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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개미 May 25. 2020

용기가 사라지기 전에 #6

1부 오감이 기억하는 2013년의 캐나다

1부 오감이 기억하는 2013년의 캐나다


풍경,

그런 적 있나요? 길을 걷다가 문득 저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는데

어느 날의 햇살과 그때의 바람 그리고 향기가 나의 추억의 한 페이지와 닮아있을 때.


마치 그곳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현재와 과거가 겹치는 순간


느낌이 이상하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듯     


저녁노을 질 때쯤 낮은 건물들 위로 넓은 하늘이 보일 때,

캐나다 작은 마을에서 살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나무가 높게 쭉쭉 뻗은 가로수길,

양쪽으로 아기자기한 집들이 일렬로 길을 만들었던 작은 시골 동네.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들어와 눈이 부셔서 한 손으론 그 빛을 가리며 하교했던 그 순간.

하늘은 저녁노을이 질 때쯤이라 주황빛을 갖고 있을 때. 내가 느끼는 캐나다는 그랬다.


넓은 하늘과 무성한 나무 그리고 따스한 햇살, 저녁노을. 현실을 살다가 그 순간이 교차할 땐 하루의 고단함을 스르르 부드럽게 녹아주는 듯하다. 그렇게 잠시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 그나마 나아질 듯 하지만

눈을 뜨면 다시 현실.      



노래,

사람마다 그 시절의 배경음악이 있다. 이 노래는 힘들 때 위로가 되어줬던 노래.

이 노래는 누군가와 사랑하던 순간에 들었던 달콤한 노래.

어떤 노래는 이별했을 때 많이 들었던 노래.

우리들에겐 우리의 삶을 좀 더 영화같이 빛내줄 배경음악이 필요하다.

노래는 그 시절을 떠오를 수 있는 낭만적인 매개체이다.


2013년 캐나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떠나기 전 나에겐 ‘그리움’에 관한 나만의 배경음악이 필요했다.      

‘한 곡을 선택하여 피아노를 연습을 하자! 그리고 내가 가는 캐나다

그 어디서든 이 노래를 연주를 해보는 것이야’라는 나름 낭만적인 계획을 짰었다.


그렇게 선택한 노래는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

https://youtu.be/jXeValS-RMM



이 곡은 피아노를 어렸을 때 어느 정도 배웠던 사람이라면 쉽게 연주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곡이다. 캐나다로 떠나기 전까지 휴학생이라 고향집에서 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다들 일하러 나가 아무에게도 감정을 방해받지 않으니 그 곡을 연습 중에는 나에게 도취되었다.

도취하다 못해 심취한 나는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과 모국을 떠나 타지에서 혼자 적응하고 살아야 하는 날이 다가오는구나.’


피아노 연주를 세 달간 연습하니, 어느덧 캐나다로 떠나야 하는 5월이 다가왔다.


캐나다로 떠나는 날 이민 가방엔 엄마의 걱정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상비약, 홍삼진액, 핫팩, 라면 등 그 많은 짐들 사이에 나는 내가 그동안 연습했던 뉴에이지 악보를 챙겼다. 캐나다 어디에서든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     

캐나다의 시작_위니펙 YAMAHA


캐나다에선 생각보다 피아노를 찾기 어려웠다. 외국 집이면 피아노가 하나씩 있을 것이란

나의 상상과 달랐다.

‘아. 이 곡을 꼭 캐나다에서 연주해야 하는데. 내 미래에 아련하게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서’

캐나다의 생활이 점차 익숙할 때쯤 홈스테이 주변에 ‘YAMAHA'라는 피아노 판매 대리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한국에서 들고 온 뉴에이지 악보를 쥐고 그곳으로 무작정 달려갔다.

 “Hi” 수줍은 외국인과의 첫인사.


아직은 미흡하고 완벽하지 않은 언어로 진솔하게 내 사연을 전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교환학생입니다. 한국에서 악보를 챙겨 왔는데 막상 연주할 곳이 없더군요. 한국에서 연주하던 곡을 다시 연주하고 싶어서 무작정 이곳으로 왔습니다. 한국이 그리워서 이 노래를 연주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Sure~”


 흔쾌히 나의 수줍은 제안에 승낙했다. 무수히 많은 피아노 중 내가 원하는 멋진 피아노에 앉아서 꼬깃꼬깃해진 악보를 펴고 연주를 시작했다. 타지에서 한국 뉴에이지 연주라니. 너무 벅찬 순간이었다. 마치 나는 그곳에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가 된 것 마냥.


