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집으로 발령 나다]

4. 아빠가 변화한다! 어떻게?

by 풍경소리

‘인내심, 공감능력 그리고 감정 표현이 달라진 아빠’

인내심, 그것은 바닥을 찍어야 아는 것 같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인내심은 정말 바닥을 찍어봐야 아는 것이구나.

첫째 아이의 기저귀를 떼기 위한 연습을 할 때였다. 처음에는 몇 번 가르쳐 주니 곧잘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잘하다가도 실수하면, 나도 모르게 다그쳤다. “아이고, 응가 냄새!” 하며 찡그린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가 커튼 뒤나 집안 구석에서 몰래 용변을 보게 되었다.

실수를 반복하는 아이를 보며 내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도 점점 소극적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육아 방송에서 한 마디가 떠올랐다.

“부모가 대신해 줄 수 없는 한 가지가 바로 용변 보는 일이다. 아이가 스스로 성공하며 느끼는 성취감이 중요하다.”

반성했다. 그리고 마음을 바꿨다. 실수를 할 때마다 다그쳤다면, 이제는 한 번이라도 덜 다그치기로. “괜찮아, 다시 해보자! “라고 다독여 주기로 했다.

그렇게 차츰 바꿔 나가자, 아이도 더 이상 숨지 않고 “아빠, 응가 마려워! “라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 아나운서 출신 이금희 작가님의 ‘우리, 편하게 말해요’ 책을 읽게 되었다.


거기서 60대 여자분의 사연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만학도로 공부가 잘 안 될 때 사연자분의 남편께서 콩나물시루를 비유해서 이야기하는 공감을 해줬는데, 참 와닿았다.


“여보, 콩나물시루에 물 줘봤죠? 물 주변에 어떻게 돼요? 얘가 물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모르게 쑥 빠져요.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 콩나물이 자라 있어요. 공부도 그런 거예요 할 때는 해도 해도 안 느는 것 같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거 같지만 결국은 콩나물이 쑥 자란 것처럼 실력도 쑥 느는 거예요”


이 말에 내 뒤통수가 뜨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육아는 콩나물시루 같다. 물을 주면 바로 변화가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콩나물이 쑥 자라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공감력 제로, “너 T발 C야?”

한때 MBTI가 유행했을 때, 이런 말이 있었다. “너 T발 C야?”

(T(사고형)인데, 공감력이 부족해서 C(감정형)처럼 행동하려 애쓰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나는 공감한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면 공감하지 않는 아빠였다.

예를 들어, 아이가 컵에 물을 쏟으면

“괜찮아? 놀랐지?” 보다는

“아유, 이거 얼른 닦아야지!”라는 반응이 먼저 나왔다.

그러다 보니 감성이 섬세한 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뒤늦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한 번은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아래층에 사는 아빠와 두 딸이 함께 타고 있었다. 그때 엘리베이터 광고판에 어떤 예능 프로그램 예고편이 나오자, 딸이 말했다.

“아빠, 저거 무서울 것 같아!”

그러자 아빠는

“그렇지? 저게 좀 무서울 것 같구나.”라고 딸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주었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넌지시 말했다.

“저렇게 공감 안 해주면, 나중에 딸이 아빠한테 서운하다고 잔소리할걸? 그리고 아들도 섬세하니까 공감 잘해줘야 해~”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다. 그런데 그 장면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나도 고쳐보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아들이 이불에 실수했을 때,

“아들, 소변 나오면 아빠한테 말해야지.”

라고 말한 뒤,

“소변 나와서 놀랐지? 괜찮아, 이제 옷 갈아입자.”라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마치 이중인격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다. 아이는 부모밖에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의 감정을 먼저 공감해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감정 표현에는 총량제가 없다

요즘 “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하지만 감정 표현에는 총량이 없다.

특히 둘째가 태어나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기가 어려도 부모의 표정과 말투를 보고 눈치를 본다는 사실을.

첫째가 어느 날 갑자기 말했다.

“아빠랑 자고 싶어.”

“아빠, 사랑해.”

예전에는 먼저 말하지 않던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먼저 표현해 주니, 아이도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되었다.

20대 때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이 사랑을 잘 주고 표현도 잘해.”

그때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는데, 지금은 온몸으로 공감한다.

아빠나 엄마가 아이에게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는다면, 아이도 언젠가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억누르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힘들고 귀찮아도, 감정 표현에는 총량제가 없다.

지금, 더 많이 표현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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