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 이진민 지음, 동양북스> 읽고
한 단어 속에 든 너른 세상을 볼 수 있는 책 결국은 삶과 인생에 관한 책이 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바람처럼 이 책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내 삶을 어루만졌다.
책에 등장하는 단어들 중 가장 처음 등장하는 말이자, 단순한 휴식을 너머 선 저녁의 의미. 파이어아벤트. 독일어로 하루 일을 마감할 때 쓰는 명사다.
저녁의 의미가 이렇게 대단하고 다정한 것이었는지 왜 몰랐을까. 여름철을 제외하고는 어둠이 걷히면 출근하고 어둠이 내리면 퇴근하는 직장인의 삶은 갑갑하다. 집에 돌아오면 씻고 잠들기 바쁘다.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아이까지 돌보다 보면 나를 돌볼 시간은 턱없이 모자란다. 그러니 워킹맘에게 퇴근은 또 다른 야근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래, 저녁은 저녁이어야 했다. 그 시간이 되면 또 다른 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다정해져야 하고, 가장 따뜻해야 한다.
"저녁은 고단함을 어루만져 주는 시간, 우리가 가장 다정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25쪽)
"저물녘에 우리는 가장 다정해진다/ 저물녘에 나뭇잎들은 가장 따뜻해지고 / 저물녘에 물 위의 집들은 가장 따뜻한 불을 켜기 시작한다"(강은교, <저물녘의 노래> 중에서)
"사라져 가는 태양의 빛줄기가 쇠락한 골목과 남루한 벽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풍경을 보았다. 마치 검버섯 핀 노인의 얼굴을 쓰다듬듯이. 그러면 그 손길을 따라, 동네는 쪽잠을 청하는 고단한 노인처럼 주름이 깊게 팬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 해가 지고 나면 대기에 남아 있던 온기도 노인의 마지막 숨결처럼 느리게 흩어져갔다."(백수린, <고요한 시간>중에서)
현실은 그럴 수 없을지 몰라도 저녁의 의미를 담은 이 문장들을 마음에 담고 입술에 올려보면 저녁에 온기가 느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책을 통해 진정한 저녁을 음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