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이라는 외로움 가득한 단어 말고요.
별거 직후, 몇 달은 아이랑 단 둘이 지내는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에만 온 전력을 쏟아부었다.
내가 잘 살려면 먼저 아이 아빠와 역할 분담을 했던 일상에 빠르게 적응해야만 했다. 예를 들어 혼자 아이 등원 준비, 혼자 데이케어 데려다주고 픽업하기, 혼자 요리하고, 혼자 집안일도 다 하면서 아이랑 놀아주기도 해야 했고, 혼자서 아이랑 장보기, 혼자 아이 재우기, 혼자 아이 훈육시키기 등 - 매일 생각할 틈도 없이 밀려드는 일상 퀘스트를 반복 처리하다 보니 혼자서 일, 육아, 집안일까지 하는 극한의 슈퍼 싱글맘으로 레벨 업하고 있었다.
한편 가장 난감했던 상황은 주말에 아이 아빠 없이 혼자서 애를 데리고 나가 놀아야 된다는 부담감이었는데, 체력적으로도 힘든데다 자동차가 없으니 아이를 어디 데리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혈기 왕성한 아들을 매주 집에서 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곳에서 한 번도 자동차를 스스로 사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먼저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딜러들에게 직접 이메일 하여 최고 좋은 딜로 자동차를 리스했다. 이때가 헤어진 후 처음으로 스스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자란 친구들조차도 나보고 미국인보다 더 좋은 가격에 리스했다고 말해주니 앞으로도 혼자서 잘해나갈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게다가 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렇게 사소한 것들로부터, 꺾인 자신감을 천천히 회복해가면서 주말에는 자동차를 타고 나가 아이와 단 둘이 놀고, 친구 가족과 플레이 데이트도 하면서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상황도 자연스럽게 극복해갔다. 하지만 나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 작고, 큰 일상적인 문제들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언어가 느린 아들 녀석의 스피치 테라피를 데리고 다녀야만 했고, 갑자기 집주인이 바뀌는 바람에 새 집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 하필 또 아들이 데이케어에서 프리스쿨로 가야 할 때가 되어 학교도 알아봐야 했다.
이런 새로운 이벤트들이 발생할 때면 나는 점심을 늘 먹는 둥 마는 둥 할 수밖에 없었다. 일하고 점심시간에 인터넷이나 전화로 알아볼 수 있는 필요한 정보들을 30분만에 다 하고, 퇴근 후 아이 픽업 전 딱 1시간 동안 집을 보러 다니거나 학교 투어를 하고, 서류 업무를 본 후, 급하게 차를 몰아 아이 픽업을 했다. 내 아들은 늘 마지막에 남는 아이 었다. 최대한 빨리 가고 싶었지만 혼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시간 맞혀 처리하기 위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퇴근 후 4시 30분부터 데이케어 픽업 5시 30분 전 딱 1시간뿐이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집으로 와 저녁 준비를 할 때는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다. 두 살이 넘어 자기 고집이 점점 더 세어지는 아들과 저녁에 씨름을 하면서, 아이 재우고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단 한 번도 알아본 적이 없었다. 피로감에 찌들어 아이랑 같이 잠이 들거나 가끔 아이보다 먼저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녹아내릴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전쟁 같은 하루를 보냈다. 돈 걱정, 혼자서 모든 걸 다 감당해야 하는 육아 걱정에 아이에게 수시로 밀려드는 미안함 감정, 주변에서 불쌍하게 보는 편견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야 하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 등을 혼자서 떠안고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문화생활이나 사회생활은 꿈도 꾸지 못 하는 상태였고, 이 과정 중에 제일 중요한 나 스스로를 위한 돌봄의 시간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 싱글맘이라는 단어를 되뇌는데, '싱글맘'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고독하게 느껴지고 그 단어를 쓰면 쓸수록 스스로 고립되어 가는 것 같았다. Single의 정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only one in number, one only이다. 몸은 하나이지만 혼자서 엄마도, 아빠도, 요리사, 청소부, 간호사까지 모든 역할을 다 소화해 내는 생활력 만렙 멀티플레이어 - '멀티맘'이라고 스스로 불러줄까.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더 뿜어져 나왔다. 그때 비로소 나는 언어가 주는 강력한 힘을 나는 이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다 해낼 수 있다는.
이렇게 보다시피 어느 날은 해낼 수 있다는 충만한 자신감과, 또 어느 날은 평생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우울의 사이에서 감정이 미친 듯이 널뛰기를 하고 있었다. 생활력 만렙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한 가지 더 남아있었는데, 그건 바로 데이케어 다니는 아들이 거의 2주마다 아프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콧물부터 나면 아이 걱정이 아니라 나는 눈물부터 터져 나왔다. 마치 숨을 쉬기 위해 물속으로 나오려는 나를 누가 자꾸 머리를 눌러 물속에 집어넣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 콧물이 흐르고 아픈 아이를 보니 좌절감만이 들었다. 나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