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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Oct 24. 2022

적성과 전공

신입생들과 상담 시, 우리 학과에 지원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물어보면, 어려서부터 또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생명과학’을 좋아해서 지원했다는 학생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아주 극소수에만 해당된다. 대부분은 본인의 성적에 맞춰서 지원했거나, 부모님이 취업이 잘 될 것 같다고 추천해 주셔서 지원했거나, 아니면 희망하는 학과에는 본인 성적으로 합격하지 못할 것 같아서 처음부터 전과를 생각하고 지원했다고 말한다. 

본인이 희망해서 들어온 학생들도, 희망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들어온 학생들도 희망 유무와는 상관없이 입학 후에는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과연 이 전공이 내 적성에 맞는 걸까?’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더욱이 나는 이러한 고민에 끙끙거리고 있는데, 내 옆에 친구가 본인은 이 전공이 적성에 아주 잘 맞는다면서 너무나 즐겁게, 그리고 열심히 학과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와 비교되는 본인의 모습으로 인해서 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나는 이 전공에 적성이 맞지 않는 것 일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려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자퇴를 희망하는 대부분의 학생들도 그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면, 지금의 이 전공이 본인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정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지도교수인 나에게는 말하기 싫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다시 학생에게 묻는다. ‘그럼 학생 적성에 맞는 전공은 무엇인가요?’ 학생은 대답한다.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이 전공 말고 정말로 하고 싶은 전공이 있는 것이 아닌데, 

이 전공이 본인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학생들은 어떻게 확신하는 걸까? 또한,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분야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새로 선택한 전공이 지금의 전공보다 본인 적성에 더 잘 맞을 것이라고 또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 걸까? 


지금의 전공이 본인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유에 대해서도 물어보면, 전공공부가 어렵고, 그래서 성적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또 전혀 재미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전공 공부가 재미있고, 그래서 좋은 성적을 얻어야만 본인 적성에 잘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면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관련 공부가 재미있고, 그 공부를 잘해야만, 그리고 좋은 성적을 얻어야만 적성에 맞는 걸까? 나는 공부를 좋아하고, 잘해야만 적성에 맞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나도 이 전공을 좋아하고, 이 일을 오랫동안 하고 있으면서, 또 나름 잘하고 있다고, 그리고 적성에도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지만 공부는 예전에 대학 다닐 때도 싫었고, 지금도 여전히 싫다. 그리고 잘 하지도 못한다. 학생들 앞에서 말하기에는 상당히 부끄럽기는 하지만 지금도 사실 필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내가 대학 시절에 공부하기 정말 싫었었고, 성적도 좋지 못했고, 학교도 다니기 싫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그만두거나, 다른 생각하지 않고, 그냥 열심히 다녔던 나 자신에게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나 또한 그 시절에는 지금의 우리 학생들과 같은 생각들로 고민을 많이 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내가 재주가 많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면 나는 지금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오히려, 하고 싶은 일도, 특출난 재주도 없었던 나에게 한없이 고마움을 느낀다. 그랬기에 지금의 내가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본인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금 당장 이 공부가 하기 싫은 것은 아닌 건지? 지금 당장 학교에 다니기 싫은 것은 아닌 건지? 본인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 그 결과, 지금 당장 이러한 일들이 하기 싫어서 내린 생각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면, 그때부터는 당연히 심각하게 다른 전공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맞다고 나도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많다고 항상 좋은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니기에 당장 학교부터 그만두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일을 충실히 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고민해 볼 것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이 아니라면, 또 밥벌이로서 전망도 있다면, 그리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다른 일이 당장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본인의 전공 공부를 충실히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지금의 나처럼 여러분도 오늘의 하루, 하루를 충실히 보낸 지금의 여러분에게 고마워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하루가 쌓여서 내일이 되고, 충실히 보낸 내일이 곧 내 미래가 된다. 내가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미래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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