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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님 Jun 19. 2024

8. 브레이크가 없다 1

타자기 수집에 불타오르던 2022년

오랜 로망이었던 타자기를 갖게 되어 그저 좋았던 2020년 가을, 그리고 매일 크로바 7시리즈 타자기를 치며 행복했던 2021년을 지나 타자기 생활 3년 차인 2022년.  


발렌타인 타자기와 필기체 타자기를 직구한 이후, 나는 평범한 주부에서 타자기 덕후 수집가로 변신했다.


일어나자마자 당근마켓, 중고나라에 새로운 타자기 매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ebay와 etsy도 검색하기 시작했다.


수납하기 편한 작은 사이즈에 예쁘고 소장가치를 가진 희귀한 타자기들이 매일 눈에 들어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2022년. 브레이크를 잃어버린 내가 구입한 타자기는 14대 쯤..


모두 내가 원하던 조건 그대로의 타자기들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후회는 없다. 이 시기에 열렬하게 타자기를 (혹은 타자기 수집 자체를) 사랑했으므로 지금은 그저 나의 공간에 내 아름다운 타자기들이 있고 언제든지 나의 문장들을 타이핑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즐긴다.


1. Airmail 타자기

(일본에서 나온 토이타자기, 활자까지 플라스틱이라서 실제 타이핑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장식용에 가깝다. 그래도 엄연히 타자기라서 귀엽게 타이핑된다.)


2. Hermes baby



어느 날 출근했더니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큰 상자


뜯어보니 etsy라는 사이트에서 자주 보았던 판매자의 로고가 보였다.  지난번 필기체 타자기를 직구하면서 계속 후보군에 두었었던 Hermes사의 baby라는 모델이다.




게다가  이 타자기는 필기체! 내가 직구한 Olivetti lettera 32 필기체와 제일 큰 다른 점은 대문자 E의 모양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선물은... 나에게 온 게 맞았다. 직장 상사분이 작은 고마움을 표시하셨다는데 내 기준 남에게 줄 수 없는 금액의 선물이라 몇 번을 거절했지만 더는 거절할 수가 없어서 이 타자기의 가치를 잘 아는 내가 보관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본인을 위한 작은 시간적 여유도 없는 워킹맘인 상사분이 내게 줄 선물을 위해 백화점 선물포장 코너까지 일부러 들렸다는 부분에 더욱 감사했다.


너무나 꿈만 같던 아름다운 선물에 하루종일 가슴이 떨렸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했던 그날의 기분과 함께 포장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역시 제일 첫 타이핑은 쇼생크 탈출 앤디의 편지





3. Olivetti Lettera 32 4벌식 한글타자기


Lettera 32 필기체 타자기를 직구해서 써본 후 나는 이 한글타자기를 찾기 위해 온갖 알람을 걸었었다. 우아하고 질리지 않는 색상에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디자인. 철제 외형의 작은 한글타자기는 올리베티 레테라 32가 최고인 것 같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레트로케이' 인스타에서 이 타자기를 보았지만 내가 생각하던 가격보다 비싸서 멈칫했고 그 짧은 시간에 팔려서 아쉬웠지만 그 구매자가 타자기 사용에 관심이 적어져 팔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같은 가격에 내가 구매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다 이뤘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의 타자기 수집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수집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불타오르게 되었다.


마침 아르바이트비를 모아서 만든 적금이 만기 되었다. 샤넬가방 대신 아름다운 타자기가 눈에 들어왔다.  멋진 타자기는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구입하기 힘든 것도 있다. 그러므로 명품 가방 구입하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으며 아이들에게도 나중에 똑같이 나눠주겠다고 이야기했다.


애들은 필요 없지 않을까?


글쎄....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물건들에게 남다른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타자기를 치지 않더라도  후에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게 판매할 수는 있겠지. 내가 구입한 가격 대비 저렴하게 판다해도 괜찮다. 타자기를 소장하는 동안 나는 이 타자기들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사랑했으며 그 과정들을 나의 아이들이 다 알고 함께 했기때문에 아깝지 않다.


굳이 간직하지 않아도 좋다.  타자기를 치고 열심히 모았던 엄마를 기억해주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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