연주하는 동시 가족들 얼굴이 스쳐 지나갔고, 아직은 어색한 타지 생활의 기대감에 벅찼다. 외국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이 모든 것이 나의 용기였다.

그 후에 피아노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대학교 선생님한테 물어 대학교 내 작은 교회에 피아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하교 후에는 자주 갔었다.


영어로 하루 종일 말해야 하고 항상 새로운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혼자 있고 싶을 때마다 찾아가는 안식처였다. 협소한 교회 안에는 십자가와 피아노뿐. 무신론자인 나였지만 그곳에서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교를 믿는 사람이 되는 마냥 노래로 편안함을 찾았다.


어느 날은 혼자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캐네디언 학생이 조용히 들어와서 십자가를 보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 노래를 가만히 들었다.


‘어쩌지 누가 들어왔어. 연주를 그만둬야 하나?’


하면서 평소 혼자 연주할 땐 없었던 다급함이 몰려왔다. 그래도 학생이 내 연주를 감상하는 듯하여 끝까지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다 그녀는 나에게 물어봤다.


“무슨 곡이야?”

“한국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야, 혹시 아니?”


살짝 그 노래를 알기를 기대했지만 그녀는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래도 이렇게 새로운 사람과 말을 하게 되었구나. 작은 도전의 시작이었다.    

 

캐나다의 끝_몬트리올 작은 화랑


캐나다를 떠나야 하는 한 달 전 혼자 캐나다의 작은 유럽인 ‘몬트리올’로 여행을 떠났다.

캐나다에서 시작한 5월의 달에서 어느덧 11월의 겨울이 찾아왔다. 몬트리올은 물씬 크리스마스 느낌이 난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토너먼트 상점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작은 화랑으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갔다. 현대 미술 작품들로 꾸며진 전시회 가운데 하얀 피아노가 놓여 있었었다.


‘이때다! 나의 추억의 곡을 이 곳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마무리하자!’ 생각이 들어, 화랑 주인에게 연주 허락을 받았다. 다행히도 화랑이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하얀 피아노에 앉았다. 악보가 없다. 실수하면 어쩌지? 마음을 가다듬고 연주를 시작하려고 첫 음계의 건반을 누르는 순간,

화랑 주인은 기존에 나왔던 음악을 꺼주셨다.



조용함



그 순간만큼은 영화에서 엔딩 크레디트를 마무리하는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자신감을 갖고 곡을 이어갔다.


3분가량 되는 짧은 시간 동안  6개월간의 캐나다 살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이어서 서툴렀던 언어, 변화에 빨리 적응해야 했던 환경들, 하나하나 혼자 해내가는 변화하는 자신. 악보 없이 그 곡을 완곡할 수 있던 그 순간은 캐나다에서 성장했던 나를 보여주듯 했다.

내 연주가 끝나자. 전시회장에 페리는 다른 곡.


화랑 주인은 다시 음악을 켰다.

영화 1편은 끝났다는 것을 예고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에겐 영화 2가 기다리고 있다. ‘한국’이라는 진짜 현실.

이 순간처럼 당당하게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당신이 빛나던 시절엔 어떤 배경음악이 깔렸었나요?          

               

향기,

캐나다에서 돌아온 후 2015년 한국엔 이케아가 들어왔다. 1년이 지난 2016년이 되어서야 이케아를 방문했다. 넓은 이케아에서 마지막 코너는 향초와 다양한 인테리어 액세서리들로 구성되어있다.

갑자기 어디서 맡아본 향이 난다. 나는 마약을 수사하는 수사견이 된 마냥 ‘킁킁’ 거리며

빠른 발걸음으로 내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 향으로 다가간다.     


‘뭐지. 이 향은 어디서 맡아본 향이더라?’

‘이 향은 캐나다 향이야!’ 나는 그 향기의 이름을 드디어 알아냈다.


바닐라 향초
이케아 향초(59mm) 신리그 스위트앤바닐라

같이 간 친구는 갑자기 놀래서 “캐나다 향이라니 무슨 말이야?”


“내가 살던 캐나다 홈스테이 할머니 집에서 나던 향이야! 어떻게…. 이 향의 이름을 드디어 알았어.”

갑자기 먹먹해졌다. 찾았다. 드디어 내 추억의 향을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잠시나마 과거로 돌아갔다.      


