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사람들
병원에서의 일촉즉발 상황은 이 형사가 수련의 어머니를 뜯어말리고 서연주를 급히 연행하면서 그렇게 마무리됐다.
강남 경찰서 강력계-
톱스타 정도는 아닐지라도 누구나 얼굴 정도는 아는 모델 서연주. 그녀가 피의자 신분으로 수갑을 차고앉아 있다. 모두가 힐끗힐끗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는 이 상황이 매우 불쾌하다는 듯 다리를 꼬고 비스듬히 앉아있다.
형식적인 진술서를 작성 중이던 이 형사. 본격적으로 물어봐야 할 것들을 묻기 시작한다.
“서연주 씨 지금부터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무표정을 넘어서 가소롭다는 듯이 서늘하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이고 그녀가 되물었다.
“뻔하지, 뭐, 왜 그랬냐고?.”
그러나 이 형사 역시 만만치 않게 썩은 미소로 화답하며 깍지를 낀 두 손위에 턱을 받치고 대답한다.
“뻔하지, 뭐, 왜 그랬는지는,”
빙긋 웃으며 놀리듯 그녀의 말투를 따라하는 이 형사의 대답에 서연주는 얼굴 가득 당혹스러움을 띄웠다.
그리고 장난은 이제 그만 이라는듯 이 형사가 날카롭고 묵직하게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서연주 씨, 누가 알려줬어요? 수련씨 사고 소식.”
연주는 연타를 맞은 데다가 만루홈런을 맞은 타자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런 그녀를 의식한 이 현우. 일부러 아무것도 아닌 서류를 뒤적뒤적하며 흘리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구급차 안에서도 나를 제일 먼저 찾았다던 수련씨 덕에 나야 당연한거고, 법적 보호자인 어머니 밖에 모르는 병원을 누가 알려줬을까? 그 신지훈이라는 녀석은 뭐 신기가 있다 칩시다. 근데 당신은 어떻게 왔냐고? 당신도 무당이야?.”
한쪽 눈만 치켜들어 그녀를 바라보는 이 형사의 입술은 확실히 한쪽 꼬리가 말려 올라가 비웃고 있었다.
“수련이 엄마한테도 말했듯이 지훈이 한테 들었어요. 저는 지훈이랑 계속 연락하니까. 자 이거 봐요. 통화 기록, 새벽에 제가 지훈이랑 통화했잖아요.”
연주가 슬쩍 내민 핸드폰을 이 형사가 덥석 움켜쥐었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통화 기록을 보더니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서연주는 들이밀었던 손을 비틀어 있는 힘껏 그에게서 핸드폰을 다시 뺏어왔다.
“하하하하하! 서연주 씨 혐의가 하나 더 추가 돼야겠는데? 이 정도면 스토킹이야. 전부 그쪽에서 걸었고 통화기록은? 그렇게 떳떳하다면 그 핸드폰 증거품으로 제시하시죠.”
혹 떼러 왔다가 붙인 격이 돼버린 연주는 궁지에 몰린 쥐처럼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 형사가 눈을 빛내며 완강하게 말했다.
“아니, 그 핸드폰 우리가 압수해야겠는데? 당신 지금까지 누구 지시 받아서 움직인 거야? 김수련이 아직 살아있으니 병원 가서 숨통 끊어놓으라고 누가 전화했을까? 그 통화 기록만 찾으면 되겠네.”
“그..그게 무슨, 내가 누구를? 이해가 되는 질문을 해야지. 그리고 내 핸드폰을 왜요? 절대 싫어요. 영장 가져오세요.”
이 형사의 미간이 짜증스럽게 좁혀들어갔다.
“남자 하나 때문에 살인자가 될 정도로 멍청하진 않은 거 같고. 당신 믿는 구석이 있지? 김수련 죽이라고 누가 시켰어?.”
서연주는 소름 끼치도록 간악한 미소로 이 형사를 깔아 보며 들은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여자 하나 때문에 형사 생활 접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은 거 같고, 이 형사님도 이제는 믿는 구석 하나쯤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마지막 말을 하고 왼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날렸다.
