 않았데요. 솜사탕을 받은 아이가 또 희생될 거라고 형사님이 꼭 잡아달래요.”
털썩-
엉덩이를 들고 일어서려던 이 형사가 맥없이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구급차에서 전달받은 자기만 알고 있는 솜사탕을 받은 아이의 이야기. 솜사탕을 휘젓는 젓가락보다 더 복잡해진 머릿속을 단숨에 구겨 버리고 한 가지 질문만 던졌다.
“너 지금 수련 씨랑 대화할 수 있는 거야? 지금 여기가 그런 장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