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는 두 개

부모는 나를 낳고, 아이는 나를 기른다.

by 밍짱

어느 날 내게 씨앗이 심어졌어요.

모두 내게 축하한다고 얘기해요.

그런데 내 몸은 조금 이상해요.

어제는 맛있었던 밥이 오늘은 울렁거려서 먹을 수가 없어요.

어제는 너무 재밌던 운동이 오늘은 너무 힘들어요.

내 몸은 이렇게 변해가는데

모두 내게 축하한다고 얘기해요.

나는 자꾸만 변해가는 내 몸이 무섭고 걱정돼요.

어제는 날씬했던 내 배가 오늘은 점점 커지고 있어요.

이러다 터지는 건 아닐까요?

어느 날 커져 버린 내 배가 폭발하고, 그 속에서 외계인이 나오는 건 아닌지 무섭고 걱정돼요.

그래도 내게 모두 축하한다고 얘기해요.

이제는 서 있는 것도, 앉아있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물을 마시고, 양말을 신는 것도, 허리를 숙이고 양말을 신고, 발톱을 깎는 일도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이 되었어요.

나는 변한 내 몸이 무섭고 걱정돼요.

커다랗게 부푼 내 배는 작아질 수 있을까요?

어제도 오늘도 공포 영화 같은 꿈을 꾸다 깼는데

오늘은 어제와 다른 것 같아요!

내 배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아요!

나는 공포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힘껏 도망치다

도저히 힘을 내지 못할 무렵 내 안에 씨앗을 만났어요.

10달 내내 무섭고 걱정됐던 씨앗은 외계인이 아닌

작고 귀여운 아기였어요.

이렇게 작고 귀여운 아기인 줄 알았다면 무서워하지도 걱정하지도 말 걸 그랬나 봐요.

(작업 중인 동화책 내용입니다.)

이렇듯 모두가 축하해 주고 기대하는 나의 임신은 생각보다 너무 힘들고, 무섭고 두려운 나날이었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몸도 싫고, 걱정이랍시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알려주는 지인들도 싫었다.

내게 임신은 귀여운 아기에 대한 기대감보다 사람들의 ‘일 줄여라’ ‘일찍 자라’ ‘술 마시지 마’‘차 오래 타지 말’ ‘다이빙하지 마’ 등등 온통 하지 마 투성이었다.

자유 영혼의 프리스타일을 고수하던 내게 모두 기다렸다는 듯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46kg 몸무게를 넘지 않고 살아온 지 31년 만에 처음으로 50kg을 돌파한 내 모습이 너무 꼴 보기 싫고, 불쑥 나온 배는 왠지 자랑스럽지 않았다.

평소 아기와 아이들을 좋아해서 친구 아이들을 m이모 홀릭에 빠트리는 나였는데 내 몸속에 내 아이는 왜 사랑스럽지 않은 걸까.

임산부 티가 나면서부터 내 호칭은 ‘조니 뎁 어머니’로 바뀌었다.

“헐!! 나보고 어머니래!!”

비슷한 시기 임신한 친구들이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사랑스러운 꿈을 꿀 때, 나는 “으악 징그러워. 움직여!! 에일리언이 들어와 있는 기분이야”라고 하면서도 한편 보이지 않는 아이가 잘못될까 봐 참 무서웠다.

그렇게 출산일이 다가오자 임신한 친구들은 자연주의 출산과 모유 수유의 중요성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고 역시나 나는 듣기도 싫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당장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미리 선을 긋고 싶지 않기 때문이랄까? 나는 뭐든지 눈앞에서 당장 일어나는 것들을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편이라 미리 출산 준비도 육아 준비도 하지 않았다. 아이 얼굴을 보고 그에 어울리는 이름과 용품으로 육아를 시작하고 싶었다.

대신 나는 내 일을 즐겼고, 아이가 태어나면 운동부터 하리라 하고 헬스장을 등록해 놓고, 출산과 동시에 일터에 복귀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짜 놓고, 아이가 태어나면 함께 다닐 여행지를 엄선해 놓았다. 이런 나를 대부분 일반적인 임산부 모습과 다르게 행동해서 이해할 수 없다 했지만, h는 달랐다.

