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 자녀에게도 유연적으로 적용했으면
며칠 전 인사발령 공문을 보니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육아휴직자만 4명 담긴 공문이었는데, 불과 6~7년 전만 해도 육아휴직을 낸다는 것이 녹록지 않았다. 육아휴직을 내려면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어야만 했고, 도저히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에 대해 간곡히 이해를 구해야 했다. 공문도 쉬쉬하며 본인에게만 주어서 육아휴직의 확산을 막아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육아휴직을 내는 본인도 비교적 당당하고 경제적인 손해도 줄었다.
육아휴직을 내는 시간도 말 꺼내기 어려워 한꺼번에 1년을 내는 것이 아니라 6개월, 3개월 등 분할하기도 쉬워졌다. 복직에 대한 걱정도 줄었다. 대부분 본인의 예전 업무로 복귀하고 있다. 나는 육아휴직을 다시 한번 생각하라고 했던 상사의 회유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지금도 고생하고 있지만 말이다. 전혀 해보지 않은 분야의 일을 하는 데다 얼마간이지만 수도권 인근으로 회사를 다녀야 했었다.
육아휴직 환경은 저출생과 맞물려 나날이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비단 초등학교의 일만은 아니다. 물리적으로 초등학생들이야 챙겨줘야 할 것이 많지만 중고등학생이라고 해서 부모의 손길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때문에 결국은 퇴사한 어떤 분은 장기간 격지생활로 아이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공부 잘하고 부모말도 잘 듣던 아이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던 것을. 물리적으로 떨어진 거리에서 그저 잘 자라줄 줄 알았던 아이는 자해하고 급기야 학교까지 자퇴했다는 것이다.
"난 내가 좋은 부모인 줄 알았어요"라며 자조적으로 쏟아내는 가슴 아픈 사연에 중고등학생들도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중고등학교로 진학하면 학업에 대한 부담으로 되레 심리적, 정서적인 부모의 서포트가 더 필요할 수 있는데 근무시간 단축 등의 논의조차 없는 것이 아쉽다.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육아휴직 제도는 부모들에게 아이와 더욱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임이 분명하다. 더 나아가 아이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며 함께 할 수 있는 기쁨을 준다는 점에서도 매우 바람직하다. 단순히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어린아이를 돌본다는 인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는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제도로 탈바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