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불 덮고 자는 사이인 부부.
아무나랑 하지 않는 '한 이불 덮기'는 부부의 강력한 소속감을 나타내는 증거 중 하나다.
피가 섞인 형제끼리도,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불을 각방을 쓴다고 해도 그 부부가 소속감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으니..)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안정감,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을 소속감이라고 한다. 소속감은 우리를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고 심지어는 수명에도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개인은 태어나면서부터 '한 가족의 아들, 딸'로 소속감을 갖고 자라난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소속감, 친한 친구들과의 소속감, 회사에서의 소속감 등. 나이를 먹으며 다양한 소속감을 장기적, 단기적으로 느껴가며 살게 된다.
사람과 함께 사는 이 세상에서,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이 느낌은 필수적이다.
혼자서는 살지 못하는 인생이니까.
결혼은 소속감의 변화가 가장 격하게 일어나는 사건 중 하나이다. 남자친구, 여자친구에서 배우자로 전환되면서 법적인 소속감이 확대되고, 부모님의 아들, 딸에서 상대 배우자의 사위나 며느리가 되어 또 다른 소속감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결혼을 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소속감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소속감을 잘 보듬어줘야 한다. 소속감이 알아서 생겨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부족해지면 우울해지고, 자존감과 자신감이 하락하기도 한다.
우선, 한 이불을 잘 덮고 있기 위해서는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한 이불을 덮는 것이 혼자 자는 것보다 나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물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는 한 이불을 같이 덮는 것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이 불편함을 상쇄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를 상쇄시키기 위해, 신체적 불편함을 이길 수 있는 정서적 편안함을 주어야 한다. 한 이불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행복함과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느낌은 그냥 이불만 덮고 있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불속에서 팔베개도 해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소통하고 공감을 해야 한다.
또한 서로가 편안하게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는 이불을 걷어차면 안 된다. 즉, 부부간에 돌발행동은 소속감형성에 굉장히 좋지 않다. 예측가능한 범위 내에서 동반자로서 살아야 한다. 아무리 화가 나고 갈등이 생겨도 적정선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직설적인 감정의 표출과 행동은 본인은 후련할지 몰라도 같이 덮고 있는 이불을 걷어차버리는 모양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 차버린 이불을 주으러 가야 하거나, 둘 다 너무 추워서 덜덜 떨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계절에 맞는 이불을 덮어야 한다. 여름에는 얇은 이불을, 겨울에는 두꺼운 이불을 덮어야 한다. 우리의 온도와 각자의 컨디션에 맞도록 이불을 교체해줘야 한다. 날이 더워졌는데도 지속적으로 두꺼운 이불을 덮도록 강요하거나, 누군가에게 불편한 이불을 덮고 있으면 숙면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우리의 컨디션을 고려해서 소속감도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혼 때의 소속감과 결혼 30년 차의 소속감은 다르다. 신혼 때는 크지 않은 침대에서 팔베개를 해주며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잘 수도 있기에 얇고 작은 이불로도 소속감을 형성하기 충분하다. 하지만, 30년 차는 조금 더 따듯하고 넓은 이불을 덮으며 안정적인 소속감 형성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소통과 공감, 어느 정도의 인내심과 변화를 인정하는 마음이 오랫동안 한 이불을 덮게 하는 이유가 된다.
주말부부로 7년을 살아보니, 같이 이불을 덮고 잘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
매일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냥 그랬던 것일까.
이 두 번의 이불을 덮고 잘 때도 우리는 무언가 불편했다.
나는 마음이 불편했고, 전 사람은 신체적으로 불편했다. 그래도 같은 이불을 덮고 자기는 했었다. 각방은 꽤나 의미심장한 행동이기에...
공주를 낳고는 단 한 번도 같은 이불을 덮고 잔 적이 없었다. 아예 내가 다른 방에서 자기 시작했다.
공주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한 것이지만,
일주일 중 두 번, 그나마 2/7의 소속감을 가지고 살던 것이 "0"가 되니
심리적으로 자연스레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다른 이불속에서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불신만 쌓여갔다.
'애는 같이 낳아놓고, 저 남자는 기여하는 게 하나도 없네.'
'나는 한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몰라줄까?'
조금 더 따듯한 이불로 바꿔야 할 시기에,
우리는 이불을 고르지 못했다.
어떤 이불로 바꿀지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같이 누워있는 것 자체가 참 힘들었다.
소통과 공감이 없었기에...
한 이불속에서는 잠만 자지 말고,
꼭 자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자도록 하자.
별거 아닌 농담이라도.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그런 말들이
내일도 모레도, 이불을 같이 덮고 싶게끔 만드는 큰 힘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