“될 수 있으면 수술로 낳아라. 너 낳고 내가 두 시간을 기절했었어. 요즘처럼 의학이 발달한 시대에 고생할 필요 없다. 모유 수유하지 말고 분유 먹여. 너랑 k는 모유 먹고 컸는데도 병치레하고 키도 안 크더라. 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해”사춘기 이후 아군과 적군을 아슬아슬하게 오고 갔던 h와 나는 이렇게 나의 임신과 출산, 육아로 한편이 되었다.

출산 후 7일간의 입원 끝에 퇴원을 했고, 자영업자의 비애로 미리 짜 놓은 스케줄에 맞춰 바로 카페 일에 복귀했다. 자연스럽게 h와 나는 육아 동지가 되어 h는 수십 년 전 m과 k를 키웠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아이들 돌보고, 나는 임신해서 그 많은 화가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게 세상에서 내 아이만 보이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돌아보니 나는 임신 시절 청개구리 심보였던 것 같고, 준비 없이 내게 닥친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신체의 변화에 맞춰 머리와 마음이 움직였더라면 덜 힘들었을까 싶다.

아기를 낳고 나니 평화로운 임신기간을 즐겼던 친구들과 내 상황은 역전되었다.

평소 잠이 없는 나는 아이를 키우기에 최적화된 조건을 갖고 있었다. 영아 기와 유아기에 엄마가 잠이 없는 것만큼 최고의 무기가 없다. 또 상황에 맞게 대처를 잘하는 스타일이라 출산과 육아가 처음이었지만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운 경험이 있는 c는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어르고 달래는 일이 아주 어렵지 않았다.

나와 생각이 다른 잔소리쟁이들은 출산 후에도 여전히 참견했지만,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여러모로 의견이 잘 맞아서 초보 엄마 아빠 답지 않게 50일이 채 안 된 아이와 여행도 잘 다니면서 무탈하게 아이를 9살까지 키워냈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항상 의견이 잘 맞아 싸울 일이 전혀 없던 건 아니고, z가 4살, i가 2살 무렵 우리는 서로 ‘내 안의 악마’를 불쑥불쑥 꺼내고, 넣기를 반복하면서 너와 내가 아닌 가족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팔이 부러진 h는 처음으로 결혼 한 딸 집에 머물게 되었다.

10년 만에 같은 집에서 먹고, 자고, 씻는 일상생활을 하는데 역할이 바뀌었다.

팔이 다치기 전만 해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가 서른을 훌쩍 넘어서도 아이처럼 보살펴 주던 h였는데 이젠 내가 h를 씻기고, 먹이고, 병원에선 보호자가 되었다. 아프고 불편하면서도 여전히 본인 몸보다는 딸 걱정이 많은 엄마가 안쓰럽기도 하고 왠지 짜증 나기도 하는 이상한 마음이 왔다 갔다하길5일째 되던 날 생각지도 않게 z 학교 선생님께 메시지가 왔다.

어머님, z가 받아쓰기 시간에 공책에 이런 내용을 썼습니다.

"ㅇㅇㅇ(선생님 이름) 바보 멍청이 새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얼굴은 달아오르고, 아픈 엄마도 운전 중인 차도 버리고 당장 z를 만나면 뭐부터 물을지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이는 선생님이 이 사실을 말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만나자마자

"엄마 나 받아쓰기 백 점 받았어"라고 해맑은 자랑을 늘어놓는다. 치솟는 궁금증과 화를 누르고 침착한 목소리로 "z야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 그게..”

머뭇거리는 z에게 완전한 답변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은 선생님께 연락이 왔어. z가 받아쓰기 시간에 선생님 욕을 썼다며… 왜 그런 거야?”

“그냥 갑자기 써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

“선생님한테 혼났어?”

“아니”

“선생님이 z에게 안 좋게 대해?”

“아니”z와 대화를 나누면서 선생님과 메시지도 주고받았다.

‘선생님 당황스럽고 속상하셨겠어요, 그런데 제가 아이를 처음 키워 보는 거라 몰라서 그런데 아이들이 이런 경우가 종종 있나요? Z가 왜 그랬다고 하던가요?’

선생님은 저학년이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했으나, z가 사과했으니 괜찮다고, 조금 더 지켜보자 했지만 엄마인 나는 혹시라도 아이 마음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하고 바로 심리 상담을 예약했다.

