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격 밖에서 태어난 나에게
《단편선》
태어날 때부터 나는 남들과 조금 달랐다.
어린 시절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는 그 다름을 ‘기준’이라 불렀고,
나는 점점 더 그 기준에서 멀어졌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규격화된 평가표에 넣으려 했고,
나는 늘 채점의 끝자락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를
'규격 미달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글은 실패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실패를 견뎌낸
어느 나날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잣대에 맞춰 살기보다,
스스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이야기.
그래서 어쩌면,
이것은 성장기가 아니라
회복기일지도 모른다.
“괜찮다, 아들.”
아버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유난히 또렷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2차 시험,
그러니까 필기 전형에 합격했을 때,
누구보다 먼저 눈물을 훔친 사람이
아버지였다는 걸.
그렇게 기뻐했던 사람이,
오늘은 담담하게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도.
---
통화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불을 움켜쥐었다가 놓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막상 흐르진 않았다.
누구에게 보일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감정을 붙잡고 있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게 간사할 수 없다.
‘혹시나’라는 기대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자라고 있었고,
‘불합격’이라는 단어는
그 싹을 짓밟았다.
면접을 망쳤다는 자각은 분명했다.
경쟁자들은 청산유수였지만,
나는 자꾸 시선을 피했다.
전날까지 야근을 했고,
수면 부족에 얼굴은 퀭했다.
자기소개서도 엉망이었고,
마음도 정리되지 않았다.
계약직으로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벌써 3년.
두 번째 도전이었고, 두 번째 낙방이었다.
---
출근한 날,
입 아프게 결과에 대해 말할 것도 없이
이미 소문은 퍼져 있었다.
“그래도 면접까지 간 건 대단한 거네.”
“아직 젊잖아? 괜찮지?”
네. 괜찮습니다.
동료들의 피상적인 위로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들이 마음에 닿지는 않았다.
괜찮다는 말은,
정말이지 괜찮지가 않다.
마음 한켠에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서류에서 떨어졌다면,
한 달 넘게 초조해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좋은 경험이라 스스로 다독여봤지만,
자꾸만 다른 감정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애초에 실패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반복된 실패는,
어느새 나를
실패에 능숙한 사람처럼 만들어가고 있었다.
감정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마모되었다.
마치 색이 바래고 번진,
오래된 세피아톤 사진처럼.
---
며칠 후, 본가로 향했다.
독립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부모님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작은 원룸.
출퇴근은 더 불편해졌지만,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처음 독립을 말했을 때,
부모님은 결사반대하셨다.
“결혼하려면 집에서 돈 모아야지.”
“집 나가면 고생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버텨냈고, 설득했다.
그때 꺼낸 마지막 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저는 당신들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보단,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아버지는 화를 냈고,
어머니는 울었다.
그 이후 나는 그 집을
‘우리 집’이 아니라,
‘부모님 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번 방문에도 어머니는 눈물을 참지 않으셨다.
“고생했다. 내 새끼.”
짧지만 모든 것이 담긴 말이었다.
그 말 앞에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옛 방은 떠나던 날 그대로였다.
책상, 침대, 벽에 붙은 오래된 포스터까지.
언제라도 내가 돌아올 수 있도록
흔한 짐더미조차 쌓여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조금도 편하지 않았다.
어릴 적 요람 같던 방은,
죄책감으로 가득한 무덤 같았다.
---
고백하자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신체적 결함이 있었다.
입술은 언청이었고,
다리는 소아마비로 좌우 길이가 달랐다.
세 번의 큰 수술을 받았고,
여전히 걸음은 어긋나 있었다.
어릴 땐 몰랐다.
그저 공부를 잘했고, 친구도 있었고,
평범한 학창 시절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어디선가 느껴지는 미묘한 거리감.
말은 없었지만, 시선은 분명했다.
그 틈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나 같은 사람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을 선택했다.
노량진에서의 1년.
그게 내가 택한, 마지막 가능성이었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합격권이라 여겼고, 기대도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런 후회는 결국 분노로 변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내 몸을 향했다.
거울을 보며 욕을 했다.
자기 얼굴에 대고, 자기 인생에 대고.
스스로를 조롱했고, 하루도 빠짐없이 술에 취해 살았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어머니가 고시원으로 찾아왔을 때,
나는 거의 폐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낳아줘서 미안해, 아들.”
