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지망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얼마 전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섰다.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직원들은 인사 발령의 공포 내지 걱정에 휩싸인다. 올해는 아마 전년도 결산이 마무리되는 2월 말, 대규모 인사 발령이 예상되고 있다.
얼마 전 과장급 이상은 희망부서를 적어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1 지망부터 3 지망까지 적어서 인사담당자에게 메일로 제출하라는 것인데 어느 누구도 희망부서에 근무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는 눈치다. 집행부가 공정한 인사를 했다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수단쯤으로 의심하고 있다.
나도 의미 없다 생각하고는 있지만 희망부서를 적지 않았을 때 생길 불이익이 싫어 꾸역꾸역 적어냈다. 적는 순간 현재의 나를 돌아보았다. 그동안 내 커리어 정체성의 중심에는 '홍보'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내가 한 번도 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적성에도 안 맞는 일임은 분명하다. 한 달 동안의 수입금액을 정산하고, 조직에 목표달성을 독려하는 일인데 적응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고, 자존심도 너덜너덜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 지망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적었다. 좋아서가 아니라 익숙하다는 이유였다. 같이 일하는 부서원들과의 끈끈함도 있었고 변화가 싫었다. 무언가를 적응하는 것에 대한 공포도 상당히 작용했다. 물론 2 지망에는 '홍보'라고 적어냈지만 내가 '홍보'쪽 일을 다시 하게 될 지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는 것이 사실이고, 내가 일할 때와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희망 부서를 적어낸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냥 자기가 가고 싶은 부서를 1 지망부터 3 지망까지 동일하게 적어낸 경우가 많았다. 나만 순진했던 것인지.
이렇게 제출받은 희망 부서는 어떤 식으로 반영이 될지, 아니면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인사 발령으로 인한 상처를 몇 번 받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 회사에 홍보일을 하기로 하고 입사했는데 다른 일을 시킨다면 군말 없이 그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내가 입사할 때와는 다른 업무라면 본인의 적성이나 역량이 고려되어야 하는 데 뭐든 인사권자의 맘대로 라면 사실상 '노예'아닌가 하는. 진짜 이런 부분은 노동자의 권리차원에서 형식적인 문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현실은 어차피 인사권자가 정하는 대로 인사발령이 날 것이다. 적응을 하면 다니는 것이고, 적응하지 못하면 퇴사하면 된다. 퇴사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니 죽는소리하면서 적응하며 다니겠지만, 씁쓸하다.
언젠가부터 이런 말을 자주 되뇐다. 모든 것에는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내 경우 거의 20년간 인사발령 없이 일하다 보니 인사발령이 여러 차례 있었던 직원에 비해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 담담히 마음을 비울 수밖에. 회사가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나 스스로 찾으면 된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데 그게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