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타자기에 미쳤던 시간

California Typewriter K-version

by 밍님

작년 름 나는 다큐 영화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에 대한 리뷰를 남겼었다.

https://brunch.co.kr/@ming/68



타자기에 빠져 수집을 시작했을 무렵 이 영화를 알게 되어 혼자 봤다가 너무 감동한 나머지 타자기 카페 회원 한 분을 초대해 같이 시청하기도 했었다.





언젠가 타자기 사용자 모임이라는 우리 카페의 전국 모임을 꿈꾸면서 글을 마무리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났다!!!!!!

타자기를 처음 샀던 2020년 11월부터 이런 만남을 고대해 왔는데! 정모 날짜가 정해진 이후 나는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작년에 랜선 타이핑 대회를 주최해 주셨던 '닉스'님과 '아무튼, 타자기'라는 브런치북을 연재하며 작가로도 활동 중이신 '레뜨로핏'님께서 제1회 정모에 힘써주셨다.


레뜨로핏 Rettrofit작가의 브런치

https://brunch.co.kr/brunchbook/amuteuntajagi


정모 당일!

용인으로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요일이었다.

운전 못하는 나는 버스->지하철-> 광역버스를 갈아타고 출근했었는데 그날은 저 캐리어에 타자기 두 대를 넣어 가져갔다. 안타깝게도 비까지 내려서 출근길은 매우 고된 편이었다. 왼손에 우산 오른쪽 어깨에는 가방, 손으로는 타자기가 든 캐리어를 끌고 이른 새벽에 나서는 나를 보고 남편이 혀를 끌끌 찼다 "너도 참 대단하다..."

나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그토록 원하던 모임을 하게 되었으니 즐길 준비를 했을 뿐이다.


일하는 내내 설렘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만남은 4시부터 8시까지였는데 나는 5시 퇴근 후 버스 2번 갈아타고 가면 면 6시 20분이 넘을터였다. 조금 늦어져도 괜찮다!! 버스 타고 가는 그 시간도 나는 정모만 생각하고 있으니 함께하는 것과 진배없다.


17명이 타자기 최소 2대~5대 정도를 챙겨 왔다. 서로 타자기 수리 노하우를 나누기도 하고 내가 사용해 본 적 없는 타자기를 타이핑해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음악이 흐르고 타자기 치는 소리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소리, 우리나라 타자기 수리 일인자 '안 선생님' 께서 회원들 타자기의 손봐주고 계시고... 몇 년간 랜선에서만 만나던 분들과 처음 만났을 뿐인데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타자기 이야기만으로도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나도 다른 회원님이 가져온 타자기를 타이핑해본다.



참석하시는 많은 분들이 같이 나눌 무언가를 준비해 오셨다. 나는 미리 준비하지 못해 종이를 좀 챙겨갔을 뿐인데 받아온 선물들은 정성이 넘쳤다.

타자기용 지우개!! 연필심처럼 생긴 부분을 오타난 종이에 마찰시키면 종이가 얇게 깎이는 방식인 것 같다. 뒤에 있는 솔로 먼지가 된 종이를 쓸어낸다.

케이스에서 빼놓은 타자기 위에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올려두는 천을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 주셨다. 실크스크린 판화인데 너무 멋져서 청말띠 딸아이 방에 패브릭 포스터로 장식해 두었다.


우리 카페에 문화, 예술계에 종사하시는 분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인 회원님께서 시집 선물도 해주셨다. 바로 사인도 부탁드렸지!!



'닉스'님께서 만들어주신 이름표와 발렌타인 타자기가 인쇄된 카세트테이프! 아날로그 음악 듣기 취미가 있는 내게 너무나 유용한 굿즈! 카세트테이프 녹음이 가능한 프로버전 워크맨과 데크가 내 방에 준비되어 있다. 내가 좋아했던, 타자기가 나와서 나를 울고 웃게 한 영화들 ost를 녹음해보고 싶다. 녹음하지 않아도 타자기와 카세트테이프의 조합은 그 자체로 멋진 굿즈다.


13년 전 꽃 배울 때 이름만 먼저 지어둔 내 꽃집 "Come on Spring" 굿즈도 회원님이 만들어 주셨다! 진짜 나중에 차리고 싶네!

선물 받은 비틀스 카세트테이프!! '주드'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곳도 있는데 Hey Jude가 있어서 너무 좋다!

대여했던 곳에 있었던 레고 타자기! 우리의 만남에 정말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2017년 타자기를 구입한 어느 청년이 타자기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서 만든 카페. 한 동안 블로그처럼 혼자 글 올리던 공간에 한 명, 두 명 회원이 늘어나더니 지금은 2400명이 되었다. 활동하는 분은 10분의 1도 안되지만 활동하지 않는 분들도 타자기에 대해 궁금해하고 더 알고 싶어 져서 가입했던 거겠지?


나의 경우 코로나로 힘들었을 때 타자기를 통해 새로운 재미를 알았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꿈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같이 활동해 준, 타자기에 미쳐있던 그 사람들이 랜선 뒤 어디엔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던 시간이 있었다.


타자기 사용자 모임.

무조건 아날로그 시대로의 회귀를 바라는 마음에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잠깐의 유행도 아니다. 타자기를 사용하며 즐거워 하는 우리들 유전자에 박힌 취향일 뿐이다. 함께 미칠 수 있어서 행복한 우리의 멋진 만남이 앞으로도 지속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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