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 JP saxe_IF The World Was Ending
그대, 마지막을 생각하시나요?
얼마 전 영화 <내가 죽기 전에 듣고 싶은 한마디>를 봤는데요.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해리엇'이라는 주인공 할머니가 죽기 전 본인의 사망기사 작성을 위해 사망기사 전문기자 '앤'을 찾아가요. 그런데 '앤'이 아무리 해리엇의 지인들을 만나고 다녀도 좋은 소리는 하나도 없고 그녀가 죽기를 바란다는 말까지 듣습니다. '해리엇'은 본인의 사망기사를 바꾸기 위해 동료들의 칭찬과, 가족들의 사랑, 그리고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흔적, 마지막으로 본인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 한 문장이 필요함을 인식하고는 그것들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세요? 저는 사실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제대로 생각해 볼 마음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제대로 생각해 보는 방법도 모른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그게 그래서 어떻게요? 왜요?
그런데 저도 한 번 의도치 않게 마지막 순간을 빌려와 힘을 얻어 본 적이 있더라고요. 친한 친구가 연락이 와서는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머리를 다시 짧게 자를까 말까 하는 거라는 거예요. 머리를 자를까 말까 하는 게 요즘 가장 큰 고민이라니, 너 아주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구나 싶어 웃었어요. 그런데 당연히 알긴 알죠. 원래 여자들은 갑자기 그런 고민에 빠지면 에너지 소모가 꽤 크거든요.
"진짜 나 머리 자를까 말까"
"음. 네가 눈감기 전에 아 내가 28살의 봄에 머리를 잘랐던 게 참으로 후회가 되는구나라고 할 것 같니?"
"뭐?"
"아니면 그냥 잘라. 사실 안 잘라도 돼. 왜냐면 죽기 전에 후회할 일도 없을 만큼, 그 순간에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사소한 일일걸?"
"세상에"
그때는 무슨 머리 한 번 자르는 거 가지고 인생 마지막 순간을 끌어와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그 친구는 이 해결법이 참 인상 깊었대요.
그러고는 문득문득 본인이 문제를 풀 때, 이 기준을 가지고 적용을 해본다는 거예요.
물론 아시죠? <부부의 세계>에서 이태오처럼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말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라는 말은 아닌 거.
정말 아닌 게 아니라 이태오는 결국 '인생 한 번이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어'라는 이유로 선택했던 그 길이 파멸의 시작이었던 걸요.
이상하게 가끔씩 저 혼자 문득문득 보고 싶은 친구 한 명의 이야기가 생각이 나요. 몇 해 전, 취업을 같이 준비했던 친구인데 말하는 연습을 해본다고 각자 그 당시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말해보기로 했던 시간이었어요. 그녀는 책 <스물아홉,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라는 책을 소개하며 감정이입이 되었다는 말을 하는데 눈물을 펑펑 흘리더라고요. 그때 저랑 친구는 스물여섯 살이었는데요. 정확히 3년 뒤인 스물아홉에 저도 문득 그 책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어느 대목에 멈춰 눈물을 펑펑 흘렸었더랬어요.
저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인데요.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길 바라요. 결말이 아주 인상적이에요.
그때 어렴풋이 느꼈어요. "끝을 생각하면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새 제대로 움직이기도 하는구나."
마지막을 생각하면 갑자기 손에 움켜쥐고 있는 문제에 탁 힘이 풀리면서 스르르. 그것을 인생 전부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 스스로를 지켜볼 수 있게 되나 했어요.
소중한 관계에 마지막을 넣어보면 지금 나의 행동은 상대방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이 될까를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마냥 내가 참으려는 이상한 오기도, 그렇다고 마냥 내 멋대로 하려는 이기심도 잠시 놓아둘 수 있게 돼요. 결국 사람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연인과의 관계도. 친구와의 관계도 다요.
그렇지 않나요? 정말 마지막을 생각하면 마지막만 보이나요. 오히려 더 나아갈 방법이 보여요.
지금만 보면 당장 내가 당장 살아나는 법만 보이는데, 멀리 보면 같이 살아 나가는 방법이 들어있어요. 그러고 나면 의외로 모든 문제가 나만 잘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거기에서 보여요.
너무 선한 말이라고 들리시나요?
그렇다면 제 표현법이 한참 잘 못 되었거나(ㅠㅠ), 제 이야기를 한참 잘못 들으신 거예요.
일부러 마지막을 생각해 슬퍼야 한다는 말도, 그러니 그대가 많은 것을 배려하고 이해하라는 말이 아니거든요.
당신, 그리고 당신의 인생에서 소중한 몇 사람들의 삶 정도는 제대로 들여다보자는 말이에요.
계속 살아가고 싶으니까요.
♬ JP saxe_IF The World Was Ending(feat.Julia Michaels)
8월의 셋째 주 수플레, 제가 들고 온 노래는 JP saxe의 IF The World Was Ending이라는 노래입니다. SNS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노래인데, 처음엔 멜로디가 좋아서 찾아 듣기 시작했어요.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JP Saxe(JP 색스)와 Julia Michaels(줄리아 마이클스)의 듀엣곡으로 JP Saxe의 두 번째 EP 앨범 <Hold It Together>의 리드 싱글로 발매된 곡이라고 합니다.
두번째 동영상은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많은 팝스타들이 커버한 영상을 모든 컴필레이션 비디오인데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려고 만들었대요. 이 영상을 통해 나오는 수익금 전부는 '국경 없는 의사회'에 전달된다고 합니다.
코로나 물러가라 물러가!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네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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