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6월 16일의 글
6월 16일. 프랑스 파리 생활 삼주 차.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종종 하는 것도 결국 밥 있는 곳에 마음 있고, 마음 있는 곳에 밥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곳 생활이 자리를 잡아가고는 있나 보다. 한국에서도 한 달에 한번 집밥을 먹을까 말까 했던 내가 얼마 전엔 집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마트에 가서 장을 봐왔다.
절약을 하기 위해서라든가, 혼자 살 때 식량이 없으면 정말 굶어 죽을지도 모르니까라든가, 여자 혼자 돌아다니기에 유럽의 밤은 훨씬 위험하니까 같은 현실적인 이유들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새로운 터전에 작고 큰 일상들을 차곡차곡 담아내는 일이 이제 조금씩이나마 몸에 익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네 시간 동안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바로 학원에 가서 세시 간 남짓의 수업을 더 듣는다. 특별히 먹고 싶은 메뉴가 있거나 배가 아주 고플 때는 외식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간단한 요리 혹은 레토르트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한다. 잠들기 전 밤 11시 전후로 와인 한 잔쯤 하고 숙면을 취한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진행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일과들만 들여다보면 파리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고 크게 다를 것도 없을 텐데라는 생각도 가끔씩은 해보지만 그래도 아직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
결국은 사람인 걸까.
연애는 하고 있다. 이 요리들을 만들어낸 주인공과.
미국 생활의 실패를 타산지석 삼아 이번 프랑스 생활 중엔 한국인과 웬만하면 어울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역시 무엇이든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그대로 마음이 움직여주는 것은 아닌가 보다. 좋은 사람과 좋아하는 감정을 나누게 되었다.
어떤 공간에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위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분명 그 존재만으로도 그곳에 마음을 붙이게 하는데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떠나온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추억의 총량을 이곳에서 새롭게 쌓아간 관계들을 통해 다 덮지 못했다. 그리고 그 불균형이 만들어낸 헛헛함은 이따금씩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곤 했다.
생각이 복잡해 주말을 맞은 김에 인상파 화가 알프레드 시슬레가 노년기에 수십 년간 거주하며 그림을 그렸다던 파리 근교 지역 Moret-Sur-Loing에 다녀왔다. 그의 그림 속에 담겨있던 고요한 평화와 평온을 조금이라도 훔쳐볼 수 있을까 싶은 발칙한 생각도 함께.
역에 도착했다. 애초에 한적함을 느끼고자 방문한 것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휑한 시골 들판. 어딜 가도 화려한 대도시 파리에서 고작 한 시간 남짓 떨어진 이 곳에 이렇게도 이질적인 장소가 있다는 것이 내심 반가웠다. 너도 파리의 이방인이구나. 역에서부터 목적지까지는 삼십 분 정도 거리가 있어 주변 공간을 한껏 느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녹색 빛깔과 따스한 햇살, 바삭바삭한 흙과 산뜻한 풀냄새의 감각을 온전히 받아내며 생각을 하나씩 정리해보았다.
고독이 옭아매던 일주일이었다. 본디 가진 성향이 어떤 부정적인(좋다 좋지 않다가 아닌 플러스 마이너스로 나눴을 때 해당되는 분류) 감정을 맞닥뜨릴 때면 "괜찮아. 할 수 있어!" 하며 스스로를 북돋우기보단 그 속에 깊숙이 침잠하는 류의 사람이긴 하지만, 이번 한 주는 유독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밖에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는 것도 조금 부질없고 지겹게 느껴졌다. 그간 마주쳤던 파리지앵들은 모두 생각보다 gentil 했고 서툴게나마 프랑스어로 소통하고자 애쓰는 나를 귀여워라 해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친절한 프랑스인. 그들의 호의는 그저 자국에 관심 가지는 여행자에게 대해주는 선량한 태도의 하나였을 뿐이지 길가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일 뿐인 나와 진심을 나눌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는 걸 실감하고 나니 내가 즐기던 것 중 하나인 방랑하는 여행자 놀이도 그다지 내 기분을 유쾌하게 만들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거나 할 순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내 모습이 싫어 떠나온 것인 만큼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일상의 것들에 에너지를 쏟기로 했다. 부재하는 것들에 얽매이기보단 현재 내 앞에 놓인 것들을 충실하게 해 나가기로 했다. 어쩌면 원대한 목표보다 사소한 일상의 에너지가 내게 힘과 방향을 가져다 줄 지도 모른다. 그저 작은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다 보면, 하고 싶은 것들도 할 수 있는 것들도 점차 확장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나는 이방인이다. 아직은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해있지 않은 조금은 붕 떠있는 상태의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씨앗을 뿌리고 흙을 덮어뒀을 뿐이다. 어떤 열매가 열릴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물도 주고 날씨도 살피고 시간을 들여 소중히 대해 주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느 순간에 자그마한 무언가가 빼꼼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그 소중한 열매를 손에 고이 담고서는, 고 녀석 하나를 피워내는 동안 줄곧 함께해왔던 부드러운 흙과 따스한 햇살, 혹독했던 비바람까지 모두 기분 좋게 회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그 날을 기다리며 내게 주어진 시간에 물을 듬뿍 부어보자.
즐거운 출근길
직장동료 및 학원 친구와 함께
살랑살랑
130년 전의 시슬레 씨,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나요? 어떤 일들에 기뻐하고 어떤 고민에 몸부림쳤나요?
잘 다녀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