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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당 단편선》 고양이 자리

어느 밤의 신사의 회고

by 밍당

프롤로그.


고양이를 좋아하십니까?
그 밤, 나는 신사처럼 다가갔습니다.
조용히, 부드럽게, 냄새를 남기듯.

그 아이는 알아차리지 못했지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기다립니다.
고양이처럼 살랑이며 다가올 또 하나의 별을.


네.


느닷없지만,

당신과 별자리에 대해 이야기나눠보고 싶습니다.


요즘 밤은 여름답지 않게 선선해서

자주 거리를 쏘다니곤 합니다.

산책, 좋아하세요?


의외겠지만 밤의 거리엔 볼 게 많답니다.


여긴 촌이라 그런지

밤 9시만 되면 상가도 주택도 죄다 불이 꺼져요.

그래서 오히려 낮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밤에 더 잘 보이기도 하지요.


밤의 길거리는 꽤 아름다워요.


가로등의 깜빡거림(물론 시청의 직무유기겠지만),
주택가에서 흘러나오는 TV 소리,
하염없이 날갯짓하는 나방의 춤,
간혹 들려오는 술 취한 아저씨의 방향 잃은 고함소리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보이는 건,
어둠 속에서 노란 빛을 반짝이는 밤의 신사들이에요.


그게 뭐냐고요?
도둑? 뭐,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바로 길고양이들입니다.


왜 ‘신사’라고 부르냐고요?
조금만 더 들어보세요.


이 녀석들, 참 웃겨요.
쓰레기통을 뒤지면서도 의젓한 척을 하지요.
길바닥에 퍼질러 있어도

꼬랑지를 살랑살랑 흔드는 고고함은 여전해요.
개와는 확실히 다르달까요.


어깨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곡선은,

누구라도 한 번쯤은 쓰다듬고 싶어질 거예요.
아름다운 여성의 허리 라인에 비유하면 적절할까요?


하지만 만지면 안 돼요.
그 녀석들을 쓰다듬을 수 있는 건,

오직 허락받은 사람들뿐이니까요.
괜히 덥석 손댔다간 할퀴어질지도 몰라요?


이 녀석들에게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각보다 간단해요.


아까도 말했지만,

녀석들은 쓰레기통을 뒤져요.
그 말은 곧, 배가 고프다는 뜻이죠.


개체 수는 늘어나는데,

사람이 남기는 음식은 늘 부족하니까요.

그래서 이 녀석들은 늘 필사적이에요.
자기 영역은 스스로 지켜야 하고,
치킨 뼈다귀 하나를 위해서라면

서로를 물어죽일 각오도 되어 있죠.


이런 녀석들에게 간식을 줘볼까요?
손으로 직접 건네봤자 먹지 않아요.
그거, 생각보다 비싸답니다.


날 따라 해보세요.
땅에 살짝 내려두고, 기다리는 거예요.


녀석들을 부르는 데엔

1분이 걸릴 수도 있고, 1주일이 걸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보세요.
어머나— 벌써 냄새 맡고 다가오고 있어요.


아직 경계가 잔뜩 서 있죠.
움직이지 말아요.
녀석들은 아주 예민해서,

뒷걸음질 치고는 그대로 사라질 수도 있거든요.


오—

한 녀석이 쏜살같이 물고 도망가 버렸군요.
한 녀석이 해냈으니,

이제 나머지들도 따라올 거예요.

고양이들은 모방심리가 강하니까요.

집고양이는 주인을 따라 하고,
길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를 따라 하죠.


보세요, 제 말이 맞았죠?
이제 절반은 성공이에요.

간식을 먹고 아무 일 없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두세 번만 더 주면 됩니다.
열 번쯤 반복하다 보면,
당신을 보며 고롱고롱 울어줄지도 몰라요.


아, 별자리를 이야기하려던 참이었죠.
그런 말 말아요.

당신도 좋아서 여기까지 따라와 놓곤.


어릴 적부터 궁금했어요.
왜 하다못해

전갈 같은 녀석들도 별자리가 있는데,

고양이자리는 없는 걸까?


알아보니

아주 짧게나마 고양이자리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바다뱀자리 옆 어딘가에.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어요.
결국 사라졌죠.


슬픈 이야기예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특히요.


참고로,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대략 2,000개 정도래요.
그 중 모두에게 별자리가 붙어 있는 건 아니니까,
먼저 이름 붙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도 되는 거죠?


그래서 말인데요.
없으면,

내가 만들면 되잖아요.
하늘의 별들이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라면,
고양이자리는 내가 만들어도 되겠죠.


아—

이 얼마나 간단한 발상이었을까요.


잠깐 딴 얘기지만,

해님달님 이야기 아세요?

호랑이에게 쫓기던 아이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타고
오빠는 해가,

여동생은 달이 되었다는 이야기요.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 아이들은 결국 호랑이 밥이 되었겠죠.

맨몸의 여리디여린 아이들이
호랑이한테서 도망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저라도 그건 무리예요.


아마도 그 아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누군가가 동화를 지어낸 건 아닐까요?


...그래요.
이제 제 말의 요지를 눈치채셨군요.


아깐 좀 멍청해 보였는데,

지금은 제법 지적으로 보여요.


울지 말아요.
전혀요.
당신은 훌륭해요.

정말이에요.


하늘에 떠 있는 당신의,

그리고

나의 고양이자리를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그들도 고개를 끄덕이겠죠.


아니에요.
그건 사체가 아니에요.

보세요.
꼬리가 아직도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잖아요?


자.

당신이 그렇게 귀여워하던 고양이랍니다.
소중하게 안아주세요. 됐나요?


이제,

당신이

나의 첫 고양이자리의 별이 되어주세요.
영원히 기억할게요—


기회가 된다면,

틈이 보인다면,

다음 별도 곧 갈 테니 외로워 말아요.


그때까지, 안녕.


아—

역시 따뜻해서 좋네요.

끈적해서 더욱 좋구요.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 감정이 항상 다정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랑은 때때로

통제하고 싶다는 마음과 구분되지 않더군요.


이 이야기는 그런 마음을,
그리고 그것이 만든 자리를

조용히 들여다보려 쓴 글입니다.


고양이는 도망쳤고,
사람은 거기 남아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누가 먼저 별이 되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어디론가 흘러가길 바라며 적어두었습니다.
혹시 다녀가신다면,
당신의 말 없는 감정도 함께 두고 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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