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는 도토리 나무를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by Ello

오늘도 세계적인 정세와 기후변화를 바라보며 온갖 윤리적, 종교적, 인간적 생각들에 잠겨있다. 한 시도 평화로울 날 없는 신문과 영상매체에서는 늘 오늘의 사건 사고에 대해 끊임없이 소식을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옐로 저널리즘의 효과일까? 요즘 들어서는 오히려 그런 동시다발적인 사건들이 더 이상 내게 충격을 안겨주지 못하게 된 것 같다. 한 마디로,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왜 이렇게 무감각해진 것일까?


이것이 만약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내게 슬픈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애초에 나는 '어른이 되어간다'는 미래에 어떠한 핑크빛 기대도 걸지 있지 않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상태일까? 만약 그러하다면 이것은 일종의 '질병'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변명을 조금 보탠다면 이것은 질병이라기보다는 바쁜 일상과 사사로운 사회의 형식, 문화적인 관례들이 - 개인 일반의 가치가 높아져 개인주의에서 이기주의로 점점 진행되어가는 - 포스트모더니즘과 융합되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시대의 '증후군'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증후군을 앓고 있는 셈일지도 모른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 속칭 '어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과 내지는 청소년들까지도 - 핑크빛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의 미래이든, 이 '세상'이라고 이름 붙여진 거대한 수레바퀴의 미래이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꿈꾸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책임지는 작가가 되지 못하는 현실의 주인공이 되어서, 분량도 모르는 소설의 결말이 다가오기 전에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것을 먹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행복하지 않은가."


다람쥐는 도토리나무를 신경 쓰지 않는다. 곧 겨울이 오면 자신이 얼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용히 행복이라는 도토리들을 모아들여 따뜻하고 안전한 굴속에 머무를 뿐이다. 겨울이 오면 언제나 그랬듯이, 이 세상은 예상한 것보다 추울 것이기 때문이다.


다람쥐는 겨울에 굴속에서 봄을 맞는 꿈을 꾼다. 꽃이 펴내는 향기에 잠긴다. 나비가 춤추는 것을 보고, 꿀벌들이 바삐 비행하는 것을 듣는다.


길고 긴 겨울, 다람쥐가 가진 행복의 도토리가 다 떨어지고 났을 때가 걱정이다. 만약 그때가 온다면, 다람쥐는 또다시 긴 겨울이 지나가기를 멍하니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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