그 말에 반쯤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다.
스스로를 자학하지 않겠다고.
남 탓하지 않겠다고.
현실을 직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겠다고.
그 후, 본가에 돌아와
가까운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내 외모를 묻지 않았고,
아무도 과거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매일 열심히 일했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공채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고,
도전했다.
첫 번째는 서류에서 떨어졌고,
두 번째는 이번, 면접에서 낙방했다.
여기까진가.
나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을
이기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정말
내가 해낼 수 있는 것일까.
질문의 답은 구할 수 없었다.
다만 도돌이표가 찍힌
일상의 악보를 타성으로 반복할 뿐.
---
며칠 뒤,
회사 동료 이주임,
그러니까 이연두 씨가 넌지시 물었다.
“본가엔 잘 다녀오셨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너스레를 떨 듯 덧붙였다.
“저도 시험 쳤어요.
엄마가 얼마나 뭐라 했는지 몰라요.
박 이장네 아들은 면접까지 갔다는데,
우리 딸은 누굴 닮아 멍청하냐고…”
농담처럼 툭 던진 말이었지만,
농담 같은 사람인 그녀의 말에
묘하게 울컥함이 밀려왔다.
빛나는 외모에,
그걸 더 따뜻하게 만드는 친근한 성격까지.
그녀는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동네에서도 늘 빛나는 존재였다.
웃음이 나왔다.
그건 분명 진한, 스스로를 향한 비웃음이었다.
그녀가 가진 것들을 나는 갖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어쩌면 동경과 질투는
늘 한 끗 차이인지도 모른다.
---
“박주임님, 오늘 한잔 할래요?”
그녀가 뜬금없이 술을 한잔 하자고 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퇴근 후 작은 호프집에 앉았다.
그녀는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박주임님은 진짜 어른 같아요.
성실하고 자상하고.
같이 일하면서 그런 게 느껴졌어요.”
“저는 규격 미달이에요.”
내 말에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규격이란 게 뭐죠?
어딘가에 맞춰지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걸까요?
저는요,
자기 몫을 하려 애쓰는 사람이 어른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박주임님은 이미 그런 분이에요.”
그녀의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낸 말이,
이상하게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
나는 천천히 왼팔을 바라보았다.
수술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팔.
어릴 적부터 감추고 싶었던,
세상의 규격에서 어긋난 몸.
하지만 그녀는 그런 걸 보지 않았다.
내 말투와 태도,
그리고 그 너머의 마음을 보았다.
---
‘불량품’이라 여겨온 나에게,
누군가는 ‘어른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은 마치,
그동안 쉴 새 없이 발버둥 쳐온 팔다리를
이제는 잠시 쉬어도 괜찮다고.
조용히 속삭여주는 것만 같았다.
---
이제, 부모님 댁에 다시 가보려 한다.
이번엔
그동안 삼켜왔던 말을
처음으로 꺼내보려 한다.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 말을
가장 먼저 전해야 할 사람들에게,
그리고
끝내 나 자신에게도.
누군가 내게
"당신은 어른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이제는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완성되지 않았고,
어딘가 부족하며,
가끔은 흔들린다.
하지만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말하려 노력하는 사람.
그렇다면, 나는 어른이다.
규격품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는 필요한 사람.
정해진 틀에 들어맞진 않지만,
고장 나지 않은 마음.
이제 나는 안다.
불완전함이 곧 결함은 아니라는 것을.
삶의 모든 결은
같은 방향으로 깎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 다름 속에서도
빛나는 순간은,
늘 존재해 왔다는 것을.
그러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나를 다시 선택할 것이다.
조금 다르고,
조금 느리더라도—
나라는 사람을, 존중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 글은
오랫동안 제 안에 눌러 담아두었던
감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스로를 규격 미달이라 여기며 살아온 시간,
실패를 반복하며 꾹꾹 눌러왔던 말들,
그리고
그 모든 날들을 견디게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이 글은 제게는 하나의 고백이고,
누군가에게는
위로이자 동행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말을
글 속에서라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불완전한 문장이
누군가의 하루 끝에 가만히
놓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박기주라는 이름으로, 규격 밖에서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어디론가 흘러가길 바라며 적어두었습니다.
혹시 다녀가신다면,
당신의 말 없는 감정도 함께 두고 가주세요.
구독과 댓글, 라이킷은
저에게 글을 계속 꺼낼 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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