이 형사는 이토록 담대한 서연주의 태도에 패를 다 읽힌 듯 당황스러웠으나 애써 태연한 척 후배 형사에게 지시하고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넌 가서 서연주 핸드폰 압수 영장 받아와. 그럼 내가 다른 질문을 좀 하지. 아까 그 얘기 뭐지? 수련이 어머님이 팀장님을 사지로 몬 게 당신이라던데? 그 정돈 얘기해 줄 수 있잖아? 나는 당신 살인미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야. 어떻게 협조하느냐에 따라서 당신을 지옥 구덩이에서 꺼내줄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서연주는 망설이는 듯 고민하며 조용한 핸드폰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더니 짧게 한숨을 쉬고 얼굴을 돌려버렸다.
“그렇지, 당신은 버리는 카드야. 어차피 이렇게 쓰고 버릴 카드였다고. 게다가 수련 씨 죽이는것도 실패했잖아. 연락도 없지? 당신 뒷배.”
서연주는 눈을 내리깔고 차분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무슨 소설을 쓰시는지 모르겠지만 수련이 어머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거 같아요. 저를 찾아온 다음 날 수련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팀장님이 당신을? 왜? 원래 연락 하던 사이였어?.”
“원래 연락하던 사이라..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호호호! 연락하던 사이는 맞죠. 20년전부터. 쭉~은 아니고 20년 전에 한번,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저를 찾아온 게 다예요.”
“대체 당신이랑 무슨 대화를 나눴길래? 팀장님의 죽음이 당신과 연관 됐다고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거지?.”
“그때는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말해줬을 뿐이예요. 20년 전엔 말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하지 않았던 거고 그때는 말하고 싶어 죽겠는데 마침 찾아와줬길래 아는 대로, 사실대로 말해준 거뿐이라고요.”
이 형사는 말장난하듯 빙빙 꼬아 말하는 서연주가 짜증 나 미칠 지경이었다.
“당신이 대체 뭘 알고 있길래? 그게 뭔데? 대체 무슨 말을 했는데!.”
서연주는 역시나 연극 무대에 선 배우처럼 과장된 표정으로 비장하게 대답했다.
“20년전 사라진 다섯 명의 가출소년들... 에 대해서? 그리고 거짓말처럼 함께 사라진 그 소년들의 가족들에 대해서?.”
이 형사의 머리가 재빠르게 굴러가고 있던 그때 동료 형사가 급하게 뛰어와 이 형사의 귀에 무언가 속삭였다.
“뭐? 증거불충분? 김 형사랑 나, 둘 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었는데 풀어주라고?.”
“네, 그 김 형사가 자기는 나중에 들어가서 상황을 제대로 못 봤다고 한 모양인데요.”
이 형사가 울분에 차 책상 위에 주먹을 세게 내리치고 흩어져 있던 종이를 양손으로 구겨서 움켜쥐었다. 그대로 서연주의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서연주는 그런 이 형사의 얼굴에 수갑 찬 손목을 내밀며 약 올리듯 미소 지었다.
“젠장~~ 대체 누구길래? 여기까지 손을 쓴 거야? 이런 씨 빌어먹을!!!!.”
이 형사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소리 질렀다.
이 형사는 지훈의 신당을 찾는 길에 약국에 들렸다. 자양강장제 한 박스를 주문한 후 약사가 봉투에 상자를 담는 동안 시큰한 두 눈을 손가락으로 찔러대다 약사에게 말한다.
“저기, 이거보다 더 세고 비싸고 좋은 거로 하나만 주세요.”
투덜투덜하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약국을 나선 이 형사.
“뭐가 이렇게 비싸? 만원? 약발이 들어야 할텐데, 피곤해 죽겠네. 그놈은 발 뻗고 처 자고 있는거 아냐? 하유..그나저나 그 놈을 무슨 낯으로 보냐? 밥을 입에 떠줬는데도 뱉어 버렸으니..”
눈썹을 벅벅 긁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지훈의 신당 앞에 선 이 형사. 피곤하던 눈이 번쩍 뜨였다.
“이게 다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