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참으로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심장이 빨라지고, 교감신경계가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그 고통의 원인은 단순한 실수였을 수도 있고, 일정 기간 지속된 잘못된 방향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한 습관 때문일 수도 있다. 원인이야 어찌 됐든, 우리는 어느 순간 고통을 느끼게 되고, 감정이 유난히 고통에 민감해지는 날이면 더욱더 힘들어진다. 그러다 보면 문득,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울 바에야 왜 태어났을까?"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세상은 원래 고통으로 가득하다. 불교에서도 인생의 고통을 '사고팔고(四苦八苦)'라 하여,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겪는 고통(四苦)과 삶을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고통(八苦)을 말한다.
생고(生苦): 태어나는 것 자체가 고통
노고(老苦): 늙어가는 고통
병고(病苦): 병에 걸려 아픈 고통
사고(死苦): 죽음의 고통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고통
구부득고(求不得苦):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오온성고(五蘊盛苦): 몸과 마음이 형성되는 것, 즉 '나'라는 존재가 형성되는 자체에서 오는 고통
이 중 몇 가지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이미 다섯 가지의 고통을 겪고 있고, 나머지 세 가지도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더 많은 고통이 온다면 견뎌낼 수 있을까?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온다.
쇼펜하우어는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하나의 고통이 사라지면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온다"라고 말했다. 마치 고통이 바통을 넘기듯 이어지는 것이다. 그 말을 곱씹어 보면, 우리는 한 고통을 해결해도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오는 무한 순환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절망적으로 살 수는 없다. 고통이 또 다른 고통으로 이어지는 것을 무기력하게 반복하며 살기엔, 이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 가련하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는 고통을 끊어내야 한다. 적어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게중심'이라는 개념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책 한 권을 손가락 위에 올려둔다고 가정해 보자. 책이 균형을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디에 손을 올려야 할까? 바로 책의 중앙, 무게중심이다. 이 원리를 인생에도 적용해 보자. 책의 전체 면적을 세상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삶의 무게중심을 내 외부가 아니라, 내 내면으로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아닌 외부에 무게중심을 두고 살아간다.
자녀가 삶의 중심이 되어버린 부모
외모와 사회적 이미지에 과도하게 신경 쓰는 사람
타인의 반응만 살피며 살아가는 사람
공동체나 친구 없이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이들은 지금 고통을 겪고 있거나, 곧 고통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너무 열정적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열정은 권태를 해소해 주지만, 동시에 고통을 가져온다. 매사에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은 분명 대단하다. 하지만 '과도한' 열정은 생각할 시간을 빼앗고, 성공률을 떨어뜨리며, 많은 실패를 낳는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구부득고(求不得苦,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를 겪게 되고, 이는 다시 삶 자체의 고통(生苦)과 존재의 고통(五蘊盛苦)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고통의 뫼비우스의 띠는 '과도한 열정'에서 시작된다.
여러분은 지금 지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지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도 지적인 활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단순한 취미 활동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지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창조해야 한다. 창조하는 사람은 삶의 무게중심을 내면에 두고 사는 사람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지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창조의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쉽지 않다. 베끼는 것은 지루하고, 글을 쓰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창조의 결과는 고통으로 남지 않는다. 오히려 창조 과정에서의 고통은 희열과 만족, 그리고 보람으로 대체된다. 특히 더 좋은 글을 쓸수록,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힐수록, 이 긍정적인 감정은 더욱 깊이 내면에 남는다.
이것이 바로 유익한 고통이다. 창조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삶의 무게중심을 내면에 둘 수 있다. 왜냐하면 창조의 근간은 나의 생각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고, 경험하고, 만들어낸 것이 가치 있다고 믿어야만 결국 창조할 수 있다. 꼭 글쓰기가 아니어도 좋다. 무엇을 창조하며 중심을 내면으로 옮길 것인가? 여러분이 믿는 그것이 곧 여러분 삶의 중심이 된다.
인생에서 고통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이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사고팔고(四苦八苦)'는 피할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고통 때문에 가련한 인생을 살지는 않아야 한다.
삶의 무게중심을 내면에 두고, 열정은 절제하며, 창조적인 삶을 살자.
그러면, 고통 속에서도 조금은 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