2013년 캐나다의 향기, 바닐라 향     

홈스테이 집은 낡고 오래된 집이었지만 집주인이었던 Joyce 할머니는 자신의 손으로 아름답게 집을 꾸몄고,

항상 향초를 집 안에서 켜놓고 계셨다. 그래서 그런지 그 집은 밤이어도 노란빛으로 가득했다.

식탁에서도 거실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화장실도 그녀는 그 향의 향초를 켜놓았었다.

거기서 머물던 학생들은 그 향을 맡으면 이곳을 기억해달라는 메시지였는지 나에게 바닐라

향이란 젊고 패기가 있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들어준다.

그 집은 나에게 긴장의 연속이긴 했지만, 그래도 밖보단 덜했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타지의 사람들과 타국의 언어로 대화한다는 것은 상당히 긴장되는 나날이었다.

그래서 좋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혼자 가만히 있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학교에서 영어로 영어를 배우고 영어로 친구들과 대화하고 오면 피로감이 금방 몰려왔다.

가끔은 저녁을 밖에서 혼자 먹고 들어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홈스테이 할머니가 밥을 워낙 맛있게 해주시기도 했고, 돈을 아끼기 위해서 항상 집에 잘 들어가 먹었었다.


일본 룸메이트인 하루카도 저녁을 같이 먹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공부 쟁이인 하루카가 도서관 갔다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거의 룸메이트 없이 나와 할머니 단둘이 저녁식사를 할 때가 잦았다.


그럴 때면 나는 저녁시간 거의 50분 동안 할머니와 ‘핑팽퐁’ 대화를 주고받았다. 주로 내 하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사회 이슈에 대해서 의견을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도 나의 영어를 늘리기 위해서 많이 말을 걸어주셔서 지금 생각하면 감사하긴 하지만 그때 어렸던 난 ‘제발 좀 가만히 두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 생각했었다.


오죽했으면 하교 후 저녁시간에 집 문을 열 때면 ‘할머니 집에 안 계시고 밥만 있기를 빌어요.’ 문을 연적도 많았다. 할머니가 늦게 오겠다는 쪽지가 저녁 식사 옆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면 찾아오는 평안함. 바닐라 향초로 가득한 그 집. 아늑함을 그때야 비로소 온전히 누렸었다. 근데 그렇게 긴장했던 캐나다 생활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립다?     


하교 후,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할머니는 항상 창가 옆 소파에 앉아 책을 보셨다. 내가 다녀왔다고 인사하면 항상 나에게 묻는 말이 있었다.     


‘How was your today?’


그땐 그 물음이 너무 긴장되어 집에 들어갈 때마다.

‘제발 아무 질문도 하지 말아 주세요.’하고 들어갔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창가 옆 소파에서 읽던 책을 꼭 안고 졸고 계셨는데(작은 집이라 밖에서도 창문 안이 보였다.), 내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 그녀는 나에게 잠꼬대처럼


‘H...o.w 

was 

...your.. 

to..d.a...y?

라고 질문해 주셨다.


심지어 그녀는 졸던 무거운 눈을 다 뜨지도 못했는데도 말이다.     

아…. 그래. 이 집에 타인과 살면서 힘든 것은 나만이 아니었구나.


할머니도 나를 계속 신경 쓰고 계셨을 텐데. 그녀는 30년 동안 홈스테이 일을 하면서 많은 학생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고, 그녀도 하루 일과를 묻는 것이 하나의 ‘일’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안쓰러웠다.     


난 왜 그때 홈스테이 할머니에게 단 한 번도 당신의 하루는 어땠냐고 물었던 적이 없었을까?


그래서 바닐라 향은 조금 무서웠지만 따뜻했던 할머니와 할머니의 공간이 떠오르는 향기이다.


그 작은 공간의 향으로 캐나의 향은 바닐라 향이 되었다.     



그래서 너 이 향초 살 거야?”


아, 나 또 과거 회상하느라 가만히 있었나 보다. 이쯤 되면 ‘상상병’이 아닌가 싶다.    


난 추억을 소유하고 싶어 잔뜩 바닐라 향초를 장바구니에 한가득 채웠다.


“야, 너 왜 이렇게 많이 사? 언제 다 쓸려고 다음에 와서 사지.” 친구는 의아하게 묻지만

나는 묵묵히 계산대로 향했다.      


나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돈으로 소유하곤 했었다. 


그렇게 소유하게 된다면 매일이, 나의 현실이 따뜻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늘도 내일도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요.

@mingaemi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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