그리고 곧바로 우려했던 것들에 화를 보태서 유튜브 시청과 핸드폰 게임 금지령을 내렸다.

화는 치솟지만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혹시라도 아이가 심리 상담하러 간다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z야 엄마랑 z 그림 그려서 마음이 어떤지 알려주는 선생님 만나러 가 볼래?"

상담을 앞둔 며칠 동안 아픈 엄마 걱정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리고, 도무지 우리 착한 아이 마음이 왜 이렇게 됐을까만 몰두했다.

이 와중에 우리 h는 바쁘고 힘든 딸 걱정에 손주 걱정까지 플러스되선 “다 괜찮을 거야.”라며 내게 하는 위로인지 본인에게 하는 위로인지 모를 위로를 건넨다.

그렇지만 난 지금 엄마의 위로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화만 난다.

유튜브가 문제였을까? 게임? 요즘 만화를 뭘 봤더라?

오만가지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안고 다음날 예약해둔 상담 센터를 방문했다.

아이와 함께 그림을 완성하고, 몇 가지 아이 혼자 그림을 그리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사의 소견을 듣게 됐다.

"동생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고요, 엄마와는 소통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혼자 하는 것을 즐기는 성향이라 단체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12주 과정의 프로그램을 신청하시고..... 어쩌고 저쩌고...."

진지하게 듣다가 12주 과정을 등록하시라는 멘트에 없던 정신이 잠깐 돌아온 건지 ‘아, 영업이구나’ 싶었다. 낚이지 말아야지 속으로 되 뇌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아! 네..!! 아빠와 상의 후 연락드리겠습니다.”상담을 마치면 궁금했던 퍼즐 조각이 맞춰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의문만 생겼다. 가족들과 원만하고 엄마와 소통이 잘 되고 있다면, 문제없는 거 아닐까 싶고 동생과 학교생활의 스트레스는 없을 수 없지 싶었다. 다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과 대화를 시도해 본다.

“엄마 선생님이 뭐래?”

“응 스트레가 있데, z가 i 성격이랑 안 맞아서 좀 힘들었나 봐”

"엄마, 사실은 내가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나 온 형 따라 해 본 거였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응?”

“받아쓰기 시간에 그렇게 쓴 거 금쪽같은 내 새끼에 학교에서 소리 지르고 욕하던 형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따라 쓴 건데……”

헉.......!!!!.!! 아이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며칠 동안의 지옥에서 현실로 무사히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번에도 순간 화가 낫지만 호탕하게 웃는 엄마 콘셉트로 이야기를 이어간다.“z가 호기심에 그런 행동을 했구나. 그런데 z의 마음을 몰랐던 선생님은 놀라고 속상하셨을 거야. z도 누군가 너의 욕을 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엄마, 나 좀 부끄러운 마음이야. 내일 학교 가서 선생님한테 사과할게. 난 정말 갑자기 생각나서 그냥 쓴 거였고 선생님이 싫어서 그런 거 아니거든.”

해프닝 같은 이 사건으로 나는 다 큰 것만 같았던 아이는 아직도 알려줘야 할 게 많은 아기였다는 것과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엄마와 나는 각자의 역할로 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팔 다 낫고 보내준다는 애초의 내 결심은 일주일 만에 끝났다. 엄마는 아침부터 밤까지 식구들 뒷바라지하는 내 모습이 안쓰럽고, 도움은커녕 본인이 딸 일거리를 늘렸다는 자책으로 남편이 보고 싶다고, 걱정돼서 집에 가야겠다고 서둘러 떠났다.

나는 참 이기적이고 못된 년이 틀림없다. 엄마가 돌아가고 나니 솔직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엄마 미안해’

엄마들에겐 원래 내 나이 말고 나이가 하나 더 생기는 것 같다.

내 첫아이 z는 알고 싶은 게 많은 9살이고, 42살의 내 맘대로 살았던 나는 9살의 엄마이고, 69살의 h 씨는 파도를 항해하는 딸을 지켜보는 42살의 엄마 나이를 갖고 오늘을 살아간다.

42살의 엄마 딸인 나는 아직도 나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고, 9살 엄마 나이인 나는 내 몸이나 기분보다는 9살 아이를 보살피는 두 나이를 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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