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처음 살게 된 판자촌의 기억이 떠오르다
필사를 하다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돌이켜보면 난 집에 한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집에 관한 가장 슬픈 이야기의 시작은 서울에 이사 오면서입니다.
국민학교 5학년 가을, 뉴스에서나 듣던 무시무시한 서울로 이사 오면서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지나가다 보면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사람이 많은 곳. 한강을 건너면서 버스 안에서 본 서울의 모습은 어마어마하게 반짝이는 보석과 같았습니다. 서울은 빛났지만, 저는 참 작았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제모습은 어땠을까요. 오래전 앨범을 들추다 우연히 보니 머리도 잘 자르지 않아 마냥 길기만 한 머리로 웃음기 없는 얼굴이었어요. 세련된 서울 아이들 틈에 주눅이 들어 친구도 잘 사귀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의 아이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아이는 꼭 있기 마련입니다. 저란 아이는 어디에 사나 궁금했는지 몰래 따라오던 같은 반 친구에게 저의 집의 위치를 들키기도 했습니다.
"너, 여기 사는구나"
그 아이는 악의는 없었어요. 그저 그랬다고 말을 할 뿐이었죠. 하지만 저는 몹시 창피해 반갑게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음" 무거운 인정 후에 그 친구에게 들켜버린 것에 대해 신경이 쓰였던 것 같아요. 소문을 낼까 봐는 아니고 굳이 알아냈어야 하는 가 하는 그런 작은 원망 같은 것이었어요.
나이가 어려 집에 대한 요구사항이 크지 않았지만, 우리 집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었으니까요.
이전에 살던 집에 대한 기억만 했지, 청소년기 아동기를 보냈던 집에 대한 기억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그 집에 대해 얘기해 봐야지 하는 생각을 못해본 건 왜인지 그게 더 이상하게 생각되더라고요. 아마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어서 저도 모르게 억누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12살의 나는 판잣집에 살고 있었고, 17살의 나는 그것보다 조금 더 좋은 집. 아니 무허가는 아닌 허가를 받은 집. 20살의 나는 신도시 건설에 힘입어 부모님의 자가인 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몇 번의 이사 후 가장 최근에 이사한 집이 제가 지금껏 살아본 집중에 제일 좋은 집인 것은 맞습니다. 점점 더 좋아지고 있으니 저는 지금까지 다행스럽게 살아온 셈입니다.
앞으로 또 어떤 집을 만날지 알 수 없지만, 친구에게 집을 들킨 그 소녀가 문득 떠오르겠지요. 그 소녀에게 좀 더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그때의 마음을 좀 더 들려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