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를 지나, 나만의 밭에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정말 직장인이었던 적이 있었나?
서른에 퇴사했고, 어느덧 5년이 지났다.
프리랜서로 살아온 시간도 4년이 넘었다.
가끔은 지금의 삶이 낯설 만큼 신기하다.
한때는 직장인의 세계와
디지털 노마드 프리랜서의 세계가
서로 닿을 수 없는 다른 행성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나는 프리랜서로 서 있다.
돈을 안정적으로 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지금 꽤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퇴사가 너무 하고 싶어서
퇴근 후 카페로 가, 다시 나만의 일로 출근하던 날들이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이상하게도 힘이 됐다.
그림으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살게 했다.
회사에서는 소모품처럼
시키는 디자인만 반복하다가,
비로소 내 그림으로 내 이야기를 펼칠 때면
또 하나의 자아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작은 문이 열리듯,
또 다른 세계가 시작되는 느낌.
직장인으로서의 마지막 1~2년은
‘언제까지 디자이너로 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에서 시작된 시간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불안 덕분에 또 다른 밭을 일구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 일궈 둔 밭 위에 서 있다.
만약 지난 시간이 황무지였다면
지금의 수확도 없었겠지?
지난 5년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직장인으로는 쉽게 누릴 수 없던 장면들.
평일 낮, 한산한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
출근 시간에 쫓기기보다
오늘 할 일을 스스로 설계하며 시작하는 아침.
눈이 또렷해진 채 하루를 여는 감각.
야근을 해도 이상하게 덜 피곤했고,
일이 재미있어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물론 요즘은 조금 피곤하기도 하다.^_^)
딱딱한 사무실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내 취향에 맞는 옷을 입고
내가 꾸민 공간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창밖으로 새가 날고,
산책하는 강아지가 보이는
내 취향으로 채운 작업실에서 일하는 것.
프리랜서의 장점은 생각보다 많다.
단 하나,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을 빼면
거의 모든 것이 자유롭다.
외주 작업을 할 때면
‘내 캐릭터’가 아니라 디자이너로서 일하지만,
그 또한 포트폴리오가 되고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진다.
돌이켜보면
최저시급도 채 받지 못한 채 주 6일을 버티던 시간,
이를 악물고 견뎠던 7년의 직장 생활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모든 경험은 층층이 쌓여
돌이 되고,
기반이 되고,
결국 무기가 된다.
이제는 그 무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다.
더 이상 버티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을 만들기 위해 쓰는 것.
앞으로 나는
이 단단함으로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나는,
정말로
어디까지 가보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