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주고 나눠주어도 갈길이 먼 미니멀라이프
6월 30일 원래 살던 곳에서 길 건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12년간 살던 곳이라 잔 짐들과 묵은 짐들이 너무 많았다. 이사를 오기 전 안 보는 책들은 당근을 통해 나눠주기고 하고, 안 쓰는 물건도 일부 팔기는 했지만 거의 나눠주었다. 그냥 버리기에는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고, 누군가 필요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이사를 하고 나니 부엌과 신발장이 제일 빨리 마무리가 되고, 옷장이랑 책들은 갈 곳을 몰라 거실바닥에 나뒹굴었다. 특히 책은 책장을 이사당일 설치할 예정이라 바닥에 놓아달라고만 했는데 거실을 가득 메울 정도로 양이 어마어마했다.
"이 집 사시는 분 책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작가세요?" 이사업체 분이 묻는다.
"작가 준비생입니다" 빨리 남편이 거든다.
너무 먼 얘기인데 내 책의 무게가 약간의 정당성을 부여받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너무 많은 책들, 내가 이렇게 수십 년 모아 온 책들이 천덕꾸러기처럼 거실바닥을 가득 메우자 정말 울고 싶을 정도였다.
이사당일 책장 작업이 필요해서 바닥 공간을 비워달라는 가구업체의 주문대로 바닥공간을 일부 확보하고 기다리려니 의외의 복병이 숨어있었다. 세 개가 나란히 놓인 하얀 거실장을 옮기려니 한 개가 움직이지 않는다. 억지로 들어보니 하얀 거실장 밑에 숨어 있는 보일러 장비들. 앞서 살다 간 사람은 이것을 장식장으로 잘 가려서 마치 그냥 가구만 놓여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싱크대 밑에 보일러 장비가 없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던데 그게 여기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책장을 배달 오신 설치기사분은 부분 취소가 불가하다며, 연기로 변경해 놓겠다고 하며 돌아가셨다. 다음날 연차를 쓰며 열심히 책을 정리해 보겠다는 나의 야무진 다짐이 수포로 돌아갔고 그득그득한 거실에 책들은 무한정 대기하고 있었다.
거실에 가득 쌓인 책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욕심 많은 내가 원망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가지려고 발버둥 친 내가 가여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자든 후자든 나를 편안히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얼마가 걸릴지 모르지만,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이사오기 전 버렸던 것보다 이사 오고 나서 더 많이 버려야 할 것 같다. 당장 몇 년간 읽지 않을 책들을 정리해야 할 듯하다.
이제 진짜 마음먹어야 할 때다. 미니멀라이프에 발을 담궈야 한다. 사람답게 숨 쉬며 여유롭게살아보기로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