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새로운 업무 ‘전업아빠’의 시작
좌충우돌 양육자 되기!
이 부분은 앞서 쓴 내용과 일부 겹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내용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과거에는 가사와 육아의 주된 책임이 여성에게 있었다. 요즘은 남성의 참여도가 점점 늘고 있지만, ‘주양육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딸은 내게 또 다른 작고 소중한 생명체였다.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존재가 생긴 것이고, 아마도 딸의 입장에서는 “내가 선택한 부모는 아니지만, 이 사람들을 믿고 자라야겠지?“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내의 산욕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과거 교대근무를 했던 경험을 살려 신생아의 밤을 전담하기로 했다. 첫째 때는 교대근무를 하면서 비번 날 밤을 돌보고, 출근 전날 밤은 아내에게 맡기는 식이라 일정이 들쭉날쭉했다. 하지만 둘째는 다르게 하고 싶었다. 온전히 함께하고 싶었고, 그렇게 낮에는 함께 보고, 밤에는 내가 돌보는 방식으로 육아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아들에게도 신경을 썼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엄마를 빼앗겼다고 느끼지 않도록, 오히려 엄마와의 애착을 더 다질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다행히도 이 방법이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신생아는 먹고, 자고, 싸는 것이 전부라 그리 힘들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났을 때, 예상치 못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유 없이 우울했다.
“아, 이게 산후우울증? 아니면 육아우울증인가?”
그저 일시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며 넘기려 했지만, 점점 깊어졌다. 처음에는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내는 첫째 때 이미 육아 경험이 있었고, 지금도 힘들 텐데 괜히 징징거리는 것처럼 보일까 봐 주저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쌓이고 쌓여 결국 아내에게 예민하게 굴게 되었다.
어느 날, 아내와 작은 언쟁이 있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아내가 말했다.
“우리, 아이한테만 집중하다 보니까 서로 이야기조차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아. 힘드니까, 아기들 재우고 잠깐이라도 대화 좀 하자.”
처음에는 이마저도 귀찮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가 힘들어지는 건 ‘육아’ 때문이 아니라 ‘대화 부족’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아주 작은 이야기부터 나누기 시작했고, 점점 마음이 풀렸다.
그제야 첫째 때의 아내가 떠올랐다. 나는 교대근무를 하면서 육아를 함께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내는 내가 없는 시간 동안 전전긍긍하며 혼자 버텼을 것이다. 퇴근한 나도 피곤했고, 그런 내게 아내는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육아로 지치고,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는 상황에서 배우자까지 챙겨야 한다는 부담이 컸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지금 육아를 준비하거나, 육아 중인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혹시 독박육아를 하는 배우자가 있다면, 퇴근 후 먼저 이렇게 물어보자.
“오늘 아이 때문에 힘들었던 부분 있어?”
“오늘 아이와 함께하면서 좋았던 건 뭐였어?”
이렇게 감정을 나누면, 휴대전화 메시지로는 전달할 수 없는 감정이 해소될 수 있다. 그리고 부부 사이도 더 단단해질 것이다.
매일은 어렵더라도, 일주일에 두세 번이라도 20~30분씩 시간을 내어 대화를 나눠 보길 권한다.
그렇게 나의 우울감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을 무렵, 둘째 딸도 신생아 시기를 졸업했다. 이제 딸은 내 왼팔 같은 존재가 되었다. 울면 안고, 재울 때도 안고… 그렇게 딸과의 시간이 깊어질수록 내 손목, 어깨, 목이 점점 상하기 시작했다.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육아는 엄마만의 영역이 아니다.”
나는 원래 집안일을 좋아하는 편이다. 요리도 결혼 전부터 즐겨 했고, 결혼 후에도 아내와 함께했지만 자연스럽게 내가 더 많이 하게 됐다. 아이 돌보는 일은 아직 부족하지만,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다.
성경 창세기 2장 22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서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아담에게 데려오셨다.”
어쩌면 여성은 남성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아닐까? 육아를 하면서 아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왜 여성들이 육아에 더 능숙한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그러던 중, KBS 다큐멘터리 ‘시사기획 창 – 어머니의 된장국: 가사노동 해방일지’ 를 보게 됐다.
[시사기획 창] 어머니의 된장국 : 가사노동 해방일지
뉴스내용 중
'어머니의 된장국'을 싫어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맛있는 된장국을 끓이고, 집안을 깨끗이 정리하며 가족을 살뜰히 돌보는 가사노동. 통계청 조사를 보면 이 노동은 여성이 남성보다 3배 더 많이 하고, 맞벌이 부부여도 그 격차는 줄지 않았다. 그런데 정부 통계는 가사노동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가사노동...
(출처 : KBS)
여기서 ‘기획노동’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단순히 요리나 청소 같은 가사노동뿐 아니라, 가족과의 시간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일. 예를 들면, 아이의 어린이집을 어디로 보낼지, 가족 일정은 어떻게 조정할지 등을 고민하는 것이 ‘기획노동’이라는 것이다.
이 방송을 보고 나니 아내가 늘 휴대전화로 뭘 검색하고, 분주하게 무언가를 챙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방송을 본 후, 아내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이 방송을 봤는데, 당신이 얼마나 많은 걸 고민하고 신경 쓰는지 이제야 알겠어. 그동안 몰라줘서 미안하고, 정말 고마워.”
이 말을 전한 뒤, 우리는 더욱 서로를 배려하게 됐다. 결혼 초반처럼, 아니 그보다 더 자연스럽게 서로의 강점을 살려 도우며 지내고 있다.
육아를 하면서, 나는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주양육자’라는 역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깊이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